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라카미의 소설은 술술 읽힌다. 어렵거나 낯선 표현이 거의 없고, 흥미로운 사건과 인물이 계속 등장한다. 그래서 별 얘기가 아닌데도 자꾸 읽게 된다. 역시 소설가의 가장 큰 재능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는 능력인데, 무라카미는 그 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반딧불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적인 단편집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책은 하드커버임에도 너덜너덜했고, 책등은 투명 테이프로 감싸져 있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었을까 싶었다. 실린 작품들은 대체로 다 재미있었고, 첫 작품이 바로 「반딧불이」였다.
📖 줄거리 요약
화자는 대학 기숙사에서 살던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어느 날 옛 친구의 여자친구였던 ‘그녀’를 다시 만나 함께 걷고 대화하고 식사를 나누는 일상을 보낸다. 두 사람은 연인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애매하고 서먹한 관계다.
고등학교 시절, 화자의 친구가 자살했고, 그 사건은 두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친구의 죽음 이후, 화자는 모든 것을 잊으려 하지만 마음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남는다. 그는 결국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그 일부”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이후 그녀와의 관계는 지속되지만 생기를 잃은 두 사람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면서도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다. 그녀의 생일날, 둘은 함께 밤을 보내지만 이후 그녀는 요양소로 떠난다는 편지를 남긴다.
마지막 장면에서 화자는 룸메이트가 준 병 속의 반딧불이를 하늘로 날려 보낸다.
“반딧불이가 사라진 후에도 그 빛의 궤적은 내 안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 약한 빛은 죽은 친구의 흔적, 그리고 덧없는 삶의 상징으로 남는다.
🐟 리뷰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삶이 반딧불이와 같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하는 듯하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옛날, 이라고 해야 겨우 십사오 년 전의 일이지만, 나는 어느 학생 기숙사에서 살았다. 대학에 갓 들어간 열여덟 살 때였다. 도쿄 지리에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캄캄한데다 그때까지 혼자 살아본 적이 없었기에 부모님이 걱정하여 그 기숙사를 알아봐주었다. 물론 비용문제도 있었다. 기숙사 비용은 자취생활에 비해 월등히 쌌다. 나야 물론 가능하다면 아파트를 빌려서 마음 편하게 혼자 살고 싶었지만, 입학금이며 등록금이며 매달 송금받을 생활비를 생각하면 그런 욕심을 부릴 수가 없었다.
소설 속 화자인 그는 기숙사 생활을 상세히 묘사한다. 기숙사는 다 비슷해 특별할 것 없을 것 같지만, 1960년대 일본 대학 기숙사 풍경을 엿볼 수 있다. 그 당시 일본 분위기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기숙사의 하루가 국기 게양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국기 게양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룸메이트를 소개한다. 룸메이트가 아침마다 하는 요상한 체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체조 때문에 아침마다 잠에서 깨고 룸메이트에게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그냥 그러고 산다는 이야기다. 여기까지가 서론이다.
이 기숙사 이야기는 사실 그녀를 등장시키기 위한 장치다. 그는 이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고, 그녀는 오랜만에 웃는다.
내가 룸메이트와 그의 라디오 체조 얘기를 하자 그녀는 쿡쿡 웃었다. 웃기려고 한 얘기는 아니었지만 나중엔 나도 따라 웃었다.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은--아주 짧은 순간에 사라지고 말았지만--정말로 오랜만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해진다. 왜 그녀는 잘 안 웃을까? 그에 대한 이유는 한참 후에나 알 수 있다. 그와 그녀는 함께 대화하고 걷고 밥을 먹는다. 나는 처음에는 두 사람이 연인인줄 알았다. 연인이 아닌데 같이 산책하고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같이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무니까. 하지만 둘 사이의 관계는 왠지 서먹서먹하다. 연인이 아니라면 아주 어렸을 때 친했던 친구일까? 그리고 두 사람이 헤어질 무렵 그녀가 그에게 또 만날 수 있을지 묻는다. 그럴 말할 '처지'가 아니란 걸 알지만이라고 말하면서... 그러자 그는 '처지'라는 말이 걸렸는지 '처지'라는 말에 대해서 놀라며 묻는다. 두 사람 다 적절한 표현이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표현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도대체 이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이야기는 더 과거로 돌아간다.
