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설교

[사랑해설2-1] 누룩과 몸뻬 바지_누가복음 13:20-21

설왕은 2020. 4. 26. 11:55

( 13:20-21, 개정) [20]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설왕은TV #설교동영상 #누룩과 몸뻬 바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여러분들 얼굴 뵈니까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천국이네요. 제 생각에 천국이 지금 우리들의 모임과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얼굴 보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고 맛있는 것 먹으면서 함께 웃고, 이런 곳이 바로 천국이지요.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순간부터 천국에서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얼굴 보니까 진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고 여기가 하나님 나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마스크를 쓰고 계셔서 여러분의 얼굴을 반밖에 못 본다는 것이 참 아쉽네요.

 

오늘부터 저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사랑해설2입니다. 제가 사랑해설이라는 제목으로 예수님의 비유를 사랑으로 풀어냈는데요. 예수님의 비유가 매우 많은데 그 중에 11개 정도만 사용을 했습니다. 그것도 충분히 다 풀어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저의 역량을 모두 다 이끌어내서 글을 썼기 때문에 좀 지쳐서 예수님의 비유는 그만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비유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이야기 속으로 더 들어가야 하는데 제가 너무 빨리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멈출 때가 아닌 것 같아서 다시 돌아와 예수님께서 그려 주신 하나님 나라 앞에 다시 서 보려고 합니다.

 

Image by Andreas Lischka from Pixabay  

 

그 첫 시간입니다. 누룩의 비유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과 같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도 이 비유가 나오고 마태복음에도 이 비유가 나오고요. 성경에는 들어가 있지 않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에 대한 기록이 매우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인정받는 도마복음에도 이 비유가 나옵니다. 많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이 즐겨 사용하셨던 비유이기도 했고 또한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았던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비유는 매우 충격적인 비유입니다. 그래서 아마 사람들의 기억에 더 남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누룩과 같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누룩은 뭐죠? 빵을 부풀게 할 때 쓰는 것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옛날에 빵을 안 먹었으니까, 누룩은 주로 막걸리를 만들 때 사용했습니다. 누룩은 일종의 곰팡이입니다. 식용곰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용곰팡이더라도 누룩은 어쨌든 곰팡이입니다. 집에 겨울에 습기차고 눅눅해지면 곰팡이가 생기잖아요. 여러분 곰팡이 보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곰팡이 보면 기분이 좋아지시는 분은 없으실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나라를 가장 최고의, 극상의 가치를 지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삐까뻔쩍하고 으리으리하고 깨끗하고 순결하고 휘황찬란한 곳으로 상상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이 부시게 찬란한 어떤 것과 같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곰팡이와 같습니다.” 이것을 제대로 알아들은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 뭐라고? 그게 말이 되나?”

 

여러분 욕실에 생긴 곰팡이를 보면서 아이고, 여기 하나님의 나라가 있네.”라고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곰팡이를 보면, “아이고, 욕실 청소해야겠다.”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곰팡이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신 것입니다. 물론 누룩은 식용 곰팡이이기 때문에 일반 곰팡이와 다르지만 그래도, 그래도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는 데는 참 적절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 비유를 그냥 별다른 충격 없이 받아들이는 이유는 이 비유를 심각하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룩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별로 없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와는 다르게,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누룩은 하찮은 곰팡이이기도 하지만 또한 누룩은 항상 나쁜 것을 상징하는 비유로 사용되었거든요. 누룩의 발효 과정은 도덕적 타락 과정을 표현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냉장고에 음식 오래 두면 어떻게 되나요? 오래 둔 음식의 뚜껑을 열어보면 곰팡이가 피어서 꽃이 핀 것처럼 부풀어 올라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룩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식으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 8:15, 개정)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 12:1, 개정)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고전 5:6-8, 개정)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그리고 유대인의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유월절에는 누룩이 든 빵을 집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누룩 없는 빵, 무교병은 거룩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갑자기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과 같다고 말씀하셨으니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가 의미하는 바는 사실 단순, 명료합니다. 누룩은 매우 적은 양이지만 그것이 밀가루 전체에 영향을 미쳐서 그것을 부풀게 한다는 것입니다. 누룩의 발효 과정이 부패를 표현하는데 은유적으로 사용될 때가 많지만 예수님이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밀가루 전체에 영향을 다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비유에서 우리가 누룩과 더불어 주목해야 할 단어는 전부라는 단어입니다. 성경에 나온 밀가루 서 말의 양은 40kg의 분량입니다. 누룩은 적은 양이라도 그렇게 많은 밀가루를 전부 다 부풀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이 비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는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심히 창대하다는 말씀이죠.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비록 매우 적더라도 그 영향력은 실로 굉장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좋은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처럼 작게 시작했다가 크게 번영하고 그 성장세가 아주 폭발적이라는 데 우리가 기분 나쁠 일은 없습니다. 적은 누룩이 밀가루 한 포대를 부풀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그렇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누가 누룩일까요? 누가 누룩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가 바로 누룩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은 곰팡이입니다.” 이 말은 기분 나쁜 말입니다. 아마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다면 , 예수님. 아무리 예수님이어도 말씀 너무 막 하시네.’라고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구별되는 것 같습니다. 구원을 받으면 우리가 구별되어서 우리는 천국에 가고 그리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가고, 그런 암시를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우리는 부자가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가난한 삶을 살고, 그런 느낌이죠.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에게 지혜를 주시면 우리 자녀들은 공부 잘 해서 의사가 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대학에 못 가고, 왠지 그럴 것 같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으면 특별하게 구별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누룩의 비유를 보면 아닙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씨앗으로서, 누룩으로서, 세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도 다가가야 합니다. 밀가루 40kg을 전부 부풀게 하는 누룩처럼, 구원받은 사람은 세상 속에 구석구석 파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지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 속에 침투하고 더 깊숙이 들어가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모든 사람과 연결되고 더불어 이 세상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소통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아끼고 보살피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 구원받는 것은 피곤하고 힘들고 괴로운 일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신경을 써야 하니까요.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니까 얼마나 괴롭고 힘든 일입니까?

