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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_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함께 고민하는 것까지

설왕은 2022. 2. 17. 09:00

이미 오래전에 우리나라에서 100만 부가 넘게 팔리고 교양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봐야 하는 책으로 여겨질 수 있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저는 2022년 2월에야 읽었습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저는 베스트셀러에 대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팔리기 위한 책을 만들기 위해서 과도한 양념을 집어넣거나 자극적인 내용을 집어넣거나 아니면 깊이가 너무 없게 쓴 수없이 많은 베스트셀러를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그래서 별로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대중을 대상으로 쓴 책은 학문적 깊이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의'에 대한 심도 있는 내용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 책을 읽고 별 내용이 없었다고 실망하는 서평도 본 적이 있어서 '그러면 그렇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갑자기 읽게 된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마이클 샌델이 쓴 "정의의 한계"라는 책에서 샌델의 질문 능력에 감탄했기 때문입니다. 샌델은 그 책에서 종교의 자유가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질문했는데 아주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좋은 글도 쓸 수 있기 때문에 "정의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제가 요새 이마누엘 칸트에게 관심이 있는데요. 뉴욕 타임스에 올라온 이 책의 리뷰를 보니 샌델이 칸트를 설명한 부분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 부분, 5강 중요한 것은 동기다라는 제목을 가진 이마누엘 칸트의 철학을 설명한 부분부터 읽었습니다. 제가 읽은 칸트 설명 중 가장 흥미롭게 서술된 글이었습니다. 

 

제가 볼 때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은 내용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책이 아니거든요. 원제는 훨씬 더 주제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 번역하면, "정의: 해야 할 올바른 일은 무엇인가?" 정도가 되겠네요. 이 책은 정의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어떻게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지 그 방법에 대해서 제안하는 책입니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 준다. 이때 누가, 왜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다 보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33)

 

정의라는 것은 간단하게 설명하면 잘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샌델도 그런 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잘 나누어 줄 것인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죠. 여기서 문제가 복잡해지는데, 샌델은 이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샌델이 제시하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샌델이 직접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기억하기 쉽게 구분하자면 그 세 가지는, 공리주의, 자유주의, 도덕주의의 방법입니다. 책은 10개의 강의로 나누어져 있지만 전체 내용은 이 세 가지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강은 오리엔테이션의 성격이 강하고 10강은 정리하는 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방법에 대해서 샌델이 10강에서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탐색했다. 어떤 이는 정의란 공리나 행복 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선택은 자유시장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행하는 선택일 수도 있고(자유지상주의의 견해),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행할 법한' 가언적 선택일 수도 있다(자유주의적 평등주의의 견해), 마지막으로 어떤 이는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쯤에서 독자들도 눈치챘겠지만, 나는 세 번째 방식을 좋아한다. 왜 그런지 설명해보겠다. (360-361)

 

 

첫 번째나 두 번째 방법은 세 번째 방법에 비해서 쉽습니다. 첫 번째 공리주의의 방법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서 나누는 것이죠. 행복을 수치화해서 최대치를 달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행복을 수치화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단 그 기준을 잡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쉽게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자유를 존중하는 방법은 사람들의 기호를 그대로 존중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도덕적 가치는 여기서 힘을 못 쓰죠. 그리고 자유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이미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유롭게 놔두면 결국 힘이 센 사람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가야 하는데 사실 세 번째 방법이 가장 어려운 방법입니다. 샌델은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라고 주장합니다.(362) 그런데 이게 문제입니다. 올바른 가치 측정을 어떻게 할 수 있냐는 것이죠. 우리의 삶에 미덕이 무엇인지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 하고 공동선이 무엇인지 말 그대로 고민을 해야 합니다.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좋은 삶을 다 같이 고민한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정치 담론이 우리를 그 방향으로 이끌지를 묻는 문제가 남는다. 나는 이 질문에 확실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제안을 할 수는 있다. 첫째는 관찰이다. 오늘날의 정치적 주장은 대개 행복과 자유, 즉 경제성장과 권리 존중이 중심이 된다. 정치에서 미덕이라고 하면, 보수적 종교인이 이렇게 살아라 하고 말하는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미덕과 공동선이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은 그것만이 아니다. 문제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정치를 구상하고, 더불어 그런 문제를 성이나 낙태만이 아니라 경제와 시민의 관심사라는 폭넓은 영역으로 끌어내는 정치를 구상하는 일이다. (362)

 

 

샌델도 어떻게 정의를 구현해야 할지에 대해서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하는데 첫 번째가 관찰이죠. 관찰이라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가장 큰 주체는 국가입니다. 그리고 국가는 정치를 통해서 정의를 구현합니다. 따라서 국가가 정치를 통해서 정의를 구현할 때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고려해야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실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통해서 우리가 해야 할 올바른 일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샌델은 가치중립적인 정의 구현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저는 샌델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책의 마지막 두 단락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지막 내용이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지만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도덕적 이견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상호 존중의 토대를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동료 시민이 공적 삶에서 드러내는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피하기보다는 때로는 그것에 도전하고 경계하면서, 때로는 그것을 경청하고 학습하면서, 더욱 직접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어려운 도덕 질문을 공개적으로 고민한다고 해서 어느 상황에서든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거나, 심지어 타인의 도덕적, 종교적 견해를 평가할 수 있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도덕적, 종교적 교리를 더 많이 알수록 그것이 더 싫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해보기 전까지는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찬 기반을 제공한다. (270-271) 

 

샌델의 하바드 강의 

 

마지막으로 저는 이 책을 통해 좋은 강의가 어떤 강의인지 감이 왔습니다. 이 책은 샌델이 하바드에서 강의한 내용을 기반으로 구성한 책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내용은 강의에서 언급한 것이겠죠. 이 책을 읽으면 샌델이 학생들과 어떻게 강의를 만들어가는지 상상이 됩니다. 아주 생동감 있는 강의일 것 같습니다. 생동감을 주는 요소는 구체적인 사례입니다. 이론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례를 들어서 학생들에게 생각하고 답변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이론은 머릿속에 금방 안 들어와도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제시하면 그에 대한 대답은 할 수 있죠. 그 대답에는 자신의 판단 기준이 들어가 있고요. 사실 샌델은 오래된 철학자들의 복잡한 이론을 설명하고 있는데 현재의 사례로 설명하니까 전혀 고리타분하다는 느낌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좋은 강의는 이런 강의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리하면, 제가 이 책을 통해 얻은 이득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정의는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둘째, 칸트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셋째, 좋은 강의란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조만간 샌델의 다른 책을 읽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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