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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은 흐른다/로랑스 드빌레로_바다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

요새 자꾸 바다가 보고 싶어서 종종 바다에 간다. 어렸을 때는 바다에 놀러 가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바다를 보러 간다. 그냥 보고 싶다. 보고 싶다는 감정이 바다에게 생기다니... 나 스스로에게 놀란다. 바다에 가는 것은 좋은데 다른 사람들은 바다에 가서 어떤 느낌을 받고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그래서 찾아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로랑스 드빌레로라는 프랑스 철학자다. 책 앞날개에 보면 프랑스 최고의 철학과 교수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이해인 수녀님 덕분이었다. 바다에 관한 책을 찾다가 이해인 수녀님이 추천한 이 책을 알게 되었다. 무슨 책일지 궁금했다. 철학자가 썼다고 하니 딱딱한 이야기일 것 같기도 했고 제목을 보니 어려운 책은..

이 책 어때? 2024.04.11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로완 윌리엄스_그리스도인이라면

로완 윌리엄스는 목회자이면서 신학자이다. 목회자가 쓴 책은 지나치게 성경 안에 갇혀 있는 글이 되기가 쉽고 신학자가 쓴 책은 너무 어렵거나 이론적인 면에 치우쳐서 실천을 고려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윌리엄스의 글은 아주 균형을 잘 잡고 있는 책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주제 자체도 아주 실천적인 것 아닌가? 책 안을 들여다보면 네 가지 소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세례, 성경, 성찬례, 기도이다. 읽어 보니 균형을 잘 잡고 있는 책이고 본질적인 내용을 짧게 잘 정리한 글이었다. 윌리엄스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는 핵심 요소 네 가지를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믿고 천국에 가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틀린 말은 ..

이 책 어때? 2024.03.22

사막의 지혜/로완 윌리엄스_공동체 삶을 위한 고독?

'사막의 지혜'는 3세기 중반 이집트 사막에서 일어났던 수도원 운동 속에서 활동했던 수도사들이 얻는 삶의 지혜를 나누고 있는 책이다. 나는 그리스도교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다. 그리스도교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선도해 나가고자 하는 의도가 가득한 종교다. 따라서 세상을 등지고 칩거하거나 홀로 떨어져서 도를 닦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로완 윌리엄스가 썼기 때문이다. 윌리엄스는 누구보다도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학자이다. 그런 그가 사막의 수도사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면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주는 좋은 가르침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막의 수도사들은 철저하..

이 책 어때? 2024.03.21

눈먼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_우리 안에 뭔가가 있어요

눈먼 자들의 도시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가 쓴 대표적인 장편 소설이다. 나는 어떤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그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나만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의미하는 것은 그 작가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평론가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 소설이 재미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작품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내 기준으로는 별로일 수도 있고 또는 그 작품성이라는 것은 특정 상황에서만 빛을 발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작품성이라는 것이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키기도 한다. 작품성을 유지하느라고 재미의 요소를 고려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게 된 것은 소재의 독특성 때문..

이 책 어때? 2024.03.20

루미나리스/로완 윌리엄스_세상의 빛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제목이 희한하다. ‘루미나리스’가 원제인 것 같은데 영어로 luminaries이고 단수형은 luminary이다. 내가 알기로는 빛나는 것 정도의 뜻을 가진 걸로 알고 있는데, 잘 쓰는 단어는 아니라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영한사전을 찾아보니 루미나리는 선각자, 권위자, 지도자라는 뜻도 있고 발광체라는 뜻도 있다. 발광체라고 하면 말이 좀 거친 것 같은데, 등불 정도로 번역해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옥스퍼드 영영사전을 찾아보니 발광체라는 뜻은 없고 그냥 어떤 분야의 전문가 또는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라는 뜻만 있다. 아마도 주로 사람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아마도 luminary를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고 영어를 그대로 쓴 이유는 아마도 뭔가 있어 보이려고 한 것 같다. 이렇게 좀 있어 ..