 

그러나 현재 우리는 누룩처럼 그렇게 전부 다 부풀게 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얀 옷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가운을 입기도 합니다. 성가대도 가운을 입고, 헌금위원도 입고, 목사님도 입으시죠. 순결한 백성, 거룩한 백성으로서 흰 색의 가운이 구원받은 우리에게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새하얀 와이셔츠 혹은 새하얀 실크 원피스를 입고 짜장면이나 짬뽕을 먹을 수 있습니까? 삼겹살 구워 먹으러 갈 수 있습니까? 갈 수는 있는데 아무래도 꺼려질 것입니다. 짬뽕 먹으면 반드시 옷에 튀깁니다. 짬뽕 국물 잘 안 지워집니다. 그러면 화가 나겠죠? 그러니까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 안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부 다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깨끗하고 순결하다고 생각하면 더러운 사람에게 다가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더러운 것이 내게 묻으니까요. 사람들을 보면 가끔 우리의 사랑을 주기에 좀 꺼려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런 나쁜 놈을 사랑해 줄 필요가 있나, 하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그런 태도가 확실했죠. 바리새인이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들도 세리나 창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꺼려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아니셨죠. 거침이 없으셨습니다. 세리 집에 가서 저녁 식사도 하시고 창녀에게 손을 대고 기도해주고 죄사함을 선포하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우리에게 흰 옷을 입히고 깨끗한 곳, 거룩한 곳, 구별된 곳에 가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으로 흰 옷을 입을 것이 아니라 작업복을 입어야 합니다. 몸뻬바지를 입어야 합니다. 참고로 몸뻬는 여성용 작업바지를 의미하는 일본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누룩을 비유로 드신 것 같습니다. 깨끗하고 고결하고 순결한 것이 아닌 세상 어디에나 침투해 들어가는 곰팡이로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하신 것이죠. 우리는 작업복을 입고 세상 곳곳에 침투해서 전부 다 부풀게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차별 없는 사랑을 모두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누룩이 더러운 것이 묻을까 봐 두려워서 가지 못하는 곳이 있겠습니까? 곰팡이는 다 가죠. 다 갑니다. 안 가는 데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흰 옷이 아닌 작업복을 입고 모든 사람과 어울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나는 깨끗하고 순결해서 너희랑 어울릴 수 없어, 라고 생각하는 것은 누룩의 자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거룩한 백성은 흰 옷을 입고 거룩한 장식을 달아야 할 것 같고 성전에만 머물러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작업복을 입고 세상 구석구석으로 들어가서 너희들이 더럽다고 천하다고 소외시켰던 사람들에게 다가가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누룩처럼 전부 부풀게 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특별히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더 그렇죠.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싫어하는 사람 있으세요? 진짜 싫은 사람,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 있습니까? 저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정치인도 있고, 또 저에게 나쁘게 군 사람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 속에 딱 떠오르는 생각이 망해라입니다. 그런 사람을 떠올리면 내가 그 사람보다는 낫지라고 생각하며 그 사람은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는 누룩 같다고 했으니까 그 사람도 사랑해야 하는데라고 생각은 해도, 잘 안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라고 했으니까 억지로 해야지, 하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내 마음이 그렇지 않은데 내 행동을 그렇게 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여러분을 초대해서 파스타를 대접했다고 하죠. 제가 하면 얼마나 하겠습니까? 그냥 먹을 만한 정도로 하겠죠. 조금 맛있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걸 먹고도 여러분은 어우, 목사님. 맛있네요.” 하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조금 맛있지만 조금 과장을 하는 것이죠. 그 정도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아주 맛없고 역겨운 음식을 먹으면서 , 이거 진짜 맛있네요.”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이 진짜 원수와 같은 사람이어서 정말 미울 때 그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내 마음으로 어느 정도 용서하고 이해하고 화난 마음이 누그러져야 그 사람을 비로소 사랑할 여유가 생깁니다. 너무 싫은데 그 사람을 억지로 사랑하려고 하면 정신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마음과 행동을 불일치시켜야 하니까 정신이 힘든 거죠. 오늘 말씀을 듣고 여러분이 그래, 결심했어. 나는 지금 이 순간부터 모든 사람을 사랑할 거야.”라고 마음의 결정을 내려도 여러분이 정말 누룩처럼 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용서와 이해가 먼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실천이 오히려 여러분을 더 위기에 빠뜨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음 주일에도 이 곳에 모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예배가 필요합니다. 예배를 통해,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 때로는 마음 한 구석에 있는 단단하게 박혀 있는 증오와 원한의 바위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깨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편견 없는 차별 없는, 정도가 넘치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 정신입니다. 순결하고 거룩한 흰 옷을 입고 나와 너희들은 다르다는 생각으로 나를 구별해서는 안 됩니다. 누룩은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곰팡이는 더럽고 눅눅하고 습기차고 어두운 곳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곳에 먼저 곰팡이가 나타납니다. 우리 모두 희고 거룩한 가운을 벗읍시다. 지금 입고 있지 않다면 앞으로도 입을 생각을 하지 맙시다. 그리고 우리 함께 몸뻬 바지를 입읍시다. 몸뻬 바지를 입고 소매를 걷어 부치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의 수고를 위해 다가설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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