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4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하고 믿어야 하는 이유

삼위일체 교리는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확실히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삼위일체 교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결국 성공할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 교리를 열심히 이해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결국 "만약 무엇인가를 완전히 파악했다면, 그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삼위일체는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어떠한 존재도 신과 같은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설명하려는 삼위일체는 정확히 그 지점까지는 가지 못하고 그 주위만을 맴돌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해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유일신 하나님과 다른 의미를..

신학자의 노트 2019.11.27

[신학노트]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성부수난설과는 다릅니다. 물론, 의미상으로는 거의 비슷한 말입니다. 전자는 한글 표현이고 후자는 한자표현이네요. 성부수난설은 기독교의 정통교리가 아닙니다. 이단으로 배척받는 교리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재조명받고 있는 표현입니다. 성부수난설이 이단으로 배척받는 이유는 단순하게 말하면 이 이론은 삼위일체론을 배격하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것은 또 신봉합니다. 그러면 예수가 곧 하나님인데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말은 곧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희한한 결론이죠. 이는 20세기에 유행한 신죽음의 신학과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성부수난설에 따르면 신은 죽..

신학자의 노트 2019.08.02

[신학노트] 삼위일체, 그리스도인의 신앙 경험

삼위일체 교리의 중요성 기독교 교리 중 제일 중요한 교리는 삼위일체입니다. 삼위일체는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 경험을 한 마디로 표현한 핵심적 진술입니다. 현대 기독교의 제일 큰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삼위일체 신앙의 붕괴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무시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교리를 무시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초대의 기독교인들과 신학자들의 '신 경험'을 무시하는 것이고 기독교 전통의 핵심을 송두리째 부인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논리적 진술이 아닙니다. 경험적, 체험적 진술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인정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교리입니다. 예수의 인성과 신성은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인정되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경험했..

신학자의 노트 2019.03.11

[주기도문] 0_3/4_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_하나님과 삼위일체

여기서 잠깐 우리가 자주 쓰는 ‘하나님’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죠.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신약성서는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소속 중국 선교사인 존 로스(John Ross)가 주도하여 번역해서 1887년에 나온 “예수셩교젼셔”입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신의 명칭인 ‘하나님’은 로스번역팀이 번역한 것입니다. 예수셩교젼서에는 신이 ‘하나님’으로 번역되었지만 1882년에 누가복음에서 로스번역팀은 ‘하느님’으로 표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늘+님(heaven+lord)’으로 원래 형태는 ‘하ㄴ(아래아)ㄹ님’이었습니다. ‘하ㄴ(아래아)ㄹ님’이 ‘하ㄴ(아래아)님’으로 그리고 다시 ‘하느님’으로 변형되어서 누가복음에 사용되었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