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시 9

[시] 존 던 "사랑의 식단 조절"_나의 사랑은 다이어트 좀 해야 해

사랑의 식단 조절 나의 사랑은 너무나 육중해 다루기 힘들고 무척이나 거추장스럽게 비대해졌으리라. 만일 내가 그 사랑을 줄여 균형을 맞추려고 식단을 조절하고, 사랑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리 분별'이란 식사를 시키지 않았더라면. 한편으론 내 운명과 잘못에서 비롯하는 한숨을 나는 하루에 한 번 이상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때때로 그가 은밀하게 내 애인의 가슴에서 여성의 한숨을 끌어내어 그것으로 포식할 생각을 하면, 나는 그에게 알려 주었다. 그 한숨은 순수한 것도, 나를 그리워하는 것도 아니라고. 만일 그가 내 눈물을 짜내면, 나는 그 눈물을 경멸이나 수치로 짜게 절여, 그에게 영양분이 되지 않게 했다. 만일 그가 그녀의 눈물을 빨면, 나는 그에게 알려 주었다. 그가 빤 것은 눈물이 아니며, 그가 ..

시그리고시 2023.03.01

[시] 존 던 "그림자에 대한 강의"_열두 시에 멈춰라

그림자에 대한 강의 가만히 서 있어요, 사랑하는 이여, 당신에게 사랑의 철학에 대해 강의를 하겠소. 이곳을 거닐며 우리가 보낸 세 시간 동안 우리 스스로가 만든 두 개의 그림자가 우리를 따라다녔지요. 하지만 해가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있는 지금 우리는 그 그림자들을 밟고 있고, 그래서 모든 사물들이 아주 또렷해졌지요. 그처럼 우리의 어린 사랑이 커 가는 동안 우리에게서 가식과 그늘이, 그리고 조심성이 생겼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지요. 남들이 볼까 언제나 노심초사하는 사랑은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이랍니다. 우리의 사랑이 정오인 지금 멈추지 않으면 우리는 반대편에 새 그림자를 만들게 될 겁니다. 남들이 못 보게 하려고 첫 그림자들이 만들어졌으니, 이후에 생기는 이 그림자들은 우리에게 작용해, 우리..

시그리고시 2023.02.16

[시]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내 눈을 못 보게 하여도" (1901)_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내 눈을 못 보게 하여도 내 눈을 못 보게 하여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어요 내 귀를 막아도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요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어요 입이 없어도 당신을 부를 수 있어요 팔을 부러뜨려도 당신을 붙잡을 것이니 마치 손으로 하듯 심장으로 할 거예요 심장을 멈추게 하면 뇌가 고동칠 것이고 당신이 나의 뇌에 불을 놓으면 당신을 내 피에 담아 흐르게 할 거예요. 사랑을 어떻게 멈추게 할 수 있을까? 그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면 아무것도 그것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멈출 수 있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말자. 그대가 나에게 해를 가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대를 사랑할 것이니. 그대가 나를 파괴해도 내 피에 그대를 담을 것이니. 그대가 나를 파괴하더라도 내 사랑을 파괴할 수는 없다. 사랑은 그..

시그리고시 2023.02.09

[시] 괴테 "내 곁에 있는 당신"(1796)_그대가 없어도 생각하고 보고 듣는다

내 곁에 있는 당신 당신을 생각합니다. 바다의 태양이 희미하게 비칠 때면 당신을 생각합니다 은은한 달빛이 샘물에 그려질 때면 당신의 모습을 봅니다 멀리 길 위에 먼지가 일 때면 한밤중 좁은 오솔길에 나그네의 모습이 어른 거릴 때면 당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거친 소리를 내며 파도가 몰아칠 때면 고요한 숲속을 귀 기울이며 거닙니다 모든 것이 침묵할 때면 당신이 아주 멀리 있어도 나는 당신 곁에 있고 당신의 내 곁에 있습니다! 해가 지니 곧 별이 나를 비출 텐데 아, 당신이 여기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태양의 집은 바다이다. 아침에 되면 바다에서 뛰어올라온다. 하루종일 바깥에서 놀다가 밤이 되면 다시 바다로 들어간다. 바다의 태양이 희미하게 비칠 때는 태양이 집에서 나오는 순간 또는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시그리고시 2023.02.07