그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봄이었다. 그녀는 그의 친구의 여자친구였다. 그는 그녀와 가까워졌고 그에게 여자 친구가 있을 때는 더블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그가 여자친구와 헤어지자 그는 그의 친구와 그녀, 이렇게 셋이 주로 만나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와 그녀는 그의 친구를 중심으로 연결된 관계였다. 그러니 그와 그녀는 딱히 친밀함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의 친구가 있어야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되고는 했다. 그런데 그의 친구가 자살을 한다. 이유는 모른다. 그 이후로 그와 그녀의 관계는 거의 단절되었다. 단순히 단절된 것이 아니라 그녀가 그에게 화가 난 것 같아 보였다. 이유는 그의 친구가 자살하기 전에 마지막에 만난 사람이 바로 그였다는 사실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그는 짐작한다. 그의 친구가 죽기 전 낮에 그는 그 친구와 내기 당구를 쳤고, 그의 친구가 이겨서 그가 게임값을 냈다. 그의 친한 친구가 죽었지만 세상은 그냥 별일 없이 계속 굴러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나왔을 때 내가 한 일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그것뿐이었다. 나는 녹색 부직포가 깔린 당구대며 빨간색 N360이며 책상 위의 하얀 꽃이며, 모두 잊어버리기로 했다. 화장터의 높다란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연기며 경찰서 조서실에 놓여 있던 묵직한 문진이며 그런 모든 것들을. 처음에는 그럭저럭 잘되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내 안에 무언지 모른 부연 공기 같은 것이 남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공기는 또렷하고 단순한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나는 그 형태를 말로 바꿀 수 있다. 이런 말이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현재로 돌아온다. 그와 그녀는 한 달에 한두 번 데이트를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나면 특별히 하는 일은 없었다. 그냥 무작정 걷는 것. 연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그는 그녀에게 단지 옆에 있을 사람이 필요할 뿐이고 그 역할을 그가 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다. 이상하게 두 사람은 삶의 의욕이 없어 보인다. 그녀도 그렇지만 그도 그렇다. 그는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다"고.
그와 그녀는 그렇게 연인인 듯 연인이 아닌 듯한 관계를 이어간다. 그러다가 그녀의 스무 살 생일에 그는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그녀의 아파트에 갔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그녀는 말이 많았고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시간이 너무 늦자 그는 그녀에게 집에 가겠다고 말을 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말이 끊겼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곧 통곡을 했다. 마치 토하는 것과 같은 자세로. 그날 밤 그는 그녀와 잤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책상 위에 전화해달라는 메모를 남긴 채 방을 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편지를 썼고 7월 초에 답장이 왔다. 아마도 꽤 시간이 지난 후에 온 것 같다. 그녀는 학교를 휴학하고 교토의 요양소에 가서 안정을 찾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왔다. 그는 편지를 몇백 번 읽었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슬픔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반딧불이가 등장한다. 그의 룸메이트가 인스턴트커피 병에 반딧불이를 넣어서 준 것이다. 룸메이트는 그에게 여자친구에게 주면 좋아할 거라고 말한다.
병 속에서 반딧불이는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빛은 너무도 약했고, 그 색은 너무도 엷었다. 내 기억 속에서 반딧불은 좀더 뚜렷하고 선명한 빛을 여름의 어둠 속에 뿌렸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반딧불이를 놓아준다. 소설은 다음과 같이 끝이 난다.
반딧불이가 사라진 후에도 그 빛의 궤적은 내 안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감은 눈의 두터운 어둠 속에서, 그 약하디약한 빛은 마치 갈 곳을 잃은 영혼처럼 언제까지고 떠돌고 있었다.
나는 몇 번이나 그런 어둠 속에 가만히 손을 뻗어보았다.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그 작은 빛은, 언제나 내 손가락 조금 앞에 있었다.
나와 친한 친구가 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반딧불이는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친구는 죽었지만 그와 친구의 여자친구는 남았다. 두 사람은 원래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사람을 좋아했던 사람이니 두 사람이 좋은 감정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관계는 더 발전될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 같다. 아무리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두 사람 사이에 있던 사람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그 친구가 항상 떠오를 수밖에 없다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면서 서로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는 더 발전되지 않는다. 물론 진전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부서지기 쉬운 관계고 어떻게 보면 부서져야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친구가 죽고 나서 그는 죽음과 삶에 대해서 생각한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의 친구가 죽고 나서 그때부터 죽음은 그를 붙잡았다. 그러면 삶이란 무엇일까? 죽음을 포함하는 삶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가 힌트를 얻은 것은 바로 반딧불이다. 밝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약하디약한 빛을 발하고 있는 반딧불이를 보면서 그것이 마치 인생과 같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 작은 빛은 잡히지도 않는다.
어렸을 때 친구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 그리고 그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의 만남이 어떨지 상상하기 어렵다. 짐작과 실제는 다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비극적인 사건인 경우에는 사람들에 따라서 그 반응이 천차만별일 수 있다. 소설 반딧불이는 그와 같은 상황을 잘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독특한 인물을 등장시켜 독자의 시선을 끌기도 하고 궁금증을 유발시키며 글을 계속 읽게 한다. 마지막에는 적절한 상징을 끌어 와서 독자의 마음에 그림을 그려 놓는다. 잘 썼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책등이 닳도록 읽었나 보다.
'책과 문학 > 이 책 어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책]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 서투른 애도, 하지만 시작도 있어야 하고 끝도 있어야 한다 (1) | 2025.12.17 |
|---|---|
| [책]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 1~4장 정리 (1) | 2025.12.13 |
| [책] 라투르의 『녹색 계급의 출현』을 읽고: 기후 위기 시대의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 (2) | 2025.04.22 |
| [책] 윌리엄 그로스 「채권 투자란 무엇인가?」 – 지금도 유효한가? (6) | 2025.02.10 |
| [책]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 창작에 대한 새로운 시각 (4) | 2025.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