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36

[한국단편소설] 공지영 "고독"_고독할 수 없어서 고독한 사람

공지영 작가가 1999년에 쓴 "고독"은 평범한 한 여자의 일상과 생각을 적고 있다. 결혼하고 두 명의 어린 자녀를 둔 한 엄마의 이야기이다. 자녀들은 아직 어리고 남편은 직장인이고 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못해서 아껴서 살아가는 보통 가정 주부의 이야기이다. 좀 특별하다면 이 여자는 아빠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고 만난 적도 없다. 이 여자의 엄마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고 그 남자가 말도 없이 사진도 한 장 남기도 떠나지 않아서 엄마와 단 둘이 살다가 엄마가 재혼을 해서 여동생이 하나 생겼다. 의붓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으나 그 역시도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서 소설 속 주인공 그녀의 말로는 성이 다른 세 사람이 살게 되었다는 것이 평범하지 못한 어려운 상황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녀도 그녀의 동생도 결혼을 해서 ..

한국단편소설 2023.01.29

[한국단편소설] 박완서 "조그만 체험기"_원한이라는 미세먼지

나는 늘 읽을 만한 소설을 찾는다. 읽을 만하다는 표현을 작가들이 들으면 섭섭해할지도 모르겠다. 작품 하나를 쓰려면 꽤 많은 고민과 수고를 들여야 할 텐데, 그 노력의 산물을 몇 문장 읽어 보고 읽을 만하다 그렇지 않다고 평가를 내리는 것이 너무 매정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상에 글은 참 많은데 읽으면 마음도 따뜻해지고 새로운 정보도 얻고 깨달음도 얻고 빛도 발견하고 그런 글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은 바라는 것이기도 하리라. 어쨌든 읽으면 도움이 되는 글을 찾고 싶다. 그래서 아직도 작가를 찾고 있다. 며칠 전에 단편 소설을 하나 읽다가 또 그만두었다. 소재는 참신한데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 인물이 있어서였다. 나는 아무리 소설이라도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

한국단편소설 2022.12.27

[한국단편소설] 이범선 "표구된 휴지"_국보급 휴지라...

1972년 에 발표한 이범선 작가의 단편 소설이다. 배경은 1960년대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생소한 주제이다. 요새는 표구를 잘 하지 않는다. 가끔 길거리에 표구집이라고 아직 남아 있기는 한데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표구는 그림이나 글씨를 액자에 넣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액자에 넣을 것이라면 왜 표구사에 맡기겠는가. 특별한 꾸밈이 있다는 말이다. 요새처럼 글자와 사진, 그림이 넘쳐나는 시대에 표구를 만들어서 집에 걸어 둔다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다. 이미 기성품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고 보통은 표구로 대단히 꾸밀 만한 글이나 그림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니 제목 자체가 벌썬 옛날 느낌이 난다. 나는 제목을 보고 무슨 내용인지 정말 하나도 짐작을 못..

한국단편소설 2022.12.20

[한국단편소설] 황순원 "필묵장수"_버선과 매화

황순원의 "필묵장수"는 1955년 "현대문학"에 처음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필묵장수로 나온 주인공 서노인의 삶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때문이었다. 필묵장수는 말 그대로 붓과 먹을 팔러 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한다. 지금이야 필묵장수를 찾을 수 없지만 1950년대만 해도 필묵장수가 꽤 있었나 보다. 서노인은 원래부터 필묵장수는 아니었다. 어렸을 때 글씨공부도 많이 하고 묵화도 배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배운 것으로 통 빛을 못 봐서 결국은 생계를 위해서 필묵장수로 나섰다. 주인공 이름부터 서노인이니 얼마나 그 일을 오래 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950년대라고 하지만 필묵장수가 잘 될 리가 없다. 그러니 서노인의 삶은 궁핍했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 붓과 먹을 팔러 다..

한국단편소설 2022.12.17

[한국단편소설] 황순원 "소나기"_기억하고 싶은 세 문장

1953년 "신문학"에 발표된 황순원의 단편소설이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고 교과서에 실린 소설이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매우 좋아했던 소설이고 한국 대표 단편 소설이라고 하면 첫 번째로 꼽을 정도로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대강의 줄거리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 읽어볼 시도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글 좋은 영화 좋은 그림 좋은 음악은 다시 보고 들어도 좋은 것 아닌가. 그런데 다시 잃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이 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좋은 느낌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가치를 깨닫고 나서 좋은 소설을 찾아서 읽고 싶었는데 찾기가 쉽지 않았다. 소설은 참 많..

