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리고시 21

[시] 존 던 "사랑의 식단 조절"_나의 사랑은 다이어트 좀 해야 해

사랑의 식단 조절 나의 사랑은 너무나 육중해 다루기 힘들고 무척이나 거추장스럽게 비대해졌으리라. 만일 내가 그 사랑을 줄여 균형을 맞추려고 식단을 조절하고, 사랑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리 분별'이란 식사를 시키지 않았더라면. 한편으론 내 운명과 잘못에서 비롯하는 한숨을 나는 하루에 한 번 이상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때때로 그가 은밀하게 내 애인의 가슴에서 여성의 한숨을 끌어내어 그것으로 포식할 생각을 하면, 나는 그에게 알려 주었다. 그 한숨은 순수한 것도, 나를 그리워하는 것도 아니라고. 만일 그가 내 눈물을 짜내면, 나는 그 눈물을 경멸이나 수치로 짜게 절여, 그에게 영양분이 되지 않게 했다. 만일 그가 그녀의 눈물을 빨면, 나는 그에게 알려 주었다. 그가 빤 것은 눈물이 아니며, 그가 ..

시그리고시 2023.03.01

[시] 존 던 "그림자에 대한 강의"_열두 시에 멈춰라

그림자에 대한 강의 가만히 서 있어요, 사랑하는 이여, 당신에게 사랑의 철학에 대해 강의를 하겠소. 이곳을 거닐며 우리가 보낸 세 시간 동안 우리 스스로가 만든 두 개의 그림자가 우리를 따라다녔지요. 하지만 해가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있는 지금 우리는 그 그림자들을 밟고 있고, 그래서 모든 사물들이 아주 또렷해졌지요. 그처럼 우리의 어린 사랑이 커 가는 동안 우리에게서 가식과 그늘이, 그리고 조심성이 생겼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지요. 남들이 볼까 언제나 노심초사하는 사랑은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이랍니다. 우리의 사랑이 정오인 지금 멈추지 않으면 우리는 반대편에 새 그림자를 만들게 될 겁니다. 남들이 못 보게 하려고 첫 그림자들이 만들어졌으니, 이후에 생기는 이 그림자들은 우리에게 작용해, 우리..

시그리고시 2023.02.16

[시]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내 눈을 못 보게 하여도" (1901)_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내 눈을 못 보게 하여도 내 눈을 못 보게 하여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어요 내 귀를 막아도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요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어요 입이 없어도 당신을 부를 수 있어요 팔을 부러뜨려도 당신을 붙잡을 것이니 마치 손으로 하듯 심장으로 할 거예요 심장을 멈추게 하면 뇌가 고동칠 것이고 당신이 나의 뇌에 불을 놓으면 당신을 내 피에 담아 흐르게 할 거예요. 사랑을 어떻게 멈추게 할 수 있을까? 그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면 아무것도 그것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멈출 수 있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말자. 그대가 나에게 해를 가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대를 사랑할 것이니. 그대가 나를 파괴해도 내 피에 그대를 담을 것이니. 그대가 나를 파괴하더라도 내 사랑을 파괴할 수는 없다. 사랑은 그..

시그리고시 2023.02.09

[시] 괴테 "내 곁에 있는 당신"(1796)_그대가 없어도 생각하고 보고 듣는다

내 곁에 있는 당신 당신을 생각합니다. 바다의 태양이 희미하게 비칠 때면 당신을 생각합니다 은은한 달빛이 샘물에 그려질 때면 당신의 모습을 봅니다 멀리 길 위에 먼지가 일 때면 한밤중 좁은 오솔길에 나그네의 모습이 어른 거릴 때면 당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거친 소리를 내며 파도가 몰아칠 때면 고요한 숲속을 귀 기울이며 거닙니다 모든 것이 침묵할 때면 당신이 아주 멀리 있어도 나는 당신 곁에 있고 당신의 내 곁에 있습니다! 해가 지니 곧 별이 나를 비출 텐데 아, 당신이 여기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태양의 집은 바다이다. 아침에 되면 바다에서 뛰어올라온다. 하루종일 바깥에서 놀다가 밤이 되면 다시 바다로 들어간다. 바다의 태양이 희미하게 비칠 때는 태양이 집에서 나오는 순간 또는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시그리고시 2023.02.07

