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노 라투르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로,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NT)으로 유명하다. 그는 신기후체제라는 개념과 관련된 정치철학적 문제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 책을 니콜라이 슐츠와 공동 집필했다. 니콜라이 슐츠는 코펜하겐 대학에서 ‘지구사회 계급’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중 라투르와 함께 이 책을 저술하게 되었다. 저명한 학자인 라투르가 이제 막 박사학위를 받으려는 학자와 공동 저술을 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이는 라투르가 젊은 학자를 키우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생태주의가 그저 운동에 그치지 않고 정치를 조직하는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자유주의, 다음으로 사회주의, 신자유주의, 끝으로 최근에 영향력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는 반자유주의 또는 네오파시즘 정당들이 그랬듯이 생태주의 또한 정치의 지평을 결정하는 방항으로 과연 나아갈 수 있을까? (10)
라투르는 생태주의가 단순한 환경운동을 넘어 정치의 중심축이 되기를 희망하며, 이 책에서 그러한 전환을 위한 방법을 탐색한다. 자연 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만큼 당연하지만, 옳은 주장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생태주의는 자유주의나 사회주의처럼 대중적 결집이나 봉기의 형태로 나타나지 못했으며, 오히려 환경 보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이유로, 라투르는 생태주의가 "어디에나 있으면서 동시에 어디에도 없다"(13)고 말한다. 즉, 환경 문제에 대한 논의는 광범위하게 이루어지지만, 실제 정치적 실천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지만, 정작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모순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친구와 적의 구분도 불분명해지고, 책임의 주체도 애매해진다. 결국, "무수한 지점에서 우리 자신이 희생자인 동시에 공범"(14)이라는 것이 라투르의 지적이다.
💥녹색 계급과 유물론
라투르는 ‘계급’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며, 이를 통해 정치적 실천을 촉진하려 한다.
계급에 관해 말하는 것은 언제나 전투대형을 갖추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녹색 계급에 대해 말하기는 불가피하게 행동을 새롭게 하는 기술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녹색이라 부르는, 형성 중인 이 계급을 위한 분류 작업은 필연적으로 수행적이다.
라투르는 ‘계급’이라는 개념이 계급 투쟁과 의식을 수반하며, 실천을 촉진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계급 개념이 때로 호전적인 성격을 띠는 위험이 있지만, 현시대의 위기를 고려할 때 보다 급진적인 실천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녹색 계급은 기존의 생산 중심적 경제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하며, 이를 통해 기존 좌파와 구별된다. 전통적인 좌파는 생산 수단과 분배의 문제에 집중했지만, 녹색 계급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새로운 흐름이다. 라투르는 녹색 계급이 자신의 역사적 방향을 인식해야 하며, 유물론적 사고를 기반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 하부 구조는 경제적 생산(의식주 등)이며, 이는 사회의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녹색 계급이 바라보는 하부 구조는 신기후체제, 즉 지구의 거주 가능성 자체다. 이제 더 이상 생산의 확대가 목표가 될 수 없다.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모두 생산력을 강화하는 데 동의했지만, 생산의 확대는 환경 파괴를 이끌었다.
녹색 계급의 핵심 목표는 생산의 증대가 아니라 지구 환경의 유지이며, 이는 기존 경제 체제와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더 많은 생산이 아닌,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 라투르의 주장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우리를 먹여 살리는 세계와 명시적으로 연결하면서 개별 주체, 개별 영토를 위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기꺼이 떠맡으려는 것은 행동의 지평을 확장한다. 이 지평의 확장 덕택에 녹색 계급은 자신에게 역사의 방향을 규정할 자격이 있다고 자임할 수 있다. (39)
💥녹색 계급의 투쟁
녹색 계급은 역사적 흐름을 바꾸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축하려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주요 전선에서 싸워야 한다고 라투르는 지적한다.(42)
- 허망한 글로벌화
기후 위기와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터전을 버리고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동하려 한다. 기업들 또한 생산 비용을 줄이기 위해 글로벌화 전략을 활용하며, 더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떠난다. 나아가, 일부에서는 지구가 더 이상 거주 불가능해지면 우주로 이주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라투르는 이러한 접근을 강하게 비판한다.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하자면 지구는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인간 조건이다. 결국, 우리는 자연과 지구에 대한 의존을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50). - 국경 안으로의 회귀
반대로, 기후 위기 속에서 일부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보호주의적 정책을 강화하려 한다. 국경을 강화하고, 무역 장벽을 세우며, 자국민 중심의 경제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라투르는 이러한 접근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만약 지구 상의 몇 개 국가만 번영하고 나머지가 황폐해진다면, 결국 전 지구적 위기는 해결될 수 없다. 기후 문제는 국경을 초월한 문제이며, 일부 국가만이 생존하는 방식으로는 지구 전체가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이 라투르의 주장이다.
라투르는 녹색 계급은 이 두 흐름에 맞서며, 인류가 지구에 대한 의존성을 인정하고 공동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녹색 계급과 권력 쟁취
녹색 계급이 주류가 된다면 지속 가능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지만, 과연 녹색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환경 보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소수라면, 그들의 투쟁은 쉽게 진압될 수도 있다. 그러나 라투르는 녹색 계급이 단순한 소수가 아니라, 과거의 사회적 투쟁을 계승하며 이미 상당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통적인 계급 구도를 보면, 생산 수단을 소유한 부르주아보다 생산에 참여하는 프롤레타리아가 절대적 다수였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부의 생산자로 흔히 자본가가 거론되지만, 라투르는 자본가와 생명체 전체를 대립시키며 녹색 계급의 범위를 더욱 확장한다. 즉, 자본가를 제외한 노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녹색 계급에 속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종교와 같은 다양한 사회 세력도 포함될 수 있다.