한국단편소설 2022.12.11

[한국단편소설] 박경리 "불신시대"_한 발자국 더 가까이

박경리의 "토지"를 읽어보고 싶으나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열두 권짜리 장편 소설. 아직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그렇게 긴 이야기가 필요할까? 그래도 다들 추천을 하는 명작이라서 읽어보고 싶기는 한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시작하면 과연 끝을 낼 수 있을까? 남들이 다 좋다고 해도 나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열두 권을 읽으려면 열심히 읽어도 한 달은 걸릴 텐데, 그 정도 가치가 있을까? 좋은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좋은 의미를 전달해 준다는 보장은 없다. 어떤 면에서 좋다는 것이지 그 안에 흐르고 있는 사상과 철학이 나에게 도움을 줄까? 여러 가지 의문과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토지"는 "죽기 전에 읽어야 할 텐데 읽을 수 있을까?"라는 제목을 가진 책 목록의 1번 책이다. 그래서 박경리의 ..

한국단편소설 2022.07.21

[한국단편소설] 황순원 "독 짓는 늙은이"_독을 품었던 늙은이

황순원 작가의 "독 짓는 늙은이"는 말할 것도 없이 수작이다. 정말 뛰어난 작품이지만 읽고 싶지 않은 작품이다. 일단 너무 슬프다. 이렇게 아픈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발생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희망을 품기도 어렵다. 독 짓는 늙은이인 송 영감은 아마도 곧 죽을 것이기 때문에. 슬픈 일만 잔뜩 생기다가 송 영감이 죽는 이야기인데 읽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1950년 2월에 발표된 이 작품은 발표된 시기마저 슬프다. 조금 있으면 한국 전쟁이 터질 것이라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 "독 짓는 늙은이"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 제목을 들었을 때 여기서 말하는 '독'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 poison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늙은이는 누군가를 독살하기 위해서 ..

한국단편소설 2022.07.14

[한국단편소설] 황순원 "학"_덕재를 죽이라고?

1953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1953년이면 짐작이 가는 내용이기는 한데 과연 그 짐작이 맞을지 궁금해하면서 읽었다. 제목이 "학"이기 때문에 분명히 학과 관련이 있는 내용일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삼팔 접경의 이 북쪽 마을은 드높이 개인 가을 하늘 아래 한껏 고즈넉했다. 주인 없는 집 봉당에 흰 박통만이 흰 박통을 의지하고 굴러 있었다. 임시 치안대 사무소에 이르러 포승에 묶인 청년을 발견하는 성삼이. 가까이 가 얼굴을 확인한 성삼이는 깜짝 놀란다. 어렸을 때 단짝 동무인 덕재가 아닌가. 덕재를 자신이 데리고 가겠다고 나서는 성삼이. 성삼이를 데리고 가는 길에 그와 함께 했던 추억에 젖어든다. 덕재는 사람을 괴롭히고 죽일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성삼이는 덕재에게 묻는다. "이 자식아, 그동안 사람..

한국단편소설 2022.07.13

[한국단편소설] 함정임 "병신 손가락"_보여 주어야 할까?

소설 속 '내'가 병신 손가락을 갖게 된 사연과 남편에게 병신 손가락을 보여 주어야 할지 고민하는 이야기. 손에 장애를 입게 된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나 심각한 장애가 아니고 손톱 발달에 장애가 생겨 조금 부끄러운 정도이다. 한국 전쟁 이후에 가난하고 어려운 시기를 거친 우리나라 사람에게 흔하게 생길 수 있는 일을 다루고 있다. 생존 자체가 문제인데 안전이나 건강까지 챙기기에는 어려운 시기였다. 병이 들거나 상처가 생겼을 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서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는 다반사였기 때문에 함정임 작가의 "병신 손가락"은 20세기 중후반을 살았던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좋았다. 평범한 이야기라서. 결혼하고 삼 개월이 지나도록 그는 ..

한국단편소설 2022.07.10

[한국단편소설] 황순원 "비바리"_황순원을 읽어야겠다

소설이란 한낱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가 소설을 폄하하던 나에게 거의 유일한 예외가 되었던 소설은 황순원의 "소나기"였다. 이유는 잘 몰랐다. 그냥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 같다.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하기에도 적절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고 느꼈던 감정은 아름다운 예술품을 보고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끌리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소나기가 올 때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온 주인공들이 뛰어다니는 상상을 하곤 했다. 나이가 좀 들어서 '글'을 계속 읽어야 했고 '글'을 읽다 보니 소설의 가치를 발견했다. 좋은 소설을 읽고 싶었으나 찾기가 쉽지 않았다. 소설은 많고 그중에 특이한 소설은 많으나 좋은 소설로 느껴지는 소설은 별로 없었다. 20세기에 나온 한국 소설은 좀 피하고 싶었..