[시] 칼릴 지브란 "사랑은 아픔을 위해 존재합니다"_사람은 사랑을 위해

사랑은 아픔을 위해 존재합니다 사랑이 그대를 손짓하여 부르거든 따르십시오. 비록 그 길이 어렵고 험하다 해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를 품을 때에는 몸을 맡기십시오. 비록 사랑의 날개 속에 숨은 아픔이 그대에게 상처를 준다 해도 사랑이 그대에게 말하거든 그를 믿으십시오. 비록 사랑의 목소리가 그대의 꿈을 모조리 깨뜨려놓을지라도 왜냐하면 사랑은 그대에게 영광의 왕관을 씌워주지만 또한 그대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도 주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대의 성숙을 위해 존재하지만 그대를 아프게 하기 위해서도 존재한답니다. 사랑은 햇빛에 떨고 있는 그대의 가장 연한 가지들을 어루만져주지만 또한 그대의 뿌리를 흔들어대기도 한답니다. 삶의 무게가 버겁더라도 바닥에 붙어 있지 말자. 인간은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살도록 태..

시그리고시 2023.02.01

[시] 셰익스피어 "그대는 내게서 본다"_헤어질 준비

제목: 그대는 내게서 본다 찬바람에 흔들리는 저 나뭇가지에 몇 잎 누런 잎새 앙상한 계절을 그대는 내게서 본다. 엊그제 아름다운 새들 노래했건만 지금은 폐허된 성당 또한 내게서 본다. 만물을 휴식 속에 감싸는 제2의 죽음인, 검은 밤이 서서히 데려가는 석양이 서산에 파리하게 진 후의 황혼을 그대는 내게서 본다. 청춘을 키워준 열정에 그만 활활 불타 죽음처럼 사그라진 그 젊음의 잿더미 속에 가물거리는 청춘의 잔해를 내게서 보았거든, 그대 날 사랑하는 마음 더욱 강해지거라. 머지않아 그댄 내게서 떠나야 할 사람이거든. 셰익스피어가 쓴 시는 처음 읽어 본다. 극작가이기는 했지만 시도 썼을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처음 읽어 본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그대가 내게서 보는 것은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시그리고시 2023.01.30

[시] 드라이든 "사랑"_사랑과 시간을 아껴 쓰라

아, 사랑은 얼마나 감미로운가. 아, 젊은 욕망은 얼마나 즐거운가! 처음 사랑의 불에 다가서면 즐거운 아픔을 느낀다! 사람의 아픔은 모든 다른 기쁨보다 훨씬 감미롭다. 애인들이 내쉬는 한숨은 조용히 가슴을 부풀게 한다. 홀로 흘리는 눈물도 흐르는 향유처럼 그 아픔을 낫게 한다. 숨결 잃은 애인들도 아무 괴로움 못 느끼며 피 흘리며 죽는다. 사랑과 시간을 아껴 쓰라. 떠나는 벗처럼 대하라. 청춘에 주어지는 황금빛 선물을 마다하지 마라. 해마다 그 값은 더해 가고 전만큼 단순치 않으니. 봄철의 밀물처럼 가득하고 높은 사랑은 젊은 핏줄마다 용솟음친다. 그러나 조수마다 공급을 줄이고 드디어 그 선물을 다해 버린다. 노년에 홍수가 일지라도 그것은 단지 빗물, 깨끗이 흐르지 못한다. 존 드라이든(1631-1700)..

시그리고시 2023.01.27

[시]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_박용재_"나는 살고 있는가?"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저는 요새 하도 딱딱한 글을 많이 읽어서 감성이 메말라가고 더불어서 삶 자체도 마르고 있는 것 같아서 말랑말랑한 시를 읽고 싶었습니다. 박용재 시인의 "사람은 사랑한..

