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단편소설

[세계단편소설] 에드거 앨런 포 "어셔가의 몰락"_수수께끼 같은 소설

설왕은 2023. 9. 19. 09:00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은 당황스럽다. 가끔 글을 읽다 보면 작가가 제정신인가, 하고 궁금할 때가 있는데 포의 소설도 살짝 그런 느낌을 준다. 살짝이라고 말한 이유는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섬세한 묘사나 치밀한 구성을 가진 소설이 분명히 말하고 싶은 바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포의 소설은 범상치 않다. 그런데 그의 소설이 과연 위대한가에 대해서는 '글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대의 미국 사람들은 그의 위대함을 발견하지 못했고 후대의 미국인들도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프랑스 작가들에 의해서 포는 재발견되었고 그의 작품은 '미와 전율'이라는 문구와 함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포의 작품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미국 사람들과 비슷하다. 잘 모르겠다. 미와 전율이라는 문구는 대충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포의 작품은 아름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특히 어셔가의 몰락은 잘 모르겠는 작품 중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친구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어셔가를 찾아간 소설 속 화자는 어셔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다가 어셔의 여동생이 죽자 어셔와 함께 그 동생을 저택의 납골당에 묻는데 알고 보니 그 동생은 죽지 않았던 것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어셔의 동생은 피 묻은 수의를 입은 채로 나타나고 어셔에게 쓰러져 어셔는 숨을 거둔다. 그 순간 공포에 질려 소설 속 화자는 저택을 빠져나와 도망치고 거짓말처럼 그 순간 저택은 무너져 버린다. 이게 과연 무슨 귀신같은 이야기일까?

 

 

🎈 자세한 줄거리

그해 가을 하늘을 온통 갑갑하게 메운 낮은 구름 때문에 컴컴하고 우중충하고 적막하던 어느 날, 나는 온종일 홀로 말을 달려 시골 마을 중에서도 특히 더 황량한 지역을 지나, 저녁 어스름에 그림자가 길어질 무렵 마침내 음침한 모습의 어셔 저택이 보이는 곳까지 당도했다. 어떻게 해서 그리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저택이 눈에 띄자마자 나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우울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무기력해 보이고 우울해 보이는 그 음침한 저택에 나는 몇 주 정도 머물 계획으로 도착했다. 저택의 주인은 로더릭 어셔로 어릴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지만 몇 년 동안 왕래가 없었다. 어셔는 나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자신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어서 와서 좀 도와줄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의 쾌활함이 자신의 병고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소망을 편지를 통해 전달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요청을 수락했다. 하지만 어셔가의 저택은 나에게 불길한 감정을 일으켰고 어두운 환상과 함께 그 집에는 독특한 기운이 우중충하게 뻗어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건물은 자잘한 금이 수도 없이 나 있었지만 구조적으로 탄탄해 보였다. 집에 도착해서 말을 하인에게 넘겨주고 어셔가 있는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밖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집 내부도 어둡고 암울해 보였으며 삐걱거리는 복도를 지나 어셔가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모든 것이 어둡고 낡고 불편해 보였고 그 방은 슬픔과 침울함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소파에 누워 있던 어셔는 나를 보자마자 일어나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하지만 로더릭 어셔는 어렸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으며 끔찍하게 변해 있었다. 그의 얼굴은 지나치게 창백했고 그에 반해서 그의 눈의 광채는 초자연적으로 번뜩여 보였다. 거미줄보다 더 가늘어 보이는 그의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자라서 그의 얼굴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병으로 인한 그의 증상을 내게 말해 주었다. 

 

그는 병적으로 예민한 감각 때문에 큰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가장 풍미가 없는 음식만 겨우 먹을 만하고 특정한 천으로 만든 의복만 입을 수 있으며 꽃향기를 맡으면 숨이 막히고 아주 약한 빛에도 눈이 아프다고 했다. 그리고 특정한 소리, 그것도 현악기에서 나는 특정한 소리만이 그에게 공포감을 주지 않는다고도 했다. (61)

 

 

