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단편소설

[세계단편소설] 에드거 앨런 포 "검은 고양이"_인간에겐 탈출구가 없다

설왕은 2022. 6. 14. 09:00

에드거 앨런 포(1809-1849)는 미국 보스턴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마흔 살에 유명을 달리했으니 정말 이른 나이였습니다. 19세기 미국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몇 살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마흔 살은 훨씬 넘을 것입니다. 마흔 살에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은 그가 병약한 사람이었거나 아니면 사고를 당했거나 아니면 불행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가난한 삶을 살았고 알코올 중독자였고 마약도 했고 우울증과 신경 쇠약으로 고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 "검은 고양이"의 주인공인 '나'는 에드러 앨런 포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 한 줄 줄거리

검은 고양이의 플루토의 복수로 인해 '나'는 아내를 죽인 죄가 발각되어 구속되었고 사형 집행이 예정되어 있다. 

 

* 줄거리

나와 아내는 애완동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갖가지 애완동물을 키웠는데 그중에서도 플루토라는 이름의 검은 고양이를 좋아했다. 그러나 나는 술을 마시면서 포악해졌고 플루토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고 돌아온 어느 날 플루토가 나를 슬금슬금 피하자 화가 난 나는 고양이의 한쪽 눈을 칼로 도려냈고 며칠 후 결국 플루토의 목을 밧줄로 묶어 나뭇가지에 매달아 죽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화재로 재산이 모두 타 버렸고 '나'는 플루토를 죽인 일을 후회하게 되었다. 어느 날 플루토와 닮은 고양이를 발견한 나는 그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 왔다. 고양이는 나를 무척 좋아하고 따랐으나 나는 그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양이에 대한 증오감을 커졌고 어느 날 층계를 내려가다가 다가 온 고양이 때문에 발을 헛디뎌 떨어질 뻔했다. 화가 난 나는 도끼를 들어 고양이를 내리쳤으나 옆에서 말리던 아내의 이마에 도끼날이 떨어졌고 아내는 즉사했다. 나는 지하실 벽 안쪽에 아내를 기대 놓고 벽돌로 막은 후 석회를 반죽해 벽돌 위에 발라 버렸다. 아내가 실종되어서 경찰이 나를 의심하고 집안을 수색하지만 아내의 시체를 찾지 못하고 돌아서려던 차에 벽 쪽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났다. 벽을 허물자 그 안에 여자의 시체가 벽에 기대어 있고 시체의 머리 위에 검은 고양이가 울고 있었다. 

 

* 나는 어디서 이 이야기를 들었더라

저는 이 이야기를 소설로 읽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보통 수련회를 가면 늦은 밤에 둘러앉아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 했죠.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거의 정해진 코스 같은 것이었습니다. 새벽 두 시쯤에 무서운 얘기를 시작하죠. 그 얘기를 듣다가 이제 한 사람씩 잠이 들고 했는데요. 그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냥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무서운 이야기라고 알고 있었는데 에드거 앨런 포가 지은 소설이라는 사실은 정말 나중에 알게 되었죠. 지금이야 워낙 다양한 종류의 소설이 많지만 19세기에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것 자체가 포의 천재성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죠. 

 

* 왜 '나'는 플루토를 귀여워했을까?

말 잘 듣는 개를 길러 본 사람이라면 애완동물로 하여금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 어떤 것인가, 그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동물의 애정에는 인간처럼 어떤 사소한 계산도 있을 수 없다. 오로지 자기희생뿐이다. 

 

"검은 고양이"의 주인공인 나는 플루토를 무척 귀여워했습니다. 그 이유가 나와 있죠. 동물의 사랑은 자기희생적인  사랑이기 때문이라는 것인데요. 반대로 인간의 사랑은 계산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고요. 아마도 포는 사람들의 사랑 방식에 지쳤던 것 같기도 합니다. 계산적인 사랑이 아닌 온전한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받고 싶었기 때문에 플루토를 귀여워했던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온전히 자기희생적인 사랑이라고 믿었던 플루토와 다른 애완동물들로 그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나를 피하기 시작하죠. 그것은 나를 화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동물의 사랑은 계산이 없이 완전히 자기희생적이라고 믿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나는 그 사랑을 결국 파괴합니다. 

 

 

* 술과 인간의 악마성

검은 고양이의 주인공인 '나'는 원래 나쁜 사람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닌데 술을 마시면 악마성이 나오죠. 아마도 포는 이 사실이 괴로웠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술을 마시면 이성이 둔해지는데 그러면 이성이 아닌 본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 본능이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죠. 사람이 이성으로 자신의 행동을 제어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고 나쁜 일이기도 합니다. 이성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포에게 이것은 나쁜 것이기도 합니다. 계산적이죠. 이성은 계산적입니다. 이성으로 하는 행동은 계산적인 행동입니다. 이성을 가지고 사랑을 하는 것은 계산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본능에 충실한 사랑이 진짜 사랑이죠. 계산에 기대지 않는 사랑이 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성으로 하는 사랑이 나쁜 것이라면 이성을 마비시켜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검은 고양이의 주인공인 '나', 여기서 '나'는 에드거 앨런 포인 것 같습니다. 술을 마시고 이성을 마비시키면 폭력성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에는 폭력성이 있을까요? 아마 이 사실이 또 포를 괴롭혔을 것입니다. 진퇴양난이죠. 이성으로 하는 사랑은 계산적인 사랑이고 이성을 마비시키면 폭력성이라는 악마 같은 본성이 드러나게 되니까요. 그러니까 '나'는 나를 좋아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데 여기서 인간은 나까지 포함되는 것이죠. 그래서 나는 플루토라는 고양이를 좋아합니다. 사람을 사랑할 수 없었던 나의 희망이었죠. 그러나 그 희망도 무너지죠. 동물의 사랑도 완전한 자기희생적인 사랑은 아닙니다. 자기를 괴롭히고 학대하는 사람에게는 적대감을 드러내죠. 자신의 희망이 무너지자 '나'는 견딜 수 없이 화가 나서 플루토를 죽였습니다. 

 

 

* 가장 그로테스크한 장면

사람들은 이 소설을 그로테스크하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로테스크라는 말은 괴기스럽고 부자연스럽고 흉측한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죽은 여자 시체 위에 애꾸눈의 고양이가 울고 있는 장면을 가장 그로테스크한 장면으로 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장면이 더 괴기스러웠습니다. 

 

나의 순수한 영혼은 단숨에 내 몸을 빠져나가 버리고, 술에 절어 일그러진 사악한 증오가 온몸을 전율로 떨게 했다. 나는 조끼 주머니에서 조그만 칼을 꺼냈다. 그리고 고양이의 목을 움켜잡고 한쪽 눈을 태연히 도려냈다. 고양이는 미친 듯 소리치며 울부짖었다. 

 

 

*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

사람은 악마성을 가지고 있고 결국 벌을 받을 것이다.

 

이 소설 속의 '나'가 에드거 앨런 포의 분신이라면 저는 포가 참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에게는 탈출구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