한국단편소설 2022.07.08

[한국단편소설] 김소진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1997)_어른이 된다는 것

제목이 판타지 소설 같습니다. 눈 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를 발견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거나 항아리의 요정이 나오지 않을까 예측하며 글을 읽었지만 전혀 그런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김소진 작가의 "눈 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서 화자인 '나'는 어린 시절 항아리를 깬 사건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이 그리 대단한 추억이 아닙니다. 눈이 쌓여 있던 겨울 어느 날 새벽에 오줌을 누러 갔다가 나오는 중 눈 밑에 있던 빠루를 밟아서 짠지 단지를 깬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때 항아리 같은 것 안 깨 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는 큰 사건이죠. 소설 속 나는 깨진 항아리를 숨기기 위해서 눈사람을 만들고 그 안에 검은 항아리를 숨깁니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눈사람을 만들어서..

한국단편소설 2022.06.16

[한국단편소설] 박완서 "자전거 도둑" (1979)_누가 좀 말려줘!

1979년에 처음 발표된 박완서 작가의 "자전거 도둑"은 시대 배경이 지금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1970년 대면 우리나라가 전후 복구 이후에 산업 발전에 총력을 기울이던 시기입니다. 도시에 사람들이 모이고 더불어서 여러 가지 산업이 급격하게 발전하던 시기이지요. 사회가 급변하는 시기에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도 있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뒤처지는 사람도 있게 마련입니다. 이 소설은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이 소년은 전기용품 도매상에서 일하면서 공부도 하면서 성공을 꿈꾸는 소년입니다. 이 소년이 자전거 도둑으로 몰리는 이야기인데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 소년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자전거를 훔치게 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는 소설입니..

한국단편소설 2022.06.13

[한국단편소설] 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2000)_예언자 황만근

성석제 작가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2000년에 동서문학에 발표된 소설입니다. 황만근 실종 사건을 다루고 있는 소설입니다. "황만근이 없어졌다"는 첫 문장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합니다. 결국 황만근은 죽어서 돌아오지만 그 사실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이 소설은 황만근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누가 정말 잘 살았는지 판단해 보라고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물론 작가는 황만근의 삶을 지지하죠.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소설 제목을 연상하게 하는 제목입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예언자라고 할 수 있죠. 묘한 말을 하는데, 잘 생각해보면 참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이 바로 짜라투스트라입니다. 마찬가지로 황만근도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지만 진리를 ..

한국단편소설 2022.06.10

[한국단편소설] 임철우 "사평역"_희미하게 남은 웃음 한 조각

"사평역"은 1983년에 발표된 단편소설입니다. 사평역에서 서울 가는 마지막 완행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사평역은 시골에 있는 작은 간이역입니다. 사람들은 막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심각하게 연착이 된 상황이었습니다. 시골 간이역에서 서울 가는 완행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사연이 이 소설을 구성하는 주요한 이야기입니다. 대단한 이야기나 즐거운 사건 같은 것은 없고 모두가 아픈 사연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이야기는 서로 연결 지점이 없어서 그냥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각하고 읽어나가면 되는 소설입니다. 임철우 작가의 "사평역"은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라는 시를 읽고 거기에 착안해서 쓴 소설이라고 합니다. 소설은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라는 시로 시작합..

한국단편소설 2022.06.06

[한국단편소설] 박완서 "친절한 복희씨"_친절은 진작 끝났어야 했는데...

친절한 복희 씨라는 제목을 보고 유쾌한 이야기를 기대했다. 친절한 사람이라면 분명히 친절을 베풀 것이고 그것이 내가 직접 받는 친절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친절한 행동을 보거나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저절로 흐뭇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친절은 아무나 베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거나 사랑을 많이 받아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친절한 자세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친절한 복희 씨는 재밌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은 첫 문장부터 빗나갔다. 그는 멍한 눈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멍한 눈의 주인공은 소설 속 복희 씨의 남편이다. 멍한 눈의 남자는 중풍에 걸려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고, 이 남자를 돌보고 있는 사람은 복희 씨이다. 처음..

