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한국단편소설] 박완서 "조그만 체험기"_원한이라는 미세먼지

설왕은 2022. 12. 27. 21:31

나는 늘 읽을 만한 소설을 찾는다. 읽을 만하다는 표현을 작가들이 들으면 섭섭해할지도 모르겠다. 작품 하나를 쓰려면 꽤 많은 고민과 수고를 들여야 할 텐데, 그 노력의 산물을 몇 문장 읽어 보고 읽을 만하다 그렇지 않다고 평가를 내리는 것이 너무 매정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상에 글은 참 많은데 읽으면 마음도 따뜻해지고 새로운 정보도 얻고 깨달음도 얻고 빛도 발견하고 그런 글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은 바라는 것이기도 하리라. 어쨌든 읽으면 도움이 되는 글을 찾고 싶다. 그래서 아직도 작가를 찾고 있다. 

 

며칠 전에 단편 소설을 하나 읽다가 또 그만두었다. 소재는 참신한데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 인물이 있어서였다. 나는 아무리 소설이라도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어쩌면 우리 일상에서 쓰는 말일지도 모르고 더 적나라한 감정 표현일지도 모르는 거친 말들은 나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아프다. 마치 두들겨 맞고 있는 것처럼 아픈 느낌이 들어서 거친 말을 막 쏟아내는 소설은 읽어낼 수가 없다. 그래서 자꾸 박완서 작가의 글로 돌아간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은 어떤 소설이든 간에 거친 말이 별로 없다. 상스러운 말, 외설적인 말도 거의 없다. 그래서 마음에 든다. 가끔은 너무 똑똑한 깍쟁이 느낌이 드는 글들도 있지만 그래도 적어도 '읽을 만한 글'이다. 

 

"조그만 체험기"는 소설 속 주인공인 '나'의 남편이 감옥에 갇히면서 겪은 일을 묘사한 소설이다.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박완서 작가 본인 같다. 작가의 남편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면 딱 이렇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글이다. "조그만 체험기"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남편은 감옥에 갇히지만 재판을 받고 15일 정도 후에 풀려난다. 그래도 자신의 배우자가 감옥에 갇히는 경험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럴 때 느낌이 어떨까? 그리고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과 가까이 지낼 일이 없는 보통의 사람들은 감옥에 수감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리고 그들의 옥바라지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이 소설 속 주인공의 경험을 통해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남편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다. 그런데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은 거의 다 온통 가난하고 힘없고 억울한 사람들뿐이었다고 서술한다. 진짜 나쁜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을 사용해서 감옥에 들어올 일이 없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자기나 자기 가족에 대한 편애나 근시안에서 우러나는 엄살로서의 억울함에는 그래도 소리가 있지만,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숙명처럼 보장된 진짜 억울함에는 더군다나 소리가 없다. 다만 안으로 안으로 삼킨 비명과 탄식이 고운 피부에 검버섯이 되어 피어나기도 하고, 독한 한숨으로 피어나기도 하고, 마지막엔 원한이 되어 공기 중에 떠 있을지로 모른다.

 

 

"숙명처럼 보장된 진짜 억울함"이라... 그리고 그것이 원한이 되어 공기 중에 떠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추측은 너무 억측스러운 것 같았다. 그러나 그다음에 한 예를 드는데, 전도유망한 청년이 우울증에 걸리고 나쁜 환상에 빠져서 회사를 그만두고 심한 불안감에 빠져 살다가 미국에 가서 살면서 그 병이 나 나았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숙명처럼 보장된 진짜 억울함은 공기 중에 해로운 대기 성분으로 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세먼지가 딱 그렇지 않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오래 접촉하면 건강에 진짜 해롭다는 미세먼지처럼 원한이 가득한 세상에 살면 알 수 없는 병에 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에 억울함이 운명처럼 정해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 참 슬픈 말인데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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