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의 노트 32

[신학노트] 하나님의 형상_밀리오리 "기독교 조직신학 개론"

다니엘 밀리오리 "기독교조직신학 개론" p.253-257 다니엘 밀리오리의 은 조직신학의 입문서로 널리 사용되는 책입니다. 밀리오리는 조직신학에서 다루는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서 단순히 신학적 내용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기 때문에 공부하는 사람들이 더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 B, C라는 이론만 제시하면 그것을 공부하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당황스럽거든요.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밀리오리는 자신이 추천하는 방향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밀리오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다섯 가지로 설명합니다. 1.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신체가 하나님과 닮아 있다. 2.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이성 안에 존재한다. 3. 하나님..

신학자의 노트 2022.06.27

[신학노트] 현대 물리학과 신학의 관계_하이젠베르크 "물리와 철학" 11장을 기반으로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는 불확정성의 원리로 유명한 양자 물리학자입니다. 1932년에 양자물리학의 창시 등의 공을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 우라늄 계획의 실질적 지도자가 되었는데 그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원자폭탄 생산이 어렵다고 밝혀서 나치는 원자폭탄 개발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전후에도 계속 독일에 머무르면서 1946년부터 1970년까지 막스 플랑크 천체물리학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습니다. 1957년에는 독일의 핵무장을 반대하는 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이젠베르크는 "물리와 철학"이라는 얇은 책을 썼습니다. 이 외에도 저서가 몇 권 더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물리와 철학의 관계를 설명하고 ..

신학자의 노트 2021.06.01

[신학노트] 혼돈의 카오스_존 호트 "과학과 종교, 상생의 길을 가다" 7장을 기반으로

* 존 호트가 쓴 "과학과 종교, 상생의 길을 가다" Science & Religion의 7장 내용을 기반으로 카오스의 신학적 의미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혼돈의 카오스'는 같은 단어의 반복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물론 혼돈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는 카오스이지만 과학에서 말하는 카오스는 좀 특별합니다. 단순한 무질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자들은 무질서 속에서 나타나는 질서를 발견하고 그것을 카오스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카오스는 무질서 같은 질서, 혹은 질서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무질서를 의미합니다. 과학자들이 카오스 이론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이고 다른 하나는 혼돈 속에서 나타나는 질서입니다.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은 나..

신학자의 노트 2021.05.26

[신학노트] 언어는 실재에 참여한다_상징과 기호, 그리고 신화

언어는 실재에 참여합니다. 모호한 진술 같지만 실제 사례를 생각해 보면 금방 수긍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짜장면을 먹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짜장면을 먹을 때 그냥 아무 말 없이 먹는 것과 "맛있다"고 말하면서 먹는 것과는 다릅니다. 혹은 누군가로부터 "이 짜장면 진짜 맛있지?"라는 말을 들으면서 먹는 것과 그냥 먹는 것과는 다릅니다. 혹은 이런 말을 들으면서 먹으면 어떨까요? "이 짜장면의 면발이 너무 탱탱해서 마치 갓 잡아 올린 살아 있는 낙지의 다리를 씹는 것 같아." 이런 말을 들으면서 짜장면을 먹는 것과 아무런 말 없이 짜장면을 먹는 것과는 다릅니다. 똑같은 짜장면을 먹는 데도 말이죠. 기분과 느낌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만, 언어로 인해서 인간이 자신의 감각으로 느끼는 실재에 대한 느낌..

신학자의 노트 2021.03.15

[신학노트] 이신론이란 무엇인가?

이신론은 약한 신론이다 이신론은 약한 신론입니다. 반면에 기존에 있던 신론은 강한 신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음만 들어도 알 수 있습니다. 기존의 신론은 theism이고 이신론은 deism입니다. 뜻은 똑같습니다. 신에 대한 이론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theism은 발음이 세고 deism은 발음이 약하죠. theism은 사사건건 모든 일에 개입하는 신을 주장하는 이론이고 deism은 신이 있는 것은 인정하되 신이 모든 일에 개입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론이죠. 맥그래스에 따르면 이신론이라는 단어는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일부 영국의 사상가들이 가졌던 신론을 일컬을 때 사용했던 단어라고 합니다.(맥그래스, "과학과 종교", 48.) 18세기가 이성의 시대였기 때문에 우리말로 번역할 때 '이신..

