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10

[한국단편소설] 황순원 "필묵장수"_버선과 매화

황순원의 "필묵장수"는 1955년 "현대문학"에 처음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필묵장수로 나온 주인공 서노인의 삶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때문이었다. 필묵장수는 말 그대로 붓과 먹을 팔러 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한다. 지금이야 필묵장수를 찾을 수 없지만 1950년대만 해도 필묵장수가 꽤 있었나 보다. 서노인은 원래부터 필묵장수는 아니었다. 어렸을 때 글씨공부도 많이 하고 묵화도 배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배운 것으로 통 빛을 못 봐서 결국은 생계를 위해서 필묵장수로 나섰다. 주인공 이름부터 서노인이니 얼마나 그 일을 오래 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950년대라고 하지만 필묵장수가 잘 될 리가 없다. 그러니 서노인의 삶은 궁핍했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 붓과 먹을 팔러 다..

한국단편소설 2022.12.17

[한국단편소설] 황순원 "소나기"_기억하고 싶은 세 문장

1953년 "신문학"에 발표된 황순원의 단편소설이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고 교과서에 실린 소설이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매우 좋아했던 소설이고 한국 대표 단편 소설이라고 하면 첫 번째로 꼽을 정도로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대강의 줄거리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 읽어볼 시도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글 좋은 영화 좋은 그림 좋은 음악은 다시 보고 들어도 좋은 것 아닌가. 그런데 다시 잃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이 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좋은 느낌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가치를 깨닫고 나서 좋은 소설을 찾아서 읽고 싶었는데 찾기가 쉽지 않았다. 소설은 참 많..

한국단편소설 2022.12.11

[한국단편소설] 하늘의 별은 땅 위의 이슬과 같다_황순원 "별"

한국 근현대 소설은 참 우울합니다. 신나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전후의 전쟁 같은 삶. 문학은 인간의 상상 속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니까 현실의 암울함을 훌쩍 털어버릴 만한 작품이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현실에 발을 딛지 않은 것이 거의 없습니다. 차라리 두 발을 다 현실 안에 제대로 내리고 나온 작품이라면 당시의 아픔을 간접적으로라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을 텐데, 일제강점기 시대의 작품은 그마저도 불가능했습니다. 소설 속에서 압제자는 없는데 사람들의 삶은 모조리 비참하죠. 괴롭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스스로 어디가 모자라서 괴로운 것처럼, 가해자 없는 피해자들의 비참함을 글을 통해서 보고 있는 것이 즐거울 턱이 없습니다. 황순원의 "별"은 1941년에 발표된..

한국단편소설 2021.02.02

[베스트문장3] 임철우 "아버지의 땅"

저는 좋은 한국 소설을 찾고 있습니다. 찾기가 쉽지 않네요. 최근에 인기가 있는 소설은 아무래도 작가의 지명도에 기대어 있거나 사회적 이슈가 된 작품들이 많아서요. 좋은 작가의 작품은 대체로 좋기는 한데 항상 좋은 것은 아니고요. 개인적인 취향도 있으니까요. 아무리 좋은 작가라도 저와는 안 맞을 수 있습니다. 또 요새는 좋은 작품이라서 잘 팔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열심히 팔아서 많이 팔리는 작품이 꽤 있습니다. 마케팅의 승리지요. 베스트소설이어서 읽어 보면 상당히 실망스러운 것들이 많습니다. 또 자극적인 것들이 인기를 끌 때가 많지요. 저도 사람인데 자극적인 것에 안 끌리는 것은 아닌데요. 자극적인 음식은 두고두고 자주 먹을 수는 없는 것처럼 자극적인 작품은 금방 질리기도 하고 곱씹어 볼 만하지는 않..

한국단편소설 2021.01.11

[한국단편소설] 윤성희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_불행이 휙휙 지나간다

시작이 주는 느낌은 좋지 않았습니다. "분만실 밖에서 아버지는 담배 한 갑을 다 피웠다고 한다."가 첫 번째 문장이었어요. 담배 냄새를 싫어하니까 글에서도 누가 담배를 피운다니까 갑자기 거부감이 들었어요. 아니 초조한 것 같은데 왜 담배를 피우고 그러시나 냄새나게, 라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들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니까 글이 소설투가 되는군요. 희한합니다.) 첫 문장은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한두 단락은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하며 글을 읽었습니다. 소설의 화자는 아기였습니다. 아기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말을 하고 있더군요. 특이했습니다. 일단 여기서 호감이 +1 되었습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가 자기만의 생각을 하면서 저에게 말을 걸고 있었으니까요. 세상에서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