이 책 어때? 2024.03.19

어쩌다 보니, SNS 마케팅으로 월 1,000을 버는 사람이 되어버렸다/정현주_기본적인 내용과 희망이 많이 섞인 제목

나도 유튜브, 인스타, 블로그 다 하는데 공부도 안 하고 막 하고 있다. '뭐, 이런 걸 공부한다고 될 일인가, 그냥 하면 되는 거지'라고 하고 시작했는데 역시나 잘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나름 몇 년 동안 하다 보니 대충 내용은 알고 있고 어떻게 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래도 잘하는 사람은 뭔가 다를까 싶어서 책을 찾아보았다. 사람들의 손이 많이 간 것 같은 책을 한 권 집어 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이 책은 블로그, 인스타, 유튜브에 대한 설명을 다 담고 있다. 특별한 노하우가 담겨 있다기보다는 기본 정보를 담고 있다. 제목을 잘못 지은 것이 아닐까? 'SNS 이렇게 시작하라' 정도로 해야 하지 않았을까? 유튜브, 인스타, 블로그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

이 책 어때? 2024.02.09

너 어떻게 살래/이어령_랑으로 살아라

* 책을 소개합니다. 이어령 "너 어떻게 살래" 이 책은 독특하다. 인공지능에 관련된 책인데 인공지능에만 집중하고 있는 책이 아니다. 제목부터 그렇지 않은가? 제목이 "너 어떻게 살래"이고 부제가 "인공지능에 그리는 인간의 무늬"다. 두루뭉술하게 말하면 인공지능과 관련한 인문학 이야기다. 아는 것 많은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설명해 주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한참을 설명하기도 하고, 인공지능과 대한민국의 관계에 대해서 뜻밖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공지능을 설명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있는 책이다. 너 어떻게 살래라고 묻고 있지만 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거기에 따를지 말지는 독자의..

이 책 어때? 2024.01.11

[세계단편소설] 에드거 앨런 포 "어셔가의 몰락"_수수께끼 같은 소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은 당황스럽다. 가끔 글을 읽다 보면 작가가 제정신인가, 하고 궁금할 때가 있는데 포의 소설도 살짝 그런 느낌을 준다. 살짝이라고 말한 이유는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섬세한 묘사나 치밀한 구성을 가진 소설이 분명히 말하고 싶은 바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포의 소설은 범상치 않다. 그런데 그의 소설이 과연 위대한가에 대해서는 '글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대의 미국 사람들은 그의 위대함을 발견하지 못했고 후대의 미국인들도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프랑스 작가들에 의해서 포는 재발견되었고 그의 작품은 '미와 전율'이라는 문구와 함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포의 작품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미국 사람들과 비슷하다. 잘 모르겠다. 미와 전..

세계단편소설 2023.09.19

[책]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1959)_사랑을 믿지 않는 폴

사강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은 자신을 조제라고 부르라고 한다. 하지만 원래 이름은 쿠미코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을 읽고 나서 조제라는 그 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이 마음에 들어 자신을 조제라고 부르라고 한다. 나는 사강이 유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좋은 소설의 인상 깊은 문구 때문에 영화에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프랑수아즈 사강은 유명한 사람이었다. 사강은 아주 젊었을 때 쓴 소설이 성공해서 유명세를 탔고 그뿐만 아니라 문제아 같은 행동을 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청소년이라면 어려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강은 그렇지 않았다. 마약 투여 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에도 사강은 당..

이 책 어때? 2023.08.22

[책]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_우리 잘 살고 있는 걸까?

피츠제럴드가 쓴 "위대한 개츠비"는 제목에 들어간 위대한great이라는 단어 덕분인지 위대한 소설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나면 두 가지 의문이 들게 마련이다. 첫째는, 개츠비가 왜 위대하지?, 라는 질문이고, 둘째는 왜 "위대한 개츠비"가 위대한 소설이지?, 라는 질문이다. 첫 번째 질문도 대답하기 어렵고 두 번째 질문도 쉽지 않다. 보통 사람들이 읽기에는 둘 다 납득할 수 없다. 개츠비고 위대하지 않고 이 소설도 그리 위대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랬는지 1925년에 출판된 "위대한 개츠비"는 출판 당시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이전에 출판에 피츠제럴드의 작품은 모두 다 성공했는데 "위대한 개츠비"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독자들이 수긍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많은 사..