신학자의 노트 2021.02.23

[신학노트] 과학과 종교의 관계_독립에서 시작하여 대화로

전투를 원하는 자들을 조심하라 과학의 종교의 관계는 적대적 관계가 되어선 안됩니다. 대립 관계, 갈등 관계, 전투 관계가 되어선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과 종교의 갈등을 부추기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그런 극단적인 사람들의 의도는 공동체의 유익이 아닙니다. 과학이 종교를 핍박하든지 혹은 그 반대로 종교가 과학을 핍박해서 그 결과로 둘 중에 하나가 괴멸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가정을 해 봅시다. 그렇다면 공동체 혹은 인류의 번영이 이루어질까요? 아닙니다. 세대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 남성과 여성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는 세력, 지역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세력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십시오. 그래서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고 어느 한 편이 다른 쪽을 완전히 짓밟아 버린다면 어..

신학자의 노트 2021.02.21

[신학노트]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기본자세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경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 다음으로 가장 많이 쓰는 말일 것 같습니다. 사랑이 설명하기 쉬운 단어는 아닌데 그래도 친숙한 단어이고 대충 느낌이 오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늘 하는 것이죠. 사랑이란. 그런데 경외는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표현 외에 다른 데서 경외라는 말을 쓰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경외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는 야레(יָרֵא)입니다. 기본 의미는 '두려워하다', '존경하다'의 의미입니다. 대표적인 성경 구절은 잠언 9장 10절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이를 아는 것이 슬기의 근본이다.” (잠 9:10, 새번역) '경외하다'를 뜻하는 헬..

신학자의 노트 2021.02.05

[신학노트]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인가?

(창 1:26-27, 개정)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이 창조되었다고 하니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사람이 다른 존재와 다른 특별함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을 간단하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일단 창세기 1장 26절을 보면 형상과 모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히브리어로 형상은 첼렘, 모양은 데무트입니다. 뜻은 한국..

신학자의 노트 2021.01.06

[웨슬리신학] 구원의 직접 증거가 있을까요?_성령의 증거 II

존 웨슬리, "성령의 증거 II", 웨슬리설교전집 1권 (대한기독교서회 출판) 죽어 봐야 구원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고요? 아닙니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 "성령의 증거 II"에서 구원의 직접적인 증거가 있다고 말합니다. 웨슬리의 "성령의 증거"라는 제목으로 이미 1746년에 설교를 작성하고 출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제목으로 1767년에 설교를 했습니다. 웨슬리가 1703년에 태어났으니까 예순네 살에 한 설교입니다. 처음 "성령의 증거"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을 때도 마흔세 살이었으니까 젊은 나이는 아니었는데요. 40대에 한 성령의 증거 설교와 60대에 한 성령의 증거 설교는 좀 다릅니다. 일단 나중에 한 설교가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가 잘 되어 있고요. 그리고 더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신학자의 노트 2020.11.10

[웨슬리신학] "값없이 주시는 은총"_하나님은 사랑이래니께

값없이 주시는 은총은 웨슬리가 36살 되던 해에 작성하여 출판한 설교입니다. 1739년에 출판한 설교인데 올더스게이트에서 회심했을 당시가 1738년 5월 24일이니까 회심한 이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작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웨슬리 설교 전집에 나온 해설을 보면 이 설교는 상당히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던 것을 웨슬리도 알고 주변 사람들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이 설교에서 예정론 교리를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칼빈주의자 즉 장로교 쪽 사람들과 마찰이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웨슬리가 아직 젊었기 때문에 좀 더 용기 있게 이 설교를 출판한 것이 아닌지 추측해 봅니다. 그리고 설교를 읽어 보면 웨슬리가 화가 난 듯한 느낌을 주는 문장이 꽤 있습니..