그는 다양한 비정상적인 공포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겁을 내고 있는 것은 신체적 위험이 아니라 공포로 인해 사로잡히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겁을 내고 있었으며 어셔가의 저택이 자신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를 우울하게 하는 사실은 그의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친척 여동생 매들라인이 중한 병으로 인해 곧 죽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어셔가 그의 동생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동안 매들라인 아가씨라고 불리는 그의 동생이 그의 방에 나타났다가 구석 쪽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몸이 굳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그녀 오빠의 표정을 살펴보려고 했으나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눈물만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병명은 여러 가지였고 의사들은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병약한 그녀의 모습 때문에 나는 그녀를 우연히 만난 그 순간이 살아생전 그녀를 본 마지막이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친구의 병이 완화되기를 바랐으나 전혀 그런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우울한 정신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나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분명해졌다. 하지만 그의 연주와 노래와 그림은 영원히 내 기억에 남을 정도로 강렬한 것이었다. 

 

이 세상에 관념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사람이 있다면 다름 아닌 로더릭 어셔이다. 우울증 환자인 내 친구가 화폭 위에 공들여 그린 순수한 추상화를 보면 적어도 나는--당시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속에서--견딜 수 없는 정도의 강렬한 경외감을 느꼈다. (65)

 

어느 날 어셔는 매들라인 아가씨가 죽었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 주면서 그녀를 매장하기 전에 그녀의 시체를 지하 납골당 중 한 곳에 이 주 동안만 보관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특별히 묻지 않았지만 어셔는 매들라인의 병이 워낙 특이했으므로 담당 의사들이 죽음의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시체는 우리 두 사람의 힘만으로 매장하기로 했다. 납골당은 작고 축축하고 아주 캄캄했다. 나는 아직 못질하지 않은 관 뚜껑을 젖혀서 그 안에 누워 있는 그의 여동생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매들라인은 어셔와 놀랍도록 비슷해서 깜짝 놀랐는데 어셔는 고인이 자신과 쌍둥이 남매였으며 둘 사이에는 항상 긴밀한 정신적 교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그녀는 얼굴에 수상쩍은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정말 끔찍했다. 관 뚜껑을 덮고 못질을 한 뒤 철문을 닫고 저택의 위층으로 올라갔다.

 

며칠이 지나자 친구의 병세는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그는 바쁜 발걸음으로 집안을 돌아다니고 얼굴을 창백하다 못해 퍼레졌고 눈은 광채를 잃었다.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록 그 크기가 줄어들었고 공포에 시달리듯 떨렸고, 오랫동안 빈 공간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의 불안한 마음 상태는 나에게까지 전달되어 내 마음까지 흔들어 놓았다.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리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잠도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귀신에 눌리는 느낌을 받았고 떨쳐내려고 벌떡 일어나 앉기도 했다. 공포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방 안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데 어셔가 찾아와서 문을 두드렸다.

 

"그것 못 보았나?" 그가 잠시 아무 말 없이 주위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말했다. "그러니까 그걸 못 보았단 말이지. 하지만 두고 봐! 너도 보게 될 테니."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들고 있던 램프를 손으로 조심스럽게 가리더니, 창문 가까이 다가가 활짝 열어젖혀 바깥의 폭풍을 불러들였다. (75-76)

 

나는 어셔를 창가에서 떨어뜨리고 소설책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 책을 읽으며 그 끔찍한 밤을 넘길 생각이었다. 그 책은 랜슬럿 캐닝 경이 쓴 "광란의 만남"이었다. 그 책은 어셔가 좋아하는 책은 아니었으나 친구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무슨 책이라도 읽어야 했다. 문이 부서지고 나무판자를 잡아 뜯어 문 전체가 박살나는 내용을 읽을 때 그 내용에 묘사한 것과 유사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무시하고 책을 계속 읽어나가는데 책에서 묘사하는 소음 소리가 실제로 들리는 듯했다. 어셔는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게 되었다. 

 

"안 들리느냐고? 아니, 들려. 그리고 전에도 들렸지. 길고, 길고, 긴, 오랜 시간, 오랜 날들 동안 그 소리가 들려왔어. 그렇지만 난 감히--오, 가련하고 비참한 존재인 날 불쌍히 여겨줘!--난 감히, 감히 말할 수 없었어! 우리가 그 애를 산 채로 무덤에 넣었다는 걸! (81)

 

격한 바람으로 인해 방문이 열렸고 그 문밖에는 수의를 입은 그의 동생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얀 수의는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덜덜 떨며 문턱에 서 있던 그녀는 몸이 앞뒤로 흔들리더니 오빠 쪽으로 넘어졌고 어셔는 바닥에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나는 그 방에서 빠져나와 저택의 바깥으로 도망쳤다. 폭풍우는 여전히 사납게 몰아치고 있었고 길 위로 환한 빛이 비쳐서 그 빛의 근원을 찾아서 뒤로 돌아섰다. 빛의 근원지는 핏빛 보름달이었다. 그 빛은 저택의 벽의 갈라진 틈을 헤치고 나와 생생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틈은 회오리바람으로 인해 급격하게 더 벌어졌다.

