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단편소설

[세계단편소설] 헤르만 헤세 "나비"_가루가 된 나비

설왕은 2022. 6. 21. 09:00

헤르만 헤세가 쓴 "나비"는 나비 수집하는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쓴 소설이라서 주인공이 '나'입니다. 헤르만 헤세가 쓴 장편 소설은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이 소설은 아주 그렇지 않습니다. 형이상학적인 내용이나 뜬구름 잡는 대화 없이 일어난 일을 묘사하고 주인공의 기분이나 감정도 직접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분명 읽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기억이 났습니다. 

 

* 한 줄 줄거리

나비 채집을 좋아했던 나는 에밀의 점박이 나비를 탐내서 그것을 훔쳤다가 결국 되돌려 놓고 고백했지만 에밀에게 상처를 받고 나비 채집이라는 취미를 그만둔다. 

 

 

소설 속 나는 에밀이 채집한 점박이 나비를 탐냈습니다. 그런데 나는 에밀에게 좋은 감정이 없었죠. 왜냐하면 에밀은 나비를 채집해서 표본을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는데 내가 만든 표본에 대해서 에밀이 혹평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에밀이 아주 희귀한 점박이를 소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에밀이 없는 틈에 그의 방에 들어가 점박이 나비를 훔칩니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되돌려 놓았지만 나비는 이미 망가져 버렸습니다. 괴로워하는 나에게 엄마는 솔직하게 고백하고 사과하라고 나에게 조언을 건넵니다. 나는 에밀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았지만 에밀은 이렇게 반응하죠.

 

나는 담담한 얼굴로 모든 게 내 소행임을 밝혔다. 에밀은 격분하거나 큰 소리로 나를 꾸짖지 않았다. 한동안 나를 지켜보다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이제 너란 놈의 실체를 알겠어."

 

 

에밀의 반응이 차갑고 아주 야비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내가 잘못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고백했는데 이거는 사과를 받아주는 것이 아니죠. 그래도 일단 내가 잘못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속죄할 방법을 제시해 봅니다. 내가 수집한 나비를 몽땅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에밀의 반응이 또 무시무시했죠.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나는 네가 모은 것들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게다가 네가 나비를 다루는 솜씨 또한 잘 알고 있으니까."

 

 

에밀도 화가 나서 이렇게 말한 것도 있겠지만 에밀은 원래 좀 재수 없게 말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꾸해 주어야 할까요? 소설 속 '나'는 에밀에게 계속 당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어떻게 할 도리도 없죠. 내가 잘못한 게 맞으니까요. 내가 에밀의 점박이 나비를 훔쳤다가 나비 표본을 망가뜨리고 엄마의 조언을 따라 솔직하게 죄를 고백한 것은 아주 평범한 한 소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사실 너무 평범해서 재미가 없죠. 재미없는 '나'에 비하여 에밀은 어린 소년 같지 않습니다. 어디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배우는 학원에 다녔는지 아주 얄밉게 말합니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그냥 소설이 끝나나 싶었죠. 그런데 마지막 단락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어머니는 경과를 묻지 않은 채 조용히 내 볼에 키스를 해 주었다. 잠들기 전, 나는 그동안 애써 수집한 나비 상자를 가져와 뚜껑을 열었다. 그런 다음, 핀으로 눌러 놓은 나비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었다. 나는 손으로 나비들을 비벼서 죄다 가루로 만들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자신에게 모멸감을 주었던 나비 채집이라는 취미 자체가 싫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까짓 나비가 뭔데 내가 에밀에게 수모를 당해야 하나,라고 생각하고 다 파괴해버렸을지도 모르죠. 나비보다는 자신의 자존심이 훨씬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이 소설은 내가 왜 나비 채집을 그만두었는지 설명하는 소설이기도 하죠. 

 

어렸을 때 했던 취미를 나이 들어서까지 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려면 아예 그 취미를 직업으로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 어린 시절 취미를 멈추어야 하는데 소설 속 '나'는 에밀에게 수모를 당한 후에 그 취미를 멈추죠. 분명히 어른이 되는 과정이기는 한 것 같은데 바람직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나비를 볼 때마다 에밀에게 당한 수모와 가루가 되어버린 자신의 나비가 생각날 테니 말입니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것이 이토록 무시무시한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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