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충격받았어요_이오덕 "우리글 바로 쓰기"

설왕은 2019. 11. 28. 19:00

사실 이 글의 제목을 처음에는 '너무 충격적이다'로 하려고 했는데요. 생각해 보니 이 역시 좋은 문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이 책 덕분이지요. '너무 충격적이다'는 말에서 문제는 '적'입니다. '너무 충격이다'로 말해도 되는데 '적'을 붙이는 것은 좋은 글쓰기가 아닙니다. '적'을 붙이면 안 되는 이유는 첫째, 중국글자 말투입니다. '적'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주로 추상적인 뜻이나 동작, 상태 따위를 나타내는 서술성 한자어(漢字語) 명사 뒤에 붙어, ‘그런 상태로 된’, ‘그런 성질을 띤’, ‘그것에 관계된’ 등의 뜻을 더하여 관형사를 만드는 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중국글자에서 추상 명사를 관형사로 만들기 위해서 붙이는 한자가 바로 '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그대로 따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충격적'이라는 말은 관형사인데 '이다'를 붙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관형사는 체언 앞에 써서 체언을 꾸며 주는 말인데요. 예를 들어 '아름다운'은 관형사로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다를 붙여서 '아름다운이다'로 쓴다면 이상한 말이 되겠지요. 이와 같이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 쓰기"를 읽고 저는 우리가 쓰고 있는 글이 얼마나 잘못된 글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충격을 받은 내용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이런 책은 거듭 읽어서 백신 주사 맞듯이 머릿속에 담아 두어야 합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우리말이 오염된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지만, 제가 볼 때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중국말, 다른 하나는 일본말입니다. 물론 영어로 인한 오염도 있지만 대체로 영어는 영어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에 중국말, 일본말은 우리가 우리말이라고 생각하고 쓰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의'입니다. '의'를 써야 말이 되는 언어는 일본말입니다. 일본말은 '의'를 정말 많이 쓴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말은 의를 쓰지 않습니다. 이오덕은 우리나라 말은 의를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에 의를 쓰는 것을 꺼려했다고 추정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의 여행"은 일본식의 표현입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서울에서 여행하다"가 되겠지요. 이 책에서 이오덕은 그런 분석은 하지 않지만 의를 쓰게 되면 문장에 명사가 늘어납니다. 이오덕은 명사를 이름씨라고 부르는데요. 좋은 이름이에요. 문장에 이름씨가 늘어나면 동사, 즉 움직씨가 줄어듭니다. 문장에 움직씨가 많으면 아무래도 글을 읽는 사람이 움직이고 싶은 생각이 들겠죠. 그러나 이름씨가 많으면 문장 자체도 역동성이 떨어지고 그 문장을 쓰는 사람, 읽는 사람에게도 비슷한 영향이 미칠 것입니다. 

 

제가 또 충격을 받은 사실은 '그녀'라는 표현입니다. '그녀'는 일본말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긴 표현이라고 하네요. 이오덕은 우리나라에서는 원래 그녀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오덕이 말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여자를 상스럽게 부르는 말인 '그년'과 혼동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고요. 저도 설명을 하면서 '그녀'라는 표현을 썼을 때 좀 어색하기도 하고 또한 잘못 들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했던 일이 여러 번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나 '그녀' 모두 일상에서 쓰지 않습니다. 그 사람, 그 여자, 그 남자, 혹은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 할아버지 이렇게 표현하지 그, 그녀 모두 쓰지 않습니다. 그녀가 일본식 표현이라고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영어식 표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영어에서는 웬만한 경우에 나와 네가 아니면 모두 그(he)와 그녀(she)로 받으니까요. 3인칭의 사람을 그와 그녀로 쓰는데 실제로 영어로 문장을 만들어서 대화하다 보면 정말 입에 잘 붙지 않고 어색한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제가 영어를 잘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말에서 그렇게 표현을 안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한 중국글자말로 움직씨를 만들어 우리말 동사를 밀어내고 있는 것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말로 다툰다를 중국글자말로 경쟁한다로 바꿀 수 있습니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는 우리나라 움직씨가 없어지고 중국글자 이름씨에 '한다'를 붙인 재미없는 움직씨가 생긴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중국글자말에 '한다'를 붙여서 움직씨를 만들다 보니 잘못 만든 움직씨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자유케는 자유하게의 줄임말로 기본형은 자유하다입니다. 그러나 자유는 여기에 그림씨를 붙여서 자유롭다로 쓰지, 자유하다로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이오덕 선생님은 지적합니다. 다행하게도 새로 개정된 성경에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고 제대로 고쳐 놓았습니다. 

 

이 외에도 충격을 받은 내용이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잘못 사용하고 있는 단어와 문장이 아주 다양합니다. 그리고 이오덕 선생님의 주장 중 하나가 글을 쓸 때 살아 있는 말을 글로 옮겨야 한다는 것인데요. 저도 완전 공감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는 살아 있는 말을 하다가도 글로 옮기면 그 운율과 재미와 느낌을 못 살리고 죽은 문장으로 만들 때가 많습니다. 살아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주장은 정말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하는 말입니다. 

 

이 책을 읽고 저는 심히 부끄러웠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이 한글을 이렇게 모르고 있었구나, 하고 탄식했습니다. 탄식도 우리말로 바꾸고 싶은데 적당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네요. 또 한숨이 나옵니다.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 쓰기"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권씩 사서 책장에 두고, 두고두고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