한국단편소설 2022.01.25

[한국단편소설] 김정한 "모래톱 이야기"_욕심이냐 목숨이냐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는 1966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한 소설로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소설로서 재미의 요소보다는 시대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데 더 중점을 둔 작품입니다. 마치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기사와 같은 소설입니다. 김정한 작가는 한동안 소설을 쓰지 않다가 오랜만에 "모래톱 이야기"라는 소설을 썼는데, 아마도 사회의 부조리한 상황을 꼭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작품을 쓴 것이 아닌지 추측해 봅니다. * 줄거리 여기서 지은이인 나는 K중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지각생들의 변명을 듣던 중 건우라는 학생이 조마이섬에서 나룻배로 통학하는 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한국단편소설 2021.12.13

[한국단편소설] 전광용 "꺼삐딴 리"_대체로 기회주의자가 살아남는다

1962년에 발표된 "꺼삐딴 리"는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소설입니다. 꺼삐딴 리는 기회주의자의 전형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릴 때는 소설을 내가 읽는 것이 아니라 남이 읽고 평가해 놓은 대로 머릿속에 집어넣었죠. 그래서 꺼삐딴 리는 기회주의자이고 그래서 나쁜 사람 또는 별로 본받을 것이 없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글을 읽고 소화하는 방식이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음식을 씹어 먹어야 하는데 남이 씹어서 내 입에 넣어 주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맛도 없고 좋은 기억도 안 남게 되죠. 꺼삐딴 리, 이번에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꺼삐딴 리, 한국어로는 이인국 박사를 과연 기회주의자로 매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의 모..

한국단편소설 2021.12.08

[한국단편소설] 하늘의 별은 땅 위의 이슬과 같다_황순원 "별"

한국 근현대 소설은 참 우울합니다. 신나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전후의 전쟁 같은 삶. 문학은 인간의 상상 속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니까 현실의 암울함을 훌쩍 털어버릴 만한 작품이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현실에 발을 딛지 않은 것이 거의 없습니다. 차라리 두 발을 다 현실 안에 제대로 내리고 나온 작품이라면 당시의 아픔을 간접적으로라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을 텐데, 일제강점기 시대의 작품은 그마저도 불가능했습니다. 소설 속에서 압제자는 없는데 사람들의 삶은 모조리 비참하죠. 괴롭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스스로 어디가 모자라서 괴로운 것처럼, 가해자 없는 피해자들의 비참함을 글을 통해서 보고 있는 것이 즐거울 턱이 없습니다. 황순원의 "별"은 1941년에 발표된..

한국단편소설 2021.02.02

[베스트문장3] 임철우 "아버지의 땅"

저는 좋은 한국 소설을 찾고 있습니다. 찾기가 쉽지 않네요. 최근에 인기가 있는 소설은 아무래도 작가의 지명도에 기대어 있거나 사회적 이슈가 된 작품들이 많아서요. 좋은 작가의 작품은 대체로 좋기는 한데 항상 좋은 것은 아니고요. 개인적인 취향도 있으니까요. 아무리 좋은 작가라도 저와는 안 맞을 수 있습니다. 또 요새는 좋은 작품이라서 잘 팔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열심히 팔아서 많이 팔리는 작품이 꽤 있습니다. 마케팅의 승리지요. 베스트소설이어서 읽어 보면 상당히 실망스러운 것들이 많습니다. 또 자극적인 것들이 인기를 끌 때가 많지요. 저도 사람인데 자극적인 것에 안 끌리는 것은 아닌데요. 자극적인 음식은 두고두고 자주 먹을 수는 없는 것처럼 자극적인 작품은 금방 질리기도 하고 곱씹어 볼 만하지는 않..

한국단편소설 2021.01.11

[한국단편소설] 다 아는 바보_양귀자 "원미동 시인"

나는 좋은 소설을 읽고 싶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좋은 문장을 읽고 싶어서이다. 내가 읽는 책들은 번역서가 매우 많고 번역서가 아니더라도 문장 자체가 수려한 글을 읽을 기회가 별로 없다. 좋지 않은 문장들로 이루어진 글을 읽을 때마다 드는 느낌은 처음 가본 동네를 헤매면서 길을 찾고 있는데 길에 지나다니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들 때문에 계속 신경 쓰면서 두리번거리는 기분이다. 매우 불편하다. 생각의 깊이가 있는 책들은 보물이 숨겨져 있는 지도책과도 같다. 잘 보면, 정말 잘 보면 보물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 보물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의 크기를 알기 때문에 답답함과 불편함을 알면서도 책을 계속 집어 들고 읽게 된다. 그러나 그런 책들은 대개가 불친절하고 문장이 좋지 않다. 그런 글들을 읽으면서 느..

한국단편소설 2020.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