 

순간 그 회오리바람의 궤도 전체가 내 눈앞에서 흐트러졌고, 거대한 벽이 사나운 기세로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으며, 내 머릿속도 별안간 어질어질해졌다. 바다의 파도가 포효하는 듯한 소리가 한동안 들려왔고, 내 발아래 있던 깊고 축축한 호수가 어셔가의 잔해를 삼키며 침울하고 조용하게 닫혔다. (82-83)

 

 

🎈 미국에 발견하기 힘든 낭만주의 소설

어셔가의 몰락은 작가가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하는지 잘 가늠이 되지 않는 소설이다. 미국에서 에드거 알렌 포의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이유는 이렇게 난해한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미국은 낭만주의를 겪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8세기 합리주의에 대항해서 유럽에서는 낭만주의 소설과 그림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거의 낭만주의 사조가 나타나지 않았다. 낭만주의는 인간의 감정에 집중한다. 낭만주의는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보는 것보다 감정적 존재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이해라고 본다. 인간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발생할 때 그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 올바르지 않은 감정이라고 억누르거나 아니면 좀 더 극단적으로 어떤 감정은 세상이 받아들일 수 없는 감정이라고 해서 그 감정의 주체를 총으로 쏴서 죽여버린다면 어떨까? 그렇게 감정의 주체인 인간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 옳을까? 물론 지나치게 괴물 같은 감정이라면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감정이라고 해도 무조건 억제하거나 제거할 것이 아니라 적어도 관찰해 볼 필요는 있다. 도대체 왜 인간에게는 그런 감정이 튀어나오는 것이며 그 괴물 같은 감정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포의 작품은 미국에서 발견하기 힘든 낭만주의 소설이다. 그러니 당연히 미국에서는 인정을 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일단 낭만주의 소설이라는 틀 안에 놓기만 해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어셔가의 몰락은 인간에 대한 관찰 자체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소설일 수 있다. 아주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인 어셔는 자기 동생이 죽지 않았는데도 죽었다고 판단한다. 희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서 보통 사람이라면 그녀가 죽었다고 판단할 수 있더라도 어셔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어셔는 그의 동생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셔는 소설의 화자인 나와 함께 어셔의 동생을 저택 내에 있는 납골당의 관에 넣고 못질을 해서 그녀를 생매장해버린다. 어셔는 자기가 그런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그의 예민한 감각은 그의 동생에 대해서만은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자도 후자도 다 가능성이 있다. 어셔와 그의 동생 모두 죽어 가고 있었는데 더 가망이 없는 동생을 먼저 죽이고 자신도 죽을 것을 기다리고 있었을 수도 있고 동생에 대해서만 그의 감각이 무뎌졌을 수도 있다. 어셔의 동생이 피가 묻은 수의를 입은 채로 문 앞에 나타나기 전에 어셔는 이렇게 외쳤다. "이 미친놈아! 내 말 잘 들어. 지금 그 애가 지금 저 문밖에 서 있으니까!" 어셔가 말한 이 미친놈은 자기 자신일까, 아니면 소설 속 화자일까? 잘 모르겠다. 

 

 

👍 수수께끼 같은 소설

어셔가의 몰락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읽어 보고 싶은 소설이다. 괴기스럽기는 한데 구성이 치밀해서 작가가 대단한 의도를 가지고 쓴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파악이 안 된다. 어셔가는 이미 무너질 준비를 하고 나타난다. 건물의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이어져 있는 갈라진 금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축축한 호수. 나중에 저택이 무너질 때 갈라진 금이 점점 더 벌어지면서 핏빛을 머금은 달빛이 그 갈라진 틈 사이로 빠져나오고 그 앞에서 도망치고 있는 소설 속 화자의 다급한 달음질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경악스러운 환상을 일으키는 수수께끼 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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