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한국단편소설] 임철우 "사평역"_희미하게 남은 웃음 한 조각

설왕은 2022. 6. 6. 09:00

"사평역"은 1983년에 발표된 단편소설입니다. 사평역에서 서울 가는 마지막 완행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사평역은 시골에 있는 작은 간이역입니다. 사람들은 막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심각하게 연착이 된 상황이었습니다. 시골 간이역에서 서울 가는 완행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사연이 이 소설을 구성하는 주요한 이야기입니다. 대단한 이야기나 즐거운 사건 같은 것은 없고 모두가 아픈 사연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이야기는 서로 연결 지점이 없어서 그냥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각하고 읽어나가면 되는 소설입니다. 

 

임철우 작가의 "사평역"은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라는 시를 읽고 거기에 착안해서 쓴 소설이라고 합니다. 소설은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라는 시로 시작합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이 시에서는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임철우 작가는 사평역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람들은 다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쾌한 일이라고는 없습니다. 대합실에 앉아 있는 다섯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사연을 전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네 사람만이 사연을 전하고 있고 나머지 한 사람은 미친 여자인데 그냥 난로 옆에 누워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쩌면 이 미친 여자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가장 잘 나타내는 문장으로 이 문장을 선정했습니다. 

 

꿈이라도 꾸는 중인지 땟국물에 젖은 여자의 입술 한 귀퉁이엔 보일락말락 웃음이 한 조각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정신이 나간 여자, 작가의 표현대로 하면 "미친 여자"는 아무런 이야기를 전하지 않습니다. 마치 이 모든 이야기의 관객인 것처럼 그냥 난로 옆에서 발라당 누워서 자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이 볼 때는 참 한심하고 대책 없는 상황인데, 그 여자는 자신의 초라한 행색과는 상관없이 즐거운 꿈이라도 꾸는 듯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습니다. 희미한 웃음은 마치 희미한 희망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다들 어렵고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고 열차도 연착이 되어서 짜증 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열차가 결국 도착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인생에 희미한 희망 정도는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다 각자의 사연이 있어서 서로 이어지지 않지만 한 가지 화두에 대해서는 각자의 생각을 밝힙니다. 물론 그것은 작가의 생각이겠지만, 각자의 상황 속에서 꽤 그럴싸한 대답이라고 여겨집니다. 그것은 바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각자의 생각입니다. 각자의 생각은 다 다릅니다. 산다는 것은 벽돌담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고 흙과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고 돈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골치 아픈 얘기라고 외면하는 사람도 있고 이 세상과 구별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모호한 대답을 하기도 하고 허허한 길바닥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각 사람들의 상황과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자신만이 느끼는 삶에 대한 소회를 밝힙니다. 이 내용은 "사평역"에서 벌어진 삶에 대한 철학적 경험적 토론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서로 말을 하면서 토론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은 삶이 무엇이라고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정의를 내릴 수 있고 그것이 그에게는 올바른 대답일 수 있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누구의 대답도 쉬운 대답은 없었습니다. 삶은 다들 어려워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죠. 그래서 삶이라는 문제에 간신히 답을 달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가는 톱밥을 태우는 작은 난로를 통해서 온기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미친 여자의 얼굴을 빌어서 희미한 웃음을 보냅니다. "사평역"을 통해서 작가는 삶이란 어렵지만 버티면서 그래도 조금이라도 웃으면서 살아가자고 다독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전체 이야기보다는 각 사람의 이야기를 찬찬히 읽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특별히 작가의 문장력이 좋기 때문에 각 사람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좋습니다. 임철우 작가의 "사평역"은 문장이 참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물론 좋은 소설은 거의 다 문장이 좋은 편입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검증받은 소설은 더더군다나 그렇습니다. "사평역"도 그런 소설 중 하나입니다. 수려한 문장으로 우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이지요. 제가 생각하는 주제 문장은 다음 문장인데 이것 역시 참 깔끔한 문장입니다. 

 

꿈이라도 꾸는 중인지 땟국물에 젖은 여자의 입술 한 귀퉁이엔 보일락말락 웃음이 한 조각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어려운 중국글자말이나 일본어 말투나 단어가 없는 좋은 문장입니다. 특별히 저는 '웃음'이라는 단어 사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 '웃음' 대신에 '미소'라는 단어를 쓸 것 같은데요. '미소'는 일본말입니다. 우리말 '웃음'이 있는데 '미소'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웃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반가웠고 아마도 단어 선택은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겠죠?

 

섬뜩한 탐조등의 불빛이 끊임없이 어둠을 면도질해 대고 있을 교도소의 밤이 뇌리에 떠오른다. 

 

 

밤이 되면 교도소를 감시하는 탐조등이 끊임없이 교도소의 바닥과 벽을 훑어댑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빛은 희망이고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교도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교도소의 밤을 밝히는 탐조등의 빛은 그런 느낌이 아닐 것입니다. 그 느낌을 살려 주는 문장입니다. 교도소를 탈출하려고 마음먹는 사람이 교도소 안에 몇이나 있을까요? 대부분은 그럴 꿈도 꾸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데도 탐조등의 불빛은 무서울 것 같습니다. 마치 그 불빛에 닿으면 죽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겠죠. 그래서 탐조등의 불빛이 어둠을 면도질해 대고 있다는 표현이 교도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탐조등을 볼 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산다는 것이란 때로는 저렇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산다는 것에 대한 작가의 정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로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침묵해야 하는 것인지로 모른다고 말이죠.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습니다.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분은 나쁜 기분은 아닙니다. 굴비나 사과가 별것은 아닌데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환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작은 선물일 수 있겠죠. 그런 선물을 들고 내게 생명을 주었던 사람들과 그 장소로 돌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설명에 묘하게 수긍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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