특히, 라투르는 미래 세대를 녹색 계급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신과 지구를 분리하여 생각해 왔으며,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현재와 미래를 분리했다. 현재의 번영을 위해 미래를 희생하는 구조가 지속되어 왔던 것이다. 기성 세대는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낄 수 있지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이제 막 미래를 살아갈 세대는 자신들의 시간이 빼앗겼다는 점에서 정당한 분노를 가질 수 있다. 라투르는 이 젊은 세대를 녹색 계급의 핵심으로 포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녹색 계급은 단순한 환경운동을 넘어, 세대와 종(種)을 아우르는 거대한 연대의 힘을 가질 수 있다.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면, 형성 중인 녹색 계급은 전혀 주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마르크스의 명언을 약간 고쳐서 원용하자면 "하나의 유령이 유럽과 세계의 나머지 지역을 돌아다니고 있다. 생태주의라는 유령이!" (73)
녹색 계급이 자신들의 존재를 자각하고, 다수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여전히 동참하지 않은 이들을 포섭하기 시작했다면 이제 다음 단계는 권력의 쟁취다. 권력은 투표를 통해 획득해야 하지만, 단순한 선거 승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선거에 앞서 반드시 이념 투쟁이 필요하며, 기존의 생산 체제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 적과 아군의 구분 없이 선거에 뛰어들 수 없으며, 승리 이후 생산 체제를 변화시키려면 정치적 의식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제까지 주변부로 머물렀던 이들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중심으로 들어올 때다.
라투르는 녹색 계급이 수행해야 할 두 가지 핵심 과제를 제시한다.
- 쇠퇴한 기존 계급을 대신해 권력을 쟁취하는 것
- 사회 전체의 조직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 (92)
이러한 투쟁 방식은 기존의 레닌주의와 다르다. 레닌주의는 국가의 몰락을 기대하면서도 생산력 증대를 목표로 했지만, 녹색 계급은 권력 쟁취와 생산 체제 변혁을 동시에 추구한다. 이들은 단순한 국가 권력 확보를 넘어, 지구적 차원의 논쟁과 국제 질서 개편을 요구하며, 기존의 재분배 문제 또한 새로운 기준으로 재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녹색 계급은 단순한 환경운동이 아니라, 기존 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모색하는 전 지구적 정치 프로젝트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실험
이게 도대체 무슨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라투르는 이렇게 말한다.
다행히도 유럽이 있다. 이 넓은 '거시기'에서는 관료주의의 모든 병폐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원천이 아니라면 적어도 녹색 계급이 연루되어 있는 지구정치상의 모든 새로운 갈등에 관한 실험을 감지할 수 있다. 초국가적인 것, 다음으로 국제적인 것을 연속적으로 시도했고 그렇다고 해서 국내적인 것이 아닌 이 대국에 기댈 수 있다는 것은 막대한 이점이다. (99)
그렇다. 라투르는 유럽연합(EU)을 녹색 계급이 탈국가적 권력을 형성하고 지속 가능한 생존 방안을 실험할 수 있는 거대한 장으로 본다. EU는 기존의 국내와 국외의 경계를 허무는 공간으로, 국가 중심의 정치 질서를 넘어서는 실험이 진행되는 곳이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정치 무대에서 중심이 될 세력은 누구인가? 라투르는 그 답을 녹색 계급이라고 주장한다.
녹색 계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인간과 자연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를 분리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 위기를 초래했다. 라투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물론을 다시 강조한다. 유물론적 관점에서 보면, 하부 구조(기반)가 상부 구조(사회 시스템)를 지배한다. 녹색 계급이 인정해야 할 가장 중요한 하부 구조는 지구 자체, 즉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다. 이 기반을 지키지 않는다면 정치적 대립의 구분도, 인간 사회의 질서도 무의미해질 것이다. 지구라는 기반을 보호하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정치적 실천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 라투르의 핵심 주장이다.
💥 신기후체제: 위기인가, 기회인가?
이 책은 2022년에 나온 책이다. 즉 코로나 시기를 겪고 나온 글이다. 라투르는 ‘신기후체제’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기존의 ‘기후 위기’나 ‘지구 온난화’ 같은 부정적 뉘앙스와는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신기후체제’라는 표현은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기후 질서로의 전환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어쩌면 그는 이를 인류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연합할 기회로 바라보는지도 모른다. 국가 간의 경쟁과 분열을 넘어, 기후 문제를 중심으로 협력할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이다.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에 따르면, 지구 또한 하나의 주체이자 행위자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기후 변화 자체가 인류를 화해시키기 위해 지구가 내놓은 메시지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러한 낙관적 해석에도 불구하고, 기후 위기의 현실은 여전히 엄중하다. 인류는 과연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설령 정신을 차린다 해도,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생산 체제가 급격히 변화할 수 있을까? 변화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초래하는 것은 아닐까? 위기와 기회가 교차하는 신기후체제 속에서, 인류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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