한국단편소설 2019.12.21

[한국단편소설] 천명관 "숟가락아, 구부러져라"_바보의 이상한 집착, 그리고 무서운 결과

작가의 이름을 보고 왠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어디서 들어봤더라. 시인 천상병 때문에 그런가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습니다. 이 분이 바로 "고래"라는 유명한 소설의 작가입니다. 아마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봤거나 아니면 적어도 들어보기는 했을 것입니다. 제가 소설을 읽어보려고 인터넷에 "한국 소설 추천"이라고 검색하니 천명관의 고래를 추천하는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고래는 2004년도 작품인데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았고 꽤 히트를 친 작품입니다. 저도 도서관에서 빌려 보려고 했는데 대출하기 쉽지 않더군요. 그 말은 아직도 사람들이 즐겨서 보는 소설 중에 하나라는 거죠. 어느 날, 도서관 책장에 꽂혀 있는 "고래"를 발견했는데 겉표지가 너덜너덜했어요. 요점은 천명관..

한국단편소설 2019.12.19

[한국단편소설] 강신재 「젊은 느티나무」_아침 드라마의 시조새

#설왕은TV #강신재 #젊은느티나무 #추천과좋아요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는 아침 드라마의 시조새와 같은 소설입니다. 이 소설의 내용은 제목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제목은 매우 점잖은데요. 내용은 매우 발칙합니다.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는 사람은 고등학생인 숙희이고요. 숙희는 아빠 없이 엄마와 살고 있었는데 엄마가 재혼을 합니다. 그런데 엄마의 새 남편에게는 대학생 아들이 한 명 있고요. 숙희는 그 아들, 그러니까 의붓오빠를 좋아합니다. 두 사람이 몰래 서로 썸을 타다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하는 이야기입니다. 뭐 이런 뻔한 이야기를 소설로 썼을까 싶지만 이 소설은 1960년에 나온 소설입니다. 그 당시에는 꽤나 충격을 주었겠지요. 제목을 일부러 이렇게 지은 것 같습니..

한국단편소설 2019.12.16

[한국단편소설] 박완서 "그 여자네 집"_세상에 사랑은 있는 거야

#아재소소4 # 아내에게 재밌는 소설을 소개합니다 #설왕은TV #박완서 #그여자네집 #세상에사랑은있는거야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아픈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시 들으면 들을 때마다 아픈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박완서 작가의 「그 여자네 집」을 읽으면서 이 소설이 제가 아는 그 아픈 이야기를 똑같이 반복해서 들려줄까 봐 겁이 났습니다. 우리 민족의 아픈 과거여서 잊으면 안 되지만 역사를 잊으면 안 되지만 소설에서는 적어도 소설에서는 꼭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누군가는 기적 같이 살아날 수도 있고 위기를 피할 수도 있고 나쁜 놈들을 혼내 줄 수도 있잖아요. 꼭 그러기를 바라며 「그 여자네 집」을 읽었습니다. 박완서의 "그 여자네 집"은 일제 강점기 시대의 만득이와 곱단이의 사랑 이야기가 주..

한국단편소설 2019.12.09

[한국단편소설] 김인숙 "빈집"_남편의 이중생활

#설왕은TV #구독과 좋아요 김인숙 작가는 1963년에 태어나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고 1983년 조선일보의 신춘문예에 '상실의 계절'이 당선되어 등단하고 활동을 한 작가입니다. 저는 '빈집'이라는 작품을 통해 김인숙 작가의 글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소설을 즐겨 읽었던 사람이 아니었는지라 소설가가 익숙하지 않습니다. 아주 유명한 작가나 중고등학교 시절에 교과서에서 보았던 소설가 정도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소설에 관심을 가지면서 어떤 작가의 작품이 좋은지 탐색을 하게 되었죠. 잘 알려져 있는 작가들의 작품도 읽어 보고 싶기는 한데 박경리의 토지 같은 작품이요. 그런데 너무 길어서 일단 엄두가 안 났습니다. 저는 200에서 300쪽 정도 되는 장편 소설을 읽고 싶은데 어떤 작품..

한국단편소설 2019.12.06

[한국단편소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_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메밀꽃 필 무렵"은 이효석 작가(1907~1942)가 1936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세 사람의 장돌뱅이가 강원도 봉평에서 대화로 건너가는 길에 일어난 사건을 서술한 단편 소설입니다. 원제는 "모밀꽃 필 무렵"입니다. 이효석은 강원도 평창 출생이지만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을 다니는 등 엘리트 교육을 받았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과 같은 작품을 보면 향토적인 정서를 물씬 풍기고 있어서 작가가 시골에서 유유자적하며 살았을 것 같지만 이효석은 서구 문화를 매우 즐겼다고 합니다. #설왕은TV #구독과 좋아요 이 작품은 줄거리를 아는 것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볼 때 이 소설에서 느껴야 하는 것은 분위기입니다. 달빛이 비치는 메밀꽃 밭을 가로질러 나귀를 타고 산을 넘는 세 남자의 모습을 상상해 ..

한국단편소설 2019.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