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단편소설

[세계단편소설] 니콜라이 고골 "외투"_기시감이 드는데, 왜일까?

설왕은 2023. 2. 6. 09:00

니콜라이 고골 (1809-1852)이 쓴 단편소설 "외투"는 외투로 인해 발생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841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관료주의 안에서 자신의 역할보다는 권력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의 진상 짓을 꼬집고 가난한 자들이 비참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소설이다. 그렇지만 아주 심각한 어투로 쓴 소설은 아니고 판타지적인 요소도 있고 유머도 있다. 

 

* 줄거리

아카키에비치는 9등급 관리로 살아가고 있는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하지만 윗사람에게 아부할 줄도 모르고 요령도 피울 줄 몰라서 출세할 가능성도 별로 없고 돈을 모을 뾰족한 방법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면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아카키에비치에게는 한 가지 커다란 고민이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겨울을 날 외투가 너무 낡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외투를 고치기 위해서 재봉사 페트로비치를 찾아갔지만 재봉사는 외투를 고칠 수 없고 한 벌을 새로 맞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카키에비치는 모아두었던 돈과 상여금, 그리고 근검 절약해서 돈을 모아서 결국 새 외투를 구입한다. 새 외투를 입고 출근하자 동료들은 그에게 축해해 주고 그를 위해 파티를 열어 준다. 그러나 아카키에비치는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강도를 만나서 외투를 빼앗긴다. 아카키에비치는 외투를 되찾기 위해 경찰 서장과 유력 인사를 찾아가지만 모욕만 당하고 쫓겨난다. 집으로 돌아온 아카키에비치는 병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아카키에비치가 죽은 뒤 그 도시에서는 유령이 나타나 사람들의 외투를 빼앗아 가는 일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민원을 넣지만 경찰도 해결을 하지 못하다가 유령은 아카키에비치의 청원을 거절했던 관리의 외투를 빼앗은 뒤 사라진다.

 

* 오래된 소설인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다

1841년에 나온 작품이라 사실 좀 재미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옛날 느낌이 나거나 또는 고리타분한 글의 전개, 뻔한 결말과 같은 구조를 가진 작품이 아닐까 의심도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갑자기 유령이 나오는 뜬금없는 전개가 현대적이라고 해야 할까?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소설이니까 유령이 나오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작가의 마음인데 작가는 아주 자유롭게 글을 전개해 나갔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가 있는 관청의 이름은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어느 부처, 어느 연대, 어느 지청을 막론하고 관리란 족속들처럼 화를 잘 내는 친구들도 드무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느끼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모욕을 마치 사회 전체 구성원에 대한 모욕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관리들에 대한 작가의 불만이 가득 담겨 있는 글이라는 사실이 글의 처음부터 드러나 있다. 관리들은 화를 잘 낸다고 비판하면서 시작한다. 그래도 모든 관리들이 그렇지는 않을 테고. 소설의 주인공 아카키에비치는 정말 성실한 친구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아카키에비치에게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저 다른 나쁜 놈들에 비하면 나쁘다고 할 수 없고 그저 좀 고지식하고 요령이 없어서 늘 하급 관리에 머물러 있고 잘하는 일이라고는 정서(글씨를 반듯하게 쓰는 일)밖에는 없다. 사람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를 놀려먹기에 바빴고 그는 별다른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카키에비치는 그의 일을 사랑했다. 

 

게다가 그는 또 아주 특수한 재능을 하나 갖고 있었다. 길거리를 걸을 때 사람들이 창문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바로 그 순간에 기가 막히게 그 창문 밑을 지나가는 그런 재능 말이다. 그래서 그의 모자에는 언제 보아도 수박이며 참외 껍질 따위가 얹혀져 있었다. 

 

 

이 정도로 아카키에비치를 묘사하니 그가 불쌍하기보다는 시트콤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그의 모자에 올라가 있는 수박과 참외 껍질을 상상하게 된다. 이렇게까지 사람이 둔하고 재수가 없을 수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기 힘드니까 이 정도는 억지가 아니라 그냥 웃기는 장치처럼 보인다. 

 

* 기시감이 든다

그는 애써서 정말 애를 써서 새 외투를 장만한다. 외투란 그에게 필요한 단 한 가지 물건이었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견디기 위한 필수품이었다. 사치품이 아니라. 사람들은 가지고 싶은 것을 샀을 때 행복해하고 필수품을 샀을 때는 그리 행복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카키에비치는 그렇지 않았다. 새 외투는 그를 정말 행복하게 했다. 그러나 그는 강도에게 새 외투를 빼앗긴다. 외투를 빼앗아가는 강도가 있다는 사실이 아픈 현실이다. 강도는 외투를 빼앗아서 팔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필요해서 빼앗았을 수도 있다. 추운 겨울을 지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물건을 가난한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빼앗는 현실이 슬프다 못해 웃기는 현실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장면이 기시감이 드는데 이유는 왜일까?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것을 빼앗으려고 싸우는 이런 소설 속 장면이 지금의 현실과 그리 다른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 

 

진짜 문제는 아카키에비치가 자신의 외투를 되찾으려는 노력에서 시작한다. 아카키에비치는 고관을 찾아간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별로 대단치 않은 지위라도 스스로는 아주 대단한 것으로 여기는 그런 인간들이 이 세상에는 언제나 있는 법이다. 더욱이 그 고위 관리는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자신의 지위를 더욱 높여 보려고 애를 쓰는 중이었다. 이를테면 자기가 출근할 때 부하 직원들이 모두 현관까지 마중을 나오게 한 것도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그는 어떤 살마도 자기 방에 직접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관련된 업무를 엄격하게 정해진 규칙과 순서에 따라 처리하도록 하는 등 내부 규칙을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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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키에비치는 고관을 찾아가서 자신의 사정을 말했지만 그 고관은 아카키에비치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기 않았다고 고함을 지르고 모욕을 준다. 그래서 그는 비틀거리면서 물러섰고 결국 수위에 의해서 밖으로 끌려나갔다. 결국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카키에비치는 앓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절차라... 절차를 따지면서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들, 그리고 그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고 수사를 하고 기소를 하는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소설 속에도 등장한다. 그 고관이 너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볼 때는 현실 속 인물보다는 훨씬 강도가 약하다. 현실에는 더 나쁜 놈들이 많은 것 같다. 200년 전 러시아도 그랬구나. 200년이 지난 우리나라는 상황이 더 안 좋아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다. 기자들은 현실을 고발하지 못하고 적응하고 있는데 그때도 그랬나? 그래서 소설가들이 나선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도 소설가들이 나서야 할 때인가? 허허허.... 

 

아무도 아카키에비치의 복수를 해주지 않는다. 세상은 원래 그러한 것을 어떻게 하겠나. 그저 아카키에비치가 부적응자였을 뿐. 그래도 그냥 그렇게 끝났다면 마음이 좋지 않았을 텐데 유령이 나타나 복수를 한다. 애꿎은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했으나 결국 그 고관을 외투를 빼앗으면서 복수는 끝난다. 너무 소심한 복수이다. 자신은 목숨을 잃었는데 외투 하나 빼앗는 것으로 끝내다니. 고관은 외투를 금방 다시 샀을 것이다. 유령이 나타나서 무서운 것이 아니라 너무 코미디 같다. 소설 속 세상이 참 부조리한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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