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이범선 "표구된 휴지"_국보급 휴지라...

1972년 <문학사상>에 발표한 이범선 작가의 단편 소설이다. 배경은 1960년대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생소한 주제이다. 요새는 표구를 잘 하지 않는다. 가끔 길거리에 표구집이라고 아직 남아 있기는 한데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표구는 그림이나 글씨를 액자에 넣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액자에 넣을 것이라면 왜 표구사에 맡기겠는가. 특별한 꾸밈이 있다는 말이다. 요새처럼 글자와 사진, 그림이 넘쳐나는 시대에 표구를 만들어서 집에 걸어 둔다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다. 이미 기성품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고 보통은 표구로 대단히 꾸밀 만한 글이나 그림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니 제목 자체가 벌썬 옛날 느낌이 난다. 나는 제목을 보고 무슨 내용인지 정말 하나도 짐작을 못 했다. 

 

그런데 제목이 벌써 내용을 다 담고 있다. 이 소설은 휴지를 표구로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왜 휴지를 표구로 만들었을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글을 읽는다면 훨씬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니무슨주변에고기묵건나. 콩나물무거라. 참기름이나마니처서무그라.
순이는시집안갈끼라하더라. 나는빨리장가안들어야건나.
돈조타. 그러나너거엄마는돈보다도너가더조타한다.

그리고 채 어이지지 못하고 끊어진 맨 끝줄.

밤에는솟적솟적다하며새는운다마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친구가 표구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휴지를 진짜 표구로 만든다. 그 휴지는 누가 쓴 것인지도 모르고 철자도 띄어쓰기도 맞지 않는 글이 막 적혀 있었는데 친구는 그 글에 감동을 받아서 꼭 표구로 만들어서 간직하고 싶었던 것 같아서 주인공인 나는 표구사에 맡긴다. 친구가 외국으로 전근을 가는 바람에 그 표구를 잊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그 표구를 찾아온다. 그 이후로 나는 그 휴지 안에 적혀 있는 글이 담고 있는 진심과 삐뚤빼뚤한 글자 자체에도 매료되어 창호지에 먹으로 적힌 글들을 읽는 버릇이 생겼다는 이야기이다. 

 

휴지 안에 적혀 있는 글이라고 몇 가지 인용을 해 놓았는데 나는 그 글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게 무슨 뜻인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일단 띄어쓰기를 다 무시하고 붙여서 적어 놓아서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모호했다. 그러니까 몇 번 반복해서 읽든가 아니면 아주 천천히 읽어야 의미가 들어온다. 처음에는 나도 너무 어색한다. 소설은 정제되어 있는 글이라서 띄어쓰기 칼 같이 되어 있고 맞춤법도 당연히 다 맞는 글이다. 틀린 부분을 찾기가 어려운데 소설 속에서 이런 '막글'을 읽는 경험을 하는 것은 매운 드문 일이다. 그러니까 휴지에 적혀 있는 글 자체가 매우 독특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소설 속 주인공이 가치가 있다니까 나도 유심히 읽어 보았다. 

 

자꾸 읽다 보니까 그 글이 주는 매력이 있다. 하나도 꾸미지 않은 글. 마음을 그대로 찍어 낸 글이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글은 진심을 담고 있고 진실을 말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휴지에 막 쓴 글들은 소설 속에서 주인공의 친구가 말하듯 "국보급" 휴지인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을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글을 꾸밀 이유가 뭐가 있을까? 그냥 막 생각나는 대로 써도 된다. 어쩌면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글을 잘 꾸며 쓰는 훈련보다 마음 수련이 더 필요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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