[시] 칼릴 지브란 "사랑은 아픔을 위해 존재합니다"_사람은 사랑을 위해

사랑은 아픔을 위해 존재합니다 사랑이 그대를 손짓하여 부르거든 따르십시오. 비록 그 길이 어렵고 험하다 해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를 품을 때에는 몸을 맡기십시오. 비록 사랑의 날개 속에 숨은 아픔이 그대에게 상처를 준다 해도 사랑이 그대에게 말하거든 그를 믿으십시오. 비록 사랑의 목소리가 그대의 꿈을 모조리 깨뜨려놓을지라도 왜냐하면 사랑은 그대에게 영광의 왕관을 씌워주지만 또한 그대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도 주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대의 성숙을 위해 존재하지만 그대를 아프게 하기 위해서도 존재한답니다. 사랑은 햇빛에 떨고 있는 그대의 가장 연한 가지들을 어루만져주지만 또한 그대의 뿌리를 흔들어대기도 한답니다. 삶의 무게가 버겁더라도 바닥에 붙어 있지 말자. 인간은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살도록 태..

시그리고시 2023.02.01

[시] 셰익스피어 "그대는 내게서 본다"_헤어질 준비

제목: 그대는 내게서 본다 찬바람에 흔들리는 저 나뭇가지에 몇 잎 누런 잎새 앙상한 계절을 그대는 내게서 본다. 엊그제 아름다운 새들 노래했건만 지금은 폐허된 성당 또한 내게서 본다. 만물을 휴식 속에 감싸는 제2의 죽음인, 검은 밤이 서서히 데려가는 석양이 서산에 파리하게 진 후의 황혼을 그대는 내게서 본다. 청춘을 키워준 열정에 그만 활활 불타 죽음처럼 사그라진 그 젊음의 잿더미 속에 가물거리는 청춘의 잔해를 내게서 보았거든, 그대 날 사랑하는 마음 더욱 강해지거라. 머지않아 그댄 내게서 떠나야 할 사람이거든. 셰익스피어가 쓴 시는 처음 읽어 본다. 극작가이기는 했지만 시도 썼을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처음 읽어 본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그대가 내게서 보는 것은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시그리고시 2023.01.30

[시] 드라이든 "사랑"_사랑과 시간을 아껴 쓰라

아, 사랑은 얼마나 감미로운가. 아, 젊은 욕망은 얼마나 즐거운가! 처음 사랑의 불에 다가서면 즐거운 아픔을 느낀다! 사람의 아픔은 모든 다른 기쁨보다 훨씬 감미롭다. 애인들이 내쉬는 한숨은 조용히 가슴을 부풀게 한다. 홀로 흘리는 눈물도 흐르는 향유처럼 그 아픔을 낫게 한다. 숨결 잃은 애인들도 아무 괴로움 못 느끼며 피 흘리며 죽는다. 사랑과 시간을 아껴 쓰라. 떠나는 벗처럼 대하라. 청춘에 주어지는 황금빛 선물을 마다하지 마라. 해마다 그 값은 더해 가고 전만큼 단순치 않으니. 봄철의 밀물처럼 가득하고 높은 사랑은 젊은 핏줄마다 용솟음친다. 그러나 조수마다 공급을 줄이고 드디어 그 선물을 다해 버린다. 노년에 홍수가 일지라도 그것은 단지 빗물, 깨끗이 흐르지 못한다. 존 드라이든(1631-1700)..

시그리고시 2023.01.27

[현대시] 단 한 번의 영원한 경험_고정희 "겨울 사랑"

겨울 사랑 그 한 번의 감촉 단 한 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 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 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고정희 "겨울 사랑" in 아름다운 사람 하나 (p. 89) 오래전에 잭 블랙이 주연으로 활약한 "스쿨 오브 락"을 봤습니다. 잭 블랙 특유의 유쾌함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영화였습니다. 재밌었고 뭉클함도 있었고 음악이 들어가 있는 영화라서 귀도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가 하나 있었어요. 잭 블랙이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

시그리고시 2021.01.20

아찔한 사랑_김용택 "사랑이 다예요"

[책리뷰] 김용택 "사랑이 다예요" 시인 김용택의 사랑시 39편을 모아서 엮어낸 책입니다. 좋은 시만 모아서 만든 책이니까 내용은 당연히 좋고요. 김선형 화백이 그린 청화(파란색 그림)가 시의 옆에서 시를 더욱더 빛내 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 놀라운 특징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가격입니다. 2015년에 출간된 책인데 가격이 2900원입니다. 책에 글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술학과 교수님이 그리신 그림까지 있는데 이 정도 가격이면 정말 거저 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시를 보급하기 위한 출판사와 시인의 특단의 조치가 아니었나 짐작해 봅니다. 시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면 좋은데 현재 우리나라의 시들은 함부로 인용을 하면 안 됩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시인들이 시인저작권협회 같은 곳에..

시그리고시 2019.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