시그리고시 2022.04.22

[JP] 라이너 마리아 릴케_예수의 지옥길

예수의 지옥길 수난을 뒤로하고 마침내 그의 존재는 고통의 끔찍한 육체에서 벗어났다. 위에 있는 하늘. 그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어두움은 홀로 두려워했으며 박쥐들을 창백한 빛의 세계로 내몰았다,--저녁에는 그 파닥거리는 소리 안에서 얼음 같은 고통에 부딪칠까 두려움이 아직도 흔들린다. 불안한 어두운 공기는 시체에 용기를 잃었으며; 그리고 깨어난 강한 밤짐승들은 둔중함과 불쾌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유로워진 그의 정신은 아마 자연의 풍경 속에서 행동하지 않고 그냥 자리만 잡고 있고자 했다. 왜냐하면 그의 수난의 사건은 아직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사물의 밤이 현존함은 안정되어 보였다 그리고 슬픈 공간처럼 그는 그 위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상처의 갈증에 메마른 대지, 그러나 대지는 갈라졌으며, 나락에서..

시그리고시 2021.06.08

[현대시] 단 한 번의 영원한 경험_고정희 "겨울 사랑"

겨울 사랑 그 한 번의 감촉 단 한 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 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 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고정희 "겨울 사랑" in 아름다운 사람 하나 (p. 89) 오래전에 잭 블랙이 주연으로 활약한 "스쿨 오브 락"을 봤습니다. 잭 블랙 특유의 유쾌함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영화였습니다. 재밌었고 뭉클함도 있었고 음악이 들어가 있는 영화라서 귀도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가 하나 있었어요. 잭 블랙이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

시그리고시 2021.01.20

고양이는 봄이 맞습니다_이장희 "봄은 고양이로다"

봄은 고양이로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의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왠지 최근에 썼을 것 같은 시입니다. 요새 고양이 키우시는 분들이 정말 많잖아요.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이 시는 약 100년 전에 지은 시입니다. 이 시는 시인 이장희가 1924년에 쓴 작품입니다. 이장희는 1900년에 태어나서 2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는 시인이 24세에 지은 작품입니다. 이장희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폐쇄적인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봄의 향기, 봄의 불길, 봄의 졸음, 봄의 생기를 고양이의 ..

시그리고시 2019.11.21

누구의 시입니까_한용운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학교 다닐 때 분명히 배웠던 시입니다. 어..

시그리고시 2019.11.11

와짝 떠라_윤동주 "눈감고 간다"

눈감고 간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1941/05/31)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이 시를 일제강점기 시대에 지배세력에 저항하는 저항시의 프레임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너무 재미가 없습니다. 의미를 고정시키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냥 느껴 보는 거죠. 태양을 사모하고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아이들은 그렇습니다. 어른들에게는 당연한 태양이나 별을 아이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고 '와!!!'하는 감탄을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세상은 아직 신기한 곳입니다. 밤이 어두웠는데 눈감고..

시그리고시 2019.11.08

떨어지는 잎_릴케 "가을"

유투브로 들어보세요. ^^ 구독, 좋아요 꾹~~~ 가을 나뭇잎이 진다, 멀리에선 듯 잎이 진다, 하늘의 먼 정원들이 시들어 버린 듯이. 부정하는 몸짓으로 잎이 진다. 그리고 깊은 밤에는 무거운 지구가 다른 별들에서 떨어져 고독에 잠긴다. 우리들 모두가 떨어진다. 이 손이 떨어진다. 보라, 다른 것들을. 모두가 떨어진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이 있어, 이 낙하를 한없이 너그러이 두 손에 받아들인다. 가을에는 감수성이 예민해집니다. 제 생각에 날씨가 추워지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닙니다. 더운 것이나 추운 것이나 우리가 견디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분위기죠. 아마도 이 예민해지는 분위기에 가장 크게 일조하는 것이 낙엽일 것 같습니다. 떨어지는 잎, 그리고 이미 떨어져서 바닥을 쓸쓸하게 뒹굴고 있는 잎..