이 책 어때? 2023.08.18

[책]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_시간의 존재 이유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는 다섯 번 정도 읽은 것 같다. 욕심껏 읽었던 이유는 첫째 레비나스를 이해하고 싶어서였고 둘째 그나마 다른 책보다는 훨씬 얇기 때문이었다.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는 "시간과 타자"라는 제목으로 네 번에 걸쳐 파리에 있는 카르티에 라탱 복판에 있는 장 발의 '철학학교'에서 1946-1947년에 한 강의를 속기로 기록한 책이다. 원래 1948년에 출판되었는데 아마도 절판되었다가 1979년에 다시 출판하면서 레비나스가 서문을 다시 썼다. 1948년에 나온 책과 다른 점은 30년을 더 공부하고 연구한 이후에 레비나스가 붙인 서문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30년 간 학문의 발전이 있었을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고쳐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지만 레비나스는 고쳐 쓰는 일을 포기했다..

이 책 어때? 2023.08.16

[책] 재발명된 공산주의를 꿈꾸며_슬라보예 지젝 "팬데믹 패닉"

슬라보예 지젝/강우성 옮김 "팬데믹 패닉" (서울: 북하우스, 2020) https://youtu.be/lKcX47kvgik 슬라보예 지젝은 참 할 말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지젝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 신학자들보다 성경의 내용을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는 점도 특이하고요. 이 책은 코로나19가 인간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그 의미를 파악하려는 책입니다. 사실 코로나19만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우리가 심각하고 인식하고 있는 기후 변화도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고 극적입니다. 지구가 인류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렇게 살면 조만간 다 죽는다"입니다. 코로나19가 주는 메시지도 비슷한 맥락..

이 책 어때? 2023.08.12

[책]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1847)_나의 복수를 기대해!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김종길 옮김 (민음사, 2005) 영국의 소설가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 1818-1848)가 남긴 유일한 작품 "폭풍의 언덕"(1847)은 히스클리프Heathcliff와 캐서린 언쇼Catherine Earnshaw의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사망 연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에밀리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만을 남긴 채 30세에 요절했다. 29세에 인류 문화유산으로 남을 만한 문학 작품을 남긴 에밀리 브론테. 만약에 에밀리 브론테가 더 오래 살았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약 200년 전에 나온 "폭풍의 언덕"은 지금 읽어도 하나도 촌스럽지 않다. 흥미진진한 추리 소설처럼 몰입감을 주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다. "폭풍의 언덕"의 최대 장점은 캐릭터의 ..

이 책 어때? 2023.03.03

[시] 존 던 "사랑의 식단 조절"_나의 사랑은 다이어트 좀 해야 해

사랑의 식단 조절 나의 사랑은 너무나 육중해 다루기 힘들고 무척이나 거추장스럽게 비대해졌으리라. 만일 내가 그 사랑을 줄여 균형을 맞추려고 식단을 조절하고, 사랑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리 분별'이란 식사를 시키지 않았더라면. 한편으론 내 운명과 잘못에서 비롯하는 한숨을 나는 하루에 한 번 이상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때때로 그가 은밀하게 내 애인의 가슴에서 여성의 한숨을 끌어내어 그것으로 포식할 생각을 하면, 나는 그에게 알려 주었다. 그 한숨은 순수한 것도, 나를 그리워하는 것도 아니라고. 만일 그가 내 눈물을 짜내면, 나는 그 눈물을 경멸이나 수치로 짜게 절여, 그에게 영양분이 되지 않게 했다. 만일 그가 그녀의 눈물을 빨면, 나는 그에게 알려 주었다. 그가 빤 것은 눈물이 아니며, 그가 ..

시그리고시 2023.03.01

[철학하나] 하이데거의 "불안"_불안 is good?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이종만 옮김, 까치, 1998) 제40절 현존재의 한 탁월한 열어 밝혀져 있음인 불안이라는 근본적 처해 있음 p.251-260 하이데거는 불안을 "하나의 탁월한 처해 있음"(a state-of-mind which is distinctive)이라고 주장한다. 영어 번역과 한국어 번역이 많이 다른데 그만큼 하이데거의 철학 개념은 다양하게 해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처해 있음'이라는 말은 일종의 정신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처해 있음'이라는 말은 이 말에서도 대충 짐작할 수 있듯이 인간이 처한 상황이나 일어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불안은 하나의 현상이다. 영어 번역에서는 '탁월한'이라는 의미보다는 눈에 띄는 정도로 번역했는데 '탁월한'이라는 번역도 괜찮은 것 같다. 왜냐하면 하이데..

