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한국단편소설] 박완서 "자전거 도둑" (1979)_누가 좀 말려줘!

설왕은 2022. 6. 13. 09:00

1979년에 처음 발표된 박완서 작가의 "자전거 도둑"은 시대 배경이 지금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1970년 대면 우리나라가 전후 복구 이후에 산업 발전에 총력을 기울이던 시기입니다. 도시에 사람들이 모이고 더불어서 여러 가지 산업이 급격하게 발전하던 시기이지요. 사회가 급변하는 시기에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도 있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뒤처지는 사람도 있게 마련입니다. 이 소설은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이 소년은 전기용품 도매상에서 일하면서 공부도 하면서 성공을 꿈꾸는 소년입니다. 이 소년이 자전거 도둑으로 몰리는 이야기인데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 소년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자전거를 훔치게 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는 소설입니다. 

 

 

"자전거 도둑"은 단편소설이지만 상황이 매우 복잡한 소설입니다. 도둑이 자전거를 훔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렇게 자신의 자전거를 훔칠 수도 있고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울 수도 있다는 상황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수남이는 소년이라고 나오지만 실은 열여섯 살 청소년입니다. 학교에 다니지 않고 벌써 사회에 진출해서 도매상 점원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소년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이 든 어른들이 볼 때는 아직도 소년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는데 소년의 처지를 어른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수남이는 어른이 볼 때는 아직 많이 어린 소년에 불과합니다. 수남이는 물건을 배달하러 왔다가 자전거를 세워 놓았는데 그 자전거가 옆에 있던 자동차에 쓰러져서 자동차에 흠집이 납니다. 그래서 자동차 주인이 변상을 요구하는데 돈이 있을 턱이 없는 수남이는 우물쭈물하죠. 그러자 자동차 주인은 자물쇠를 사서 수남이는 자전거에 채웁니다. 돈을 가지고 오면 돌려주겠다고 말하면서요. 자전거를 놓고 갈 수 없는 수남이는 자전거를 들고뜁니다. 자동차 주인에게 발각되면 안 되기 때문에 열심히 달렸겠죠. 

 

정말이지 조금도 안 무거웠다. 타고 달릴 때보다 더 신나게 달렸다. 달리면서 마치 오래 참았던 오줌을 시원스레 내깔기는 듯한 쾌감까지 느꼈다. 

 

 

이렇게 쾌감까지 느끼면서 달릴 수 있었던 이유는 수남이가 봉변을 당하는 장면을 구경하던 사람들의 부추김도 있었고 또한 수남이의 처지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배상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수남이는 마음이 마냥 가볍지는 않았습니다. 수남이가 도매상으로 돌아왔을 때 주인 영감님이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을 묻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영감님은 수남이를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통쾌해하면서 칭찬합니다. 그리고 가게에 있는 장비를 이용해서 자물쇠를 분해해 버립니다. 그 순간 수남이의 심정을 박완서 작가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엎드려서 그 짓을 하고 있는 주인 영감님이 수남이의 눈에 흡사 도둑놈 두목 같아 보여 속으로 정이 떨어진다. 주인 영감님 얼굴이 누런 똥빛인 것조차 지금 깨달은 것 같아 속이 메스껍다.

 

어떻게 보면 일이 잘 해결된 것 같은데 수남이의 마음은 영 불편합니다. 자동차 주인에게만 곤란한 일을 당했을 뿐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이 수남이 편에 서 있는 것 같은데 수남이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죠. 수남이의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자전거를 들고 달렸을 때 느꼈던 쾌감과 분명히 그 일 자체가 잘한 일이 아닌데 오히려 칭찬을 했던 주인 영감님의 태도였습니다. 

 

소년은 아버지가 그리웠다. 도덕적으로 자기를 견제해 줄 어른이 그리웠다. 주인 영감님은 자기가 한 짓을 나무라기는커녕 손해 안 난 것만 좋아서 '오늘 운 텄다.'라고 좋아하지 않았던가.

 

 

결국 수남이는 도매상을 떠날 결심을 하고 짐을 꾸립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결말이 좀 아쉬웠습니다. 수남이의 결정이 좀 안타까웠습니다. 뭐 이까짓 일 가지고 주인 영감님에게 실망하고 도매상을 떠나는 것일까. 수남이에게 도매상 주인 영감님 정도로 잘해 주는 사람을 또 찾는 것이 어려울 텐데. 물론 주인 영감님의 행동이 옳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른이라면 응당 자기 가게의 점원이 일을 하다가 한 실수에 대해서 자신이 나서서 배상을 해 주었어야 할 텐데, 그러지 않았죠. 수남이의 결정이 아쉬웠던 이유는 아마 저도 꽤 때가 묻은 어른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도 수남이를 도덕적으로 견제해 줄 어른이 아닌 것이죠.

 

사람들이 모두 다 부도덕적으로 살면 자신이 도덕적인지 부도덕적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냥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나도 그에 맞추어서 산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수남이의 눈에는 그리고 그의 마음에는 이런 식의 삶의 태도는 옳지 않았던 것이죠. 시골에서 올라온 수남이에게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습관적인 부도덕성이 매우 불편했을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도 그런 어른들 중 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소설은 이렇게 끝납니다. 

 

수남이는 결국 짐을 꾸렸다. 아아, 내일도 바람이 불었으면. 바람이 물결치는 보리밭을 보았으면.
마침내 결심을 굳힌 수남이의 얼굴은 누런 똥빛이 말끔히 가시고, 소년다운 청순함으로 빛났다. 

 

 

그래, 수남아. 바람이 물결치는 보리밭 같은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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