시그리고시 2019.11.07

신이 바람처럼_릴케 "신이 와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할 때까지"

신이 와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할 때까지 신이 와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의 힘을 스스로 밝히는 그런 신은 의미가 없다. 처음부터 너의 내부에서 신이 바람처럼 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너의 마음이 달아오르고,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을 때 신은 너의 마음속에서 창조를 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의 초기 시집에 있는 작품입니다. 이 시는 시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릴케의 짧은 설교처럼 보입니다. 이 시는 릴케가 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려 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릴케는 신이 존재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신이 스스로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를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기도하던 중에 그는 깨..

시그리고시 2019.11.06

사랑하면 바보 같은 시인 된다_하이네 "잔잔한 바닷가에" 외 두 편

잔잔한 바닷가에 잔잔한 바닷가에 밤이 숨어들었다 달빛이 구름 사이에서 새어 내리고 물결 속에선 속삭이는 소리 들린다. "저기 서 있는 저 사람, 바보인지 그렇잖으면 시인인지, 저렇게 슬픈 듯하면서도 즐거운 둣 또한 즐거운 듯하면서도 슬픈 듯하니." 그러나 달이 하늘에서 깔깔거리며 맑은 소리로 말을 건넨다 "사랑을 하면 바보도 시인이 될 수 있단다." 사랑의 불꽃 그대를 사랑하노라, 지금도 사랑하노라 세상이 무너져 내린다 해도 그 뒹구는 파편마다 내 사랑의 불꽃은 타오르리라 나의 노래는 나의 노래는 독(毒)에 젖어 있네 그도 그럴 수밖에 꽃피려는 내 생명에 그대가 바로 독을 풀어 넣었으니. 나의 노래는 독에 젖어 있네 그도 그럴 수밖에 내 가슴속에는 뱀들과 사랑하는 이, 바로 그대가 함께 있으니. '혁명시..

시그리고시 2019.11.05

그리움에 빠지다_백석 "바다"

바다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바다"는 백석이 그가 사랑했던 여인 김진향을 생각하면서 쓴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지꽃은 나팔꽃을 일컫는 말인데 나팔꽃에 나팔이 아니 나왔다고 하니 아마도 시인이 바닷가에 온 시기는 여름철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나팔꽃은 7~9월에 피는 꽃입니다. 이 시는 철 지난 바닷가의 적적한 분위기 속에서 바닷가를 걸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

시그리고시 2019.10.31

아찔한 사랑_김용택 "사랑이 다예요"

[책리뷰] 김용택 "사랑이 다예요" 시인 김용택의 사랑시 39편을 모아서 엮어낸 책입니다. 좋은 시만 모아서 만든 책이니까 내용은 당연히 좋고요. 김선형 화백이 그린 청화(파란색 그림)가 시의 옆에서 시를 더욱더 빛내 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 놀라운 특징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가격입니다. 2015년에 출간된 책인데 가격이 2900원입니다. 책에 글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술학과 교수님이 그리신 그림까지 있는데 이 정도 가격이면 정말 거저 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시를 보급하기 위한 출판사와 시인의 특단의 조치가 아니었나 짐작해 봅니다. 시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면 좋은데 현재 우리나라의 시들은 함부로 인용을 하면 안 됩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시인들이 시인저작권협회 같은 곳에..

시그리고시 2019.10.28

매력적인 이질감_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제가 요새 시를 좀 읽고 있는데요. 시를 평소보다 많이 읽으니까 이해하기 쉬운 시는 처음에는 좋은데 씹는 맛이 나지..

시그리고시 2019.10.26

아프면 한 번 잡솨봐_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1955년에 태어난 시인 도종환은 시인으로서 잘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국회의원이면서 문화체육부 장관을 역임한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시집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시인 도종환의 대표 작품을 모아서 송필용 화백의 그림과 함께 엮어낸 책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시는 워낙 유명해서 이 시의 전문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제목은 익숙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좀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시인이 언급하고 있는 나무와 꽃, 새 중 제가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였습니다. 예를 들어 "자작나무"라는 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추운 데서 자랐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맑지만 창백한 모습이었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꽃은 제대로 피우지 못하면서..

시그리고시 2019.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