짧은 설교

[7분설교] 전쟁 같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_시편 122

설왕은 2020. 4. 5. 10:00

안녕하세요? 이제 5주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사태가 종결된 이후에 교회에서 다시 예배를 드려야 한다면 예배가 다시 열리는 시점은 이제 예측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우리의 일상이 무너져버렸는데요. 우리가 날마다 혹은 정기적으로 하는 일은 때로는 그 일이 지겹고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일상적으로 하던 일을 못하게 될 때 아무렇지 않게 혹은 힘들게 이어가던 일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교회는, 예배는 어떤 의미였습니까?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같이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시편 122편입니다.

 

( 122, 개정) [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2]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3]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시편 122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1절에 보면 왜 시편 122편에 이런 설명이 붙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요새 말로 바꾸어 보죠. “누군가 나한테 교회에 가자고 말할 때 나는 마음이 기뻤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누군가 여러분에게 교회 가자고 말하면 기쁘십니까? 혹시 그렇지 않다면 그런 경험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고 교회에서 다시 정상적으로 예배를 드리게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교회에 가는 것이 왜 기쁘겠습니까? 여러분이 교회에서 기쁨을 느끼셨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6절을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다 형통하리로다.” 교회는요. 평화를 경험하는 곳입니다. 평화를 경험해야 하는 곳입니다. 우리의 세상살이가 참 고달프죠.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연 먹고 살 만큼의 적당한 돈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몸을 혹사시키고 우리가 가진 시간, 심지어는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서 일을 할 때도 있습니다. 꼭 돈이 없어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도 그렇게 힘들게 살다가 과로로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얘기도 종종 듣습니다. 어른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도 얼마나 고생을 합니까? 학교에 가서 학원에 가서 하나라도 더 머릿속에 무엇인가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기도 하고 또한 엄마, 아빠로부터 압박을 받기도 합니다. 그것이 지식이든 아니면 돈이든, 우리는 계속 무엇인가를 소유하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뛰어다닙니다. 부족함을 느낍니다. 불안감으로 인해 두려워합니다. 전쟁과 같은 삶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멈춥니다. 교회에서는 평화가 선포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로 충분하다. 나는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한단다.” 예배드릴 때 우리는 더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조금 더 갖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죠. 세상의 모든 압박과 강요와 유행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 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가 솔선수범해서 전염병의 감염을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히 교회문을 닫아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거나 때로는 그리스도인들조차 쉽게 공공 예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마음이 좀 불편했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문화생활 같은 것은 아닙니다. 예배드리는 것이 주말에 영화 보러 가는 것과 같은 기분 전환용 행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교회에서 평화를 경험합니다. 평화를 경험한 사람만이 평화를 전할 수 있습니다. 누가 이 땅에 평화를 가지고 올 수 있겠습니까? 평화를 경험한 사람들만이 이 땅에 평화를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어릴 때 가정학대에 시달린 사람, 혹은 강요와 압박과 체벌을 겪으며 성장한 사람이 누군가의 아빠나 엄마가 되면 그 사람이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평화를 전할 수 있겠습니까? 어려운 일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끔찍한 뉴스를 들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서 우리 어린 자녀들의 삶을 끔찍하게 짓밟았고 우리의 자녀들이 오랫동안 그런 일을 겪었지만 우리는 이제야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몸서리치게 끔찍한 폭력입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여러 가지 폭력이 난무합니다. 사악한 폭력을 저지른 자들은 그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가혹한 형벌이 폭력을 멈출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폭력을 멈출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평화를 경험한 여러분이 평화의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평화를 경험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는 자연스럽게 평화로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예배는 소중합니다. 기분 전환용 문화생활이 아닙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경험하고 평화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속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교회에서 평화를 경험한 사람은 세상에 나가서 시편 1228절의 말씀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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