철학하나 2023.02.28

[철학하나] 하이데거의 "빠져 있음"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제38절 빠져 있음과 내던져져 있음 (이종만 옮김, 까치, 1998) p.240-246 인간은 거기있는 존재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Dasein이라고 표현하는데 우리말로는 현존재라고 번역한다. 이 한 문장을 쓰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드는 것은 일단 하이데거가 말하는 Dasein이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인간이라는 말은 독립된 개인을 의미하는 말로 받아들이기 쉬운데, 그래서 그런지 하이데거는 인간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Dasein이라고 쓴다. Dasein은 거기 있는 존재이다. 개별 존재가 아니라 세계 속에 있는 존재이고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존재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현존재에서 '현..

철학하나 2023.02.22

[시] 존 던 "그림자에 대한 강의"_열두 시에 멈춰라

그림자에 대한 강의 가만히 서 있어요, 사랑하는 이여, 당신에게 사랑의 철학에 대해 강의를 하겠소. 이곳을 거닐며 우리가 보낸 세 시간 동안 우리 스스로가 만든 두 개의 그림자가 우리를 따라다녔지요. 하지만 해가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있는 지금 우리는 그 그림자들을 밟고 있고, 그래서 모든 사물들이 아주 또렷해졌지요. 그처럼 우리의 어린 사랑이 커 가는 동안 우리에게서 가식과 그늘이, 그리고 조심성이 생겼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지요. 남들이 볼까 언제나 노심초사하는 사랑은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이랍니다. 우리의 사랑이 정오인 지금 멈추지 않으면 우리는 반대편에 새 그림자를 만들게 될 겁니다. 남들이 못 보게 하려고 첫 그림자들이 만들어졌으니, 이후에 생기는 이 그림자들은 우리에게 작용해, 우리..

시그리고시 2023.02.16

[책]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_Pride가 있으면 편견도 생기기 마련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윤지관, 전승희 옮김 (민음사, 2003년) 제인 오스틴(1775-1817)이 쓴 "오만과 편견"(1813년 작품)은 가장 유명한 영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영국 사람이 쓴 소설을 단 한 권만 읽는다면 어떤 소설을 고를 것이냐고 묻는다면, 개인차가 있기는 하겠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고를 만한 소설이 바로 이 "오만과 편견"이다. 재벌이 평범한 아가씨와 결혼하는 흔해 빠진 이야기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가볍게 볼 소설은 아니다. 물론 줄거리는 그렇다. 상당한 재산가인 다아시가 중산층 계급인 베넷 가의 엘리자베스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가볍게 볼 소설이 아닌 이유는 "오만과 편견"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또는 영화의 원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

이 책 어때? 2023.02.15

[책] 허먼 멜빌 "모비딕"_죽이려고 아니면 죽으려고?

모비딕이라는 제목이 내게는 익숙하지 않았다. 백경이라는 제목은 많이 들어본 것 같다. '백경'이라는 제목은 전혀 읽고 싶지 않은 제목이다. 차라리 '흰고래'라고 했다면 훨씬 더 상상력을 자극했을 것 같다. 꽤나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백경'이라는 제목으로 허먼 멜빌(1819-1891)의 소설이 알려졌던 것 같다. 나는 멜빌의 모비딕을 이제야 읽고 싶어졌는데 이유는 알베르 카뮈 때문이었다. 카뮈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소설이 모비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이 오래된 소설, 고래를 잡는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카뮈는 실력 있는 소설가이기 때문에 그의 취향은 독특할 수도 있다. 그래서 모비딕을 읽고 싶기도 했지만 머뭇거렸다. 또 한 번의 계기가 있었다. 바로 스타벅이라는 소설 속 인물. 우연히 성..

이 책 어때? 2023.02.10

[시]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내 눈을 못 보게 하여도" (1901)_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내 눈을 못 보게 하여도 내 눈을 못 보게 하여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어요 내 귀를 막아도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요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어요 입이 없어도 당신을 부를 수 있어요 팔을 부러뜨려도 당신을 붙잡을 것이니 마치 손으로 하듯 심장으로 할 거예요 심장을 멈추게 하면 뇌가 고동칠 것이고 당신이 나의 뇌에 불을 놓으면 당신을 내 피에 담아 흐르게 할 거예요. 사랑을 어떻게 멈추게 할 수 있을까? 그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면 아무것도 그것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멈출 수 있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말자. 그대가 나에게 해를 가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대를 사랑할 것이니. 그대가 나를 파괴해도 내 피에 그대를 담을 것이니. 그대가 나를 파괴하더라도 내 사랑을 파괴할 수는 없다. 사랑은 그..

시그리고시 2023.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