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인문학/이야기의 법칙: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왜 비극을 써야 할까?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설왕은 2025. 11. 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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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인간이라면, 시학을 읽어라』 시리즈의 1장: '비극을 써라'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오늘의 이야기와 철학으로 풀어내며, 한 편 한 편이 모여 전자책으로 완성될 예정입니다. 설왕은TV의 영상과 함께 읽으면 더 좋습니다. 

🎭 비극을 써라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비극과 희극.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에 하나를 더했다. 바로 서사시다. 그래서 그는 이야기의 형식을 비극, 희극, 서사시 — 세 가지로 구분했다. 비극과 희극은 배우가 무대 위에서 행동으로 이야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극’이라 불린다. 반면 서사시는 시인이 직접 말이나 노래로 이야기를 전달하기 때문에 ‘극’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고대의 서사시는 신들의 세계까지 포함할 만큼 규모가 컸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없었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 표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오늘날은 다르다.
서사시적 이야기도 영화나 연극을 통해 얼마든지 재현할 수 있다. 결국 현대에는 서사시를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 굳이 ‘서사’라는 말을 쓴다면, 규모가 크고 긴 비극을 ‘비극적 서사’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희극적 서사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1️⃣ 비극은 진실을 대면하게 한다

작가는 비극을 쓸 수도 있고, 희극을 쓸 수도 있다. 그러나 둘 중 하나만 써야 한다면, 비극을 써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말하는 첫 번째 이야기의 법칙이다. 비극은 슬픈 이야기다. 하지만 단순한 슬픔이 아니다. 비극은 인간이 외면하고 싶은 진실, 특히 ‘죽음’을 다루는 이야기다. 인간이 슬픔을 느끼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상실좌절. 무언가를 잃었을 때, 혹은 무언가를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슬픔을 느낀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슬픔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찾아온다. 죽음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 이야기는 대체로 밋밋하고 쉽게 잊힌다. 그래서 진짜 이야기를 쓰려면, 그 이야기는 반드시 죽음과 그에 따른 상실을 다루어야 한다. 삶 속에서 상실과 좌절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특히 죽음은 스스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사건이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다. 그럼에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비극은 바로 이 피할 수 없는 진실을, 이야기 속에서 간접적으로 마주하게 하는 형식이다.


2️⃣ 비극은 삶의 지혜를 가르친다

비극은 단지 슬픔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비극은 인간이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사건을 피하거나 처리하는 지혜를 가르친다.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배워야 한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되, 피할 수 없다면 품위 있게 감당하는 법. 그것이 비극이 주는 통찰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비극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운명과 갈등 속에서도 신중하게 선택하고 행동한다. 그 선택이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고, 비극적 결말을 초래할 수도 있다. 관객은 그의 행동을 통해 배운다. 비극적 사건을 피하거나 견디는 법, 다시 말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운다. 희극의 주인공은 대체로 우리보다 조금 못난 사람이다. 그의 우스꽝스러움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웃음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웃음은 잠시의 위안을 주지만, 비극은 오래 남는 통찰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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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극은 감정의 깊이를 드러낸다

좋은 이야기는 인간의 감정을 흔든다. 희극보다 비극이 더 깊은 울림을 남기는 이유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감정에 더 강하게 지배된다.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무의식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 지배한다.”

 

이야기를 쓴다는 건, 결국 감정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비극은 단순히 눈물을 자아내는 이야기가 아니다. 감정을 인식하고, 그것을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이야기다.


🎬 위대한 비극의 예: 타이타닉과 반지의 제왕

영화 〈타이타닉〉과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은 모두 아카데미 11개 부문을 수상한 작품이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현대의 위대한 비극들이다. 〈타이타닉〉에서 잭은 로즈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차가운 바다 위에 남는다.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고, 자신은 얼어붙은 바다 속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는다. 로즈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 선다. 사랑의 완성은 곧 이별이었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도 비극의 구조는 뚜렷하다. 프로도의 여정에는 수많은 죽음이 겹쳐 있다. 전쟁터에서 이름 없이 쓰러지는 병사들, 절망 속에서도 싸우는 동료들, 그리고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 골룸까지. 이 모든 죽음이 결국 세계의 구원을 완성시킨다. 하지만 프로도는 상처 입은 채 더 이상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 평화를 되찾은 세상에서조차 그는 고통과 불면에 시달리며, 끝내 중간계를 떠나 서쪽으로 항해한다. 관객은 수많은 죽음과 이별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고, 끝까지 그를 지켜보는 샘의 헌신 속에서 연민을 느낀다.


💭 마무리

비극은 인간의 고통을 이야기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것이 바로 비극이 가장 오래 남는 이야기이며, 인간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형식인 이유다.


🎥 함께 보면 좋은 영상

📘 유튜브 | 설왕은TV

https://youtu.be/T3CM3-4e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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