신학자의 노트 2020.10.09

[웨슬리신학] 믿음이란 무엇인가?_그리스도를 발견하다

존 웨슬리는 18세기의 사람입니다. 1703년에 태어나서 1791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보통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 출발점을 슐라이어마허로 보기 때문에 아마도 웨슬리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 시작되기 바로 전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슐라이어마허는 1768년에 태어나서 1834년에 죽었습니다. 웨슬리가 살아 있을 때는 슐라이어마허가 학문적 성과를 내기 이전이었으니까 웨슬리는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로 목회와 선교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그 이전의 신학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따라서 웨슬리의 신학은 현대 신학 이전 신학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믿음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구원을 받고 싶었는데요..

신학자의 노트 2020.08.24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하고 믿어야 하는 이유

삼위일체 교리는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확실히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삼위일체 교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결국 성공할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 교리를 열심히 이해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결국 "만약 무엇인가를 완전히 파악했다면, 그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삼위일체는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어떠한 존재도 신과 같은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설명하려는 삼위일체는 정확히 그 지점까지는 가지 못하고 그 주위만을 맴돌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해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유일신 하나님과 다른 의미를..

신학자의 노트 2019.11.27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왜 서로 혐오할까?

참고서적: 1. 김득중 "복음서의 비유들" (서울: 컨콜디아사, 1987), 238. 2. 위의 책에서 인용한 책: Stein, Parables, pp. 76-77.; J. M. Ford. My Enemy is My Guest: Jesus and Violence in Luke, pp. 80-83. 첫째, 사마리아인은 혼혈이 많았습니다. 기원전 8세기에 북이스라엘이 멸망하면서 사마리아에 살던 많은 사람이 아시리아로 포로로 끌려갔고 또한 아시리아 사람들이 사마리아로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문화와 종교도 섞이게 되었고 또한 사마리아에 살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결혼하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혼혈이 많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남쪽 유대 왕국의 사람들은 북쪽의 사마리아인들이 혼혈이 되었다는 이유로 배척..

신학자의 노트 2019.11.20

'그리스도'의 의미

왜 '예수 메시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일까요? 그리스도는 헬라어입니다. 히브리어 메시아를 헬라어로 번역한 말이 그리스도입니다. 의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기름부음을 받는 사람은 크게 왕, 선지자, 제사장 이렇게 세 종류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주로 왕에게 사용되었던 말입니다. 기름부음을 받는 것은 일종의 의식이었습니다. 이때 사용되었던 기름은 올리브기름이었고 기름으로 문지르거나 머리 위에서 부어서 흘러내리게 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특별하게 선택받아서 사용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리하면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고 하나님으로부터 공인된 왕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선택받은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을 '메시아'(기름부음 받은..

신학자의 노트 2019.11.16

이성,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어?" 우리가 많이 듣고 많이 쓰는 말입니다. 이성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다소 긍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이성'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만큼 이성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것이고 인간이라면 꼭 이성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배우던 것과 실제로 살아갈 때와는 다릅니다. 학교에서 배울 때는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고 그래야 좋은 결과에 도달한다고 배우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아마도 정치의 영역이 제일 심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분명히 이성적으로는 내세울 수 없는 주장을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막 던질 때가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신학자의 노트 2019.11.15

슐라이어마허의 "절대 의존의 감정"이란?

슐라이어마허(1768~1834)는 종교를 "절대 의존의 감정"(Feeling of Absolute Dependence)이라고 했습니다. 유명한 말입니다. 믿음이나 신앙을 "절대 의존의 감정"이라고 표현한 것이죠. 20세기에 들어서서 슐라이어마허의 신앙에 대한 이런 정의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저는 슐라이어마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슐라이어마허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말 "절대 의존의 감정" 때문이었습니다. 이 말은 여러 가지 부정적인 느낌을 전달합니다. 첫째, 의존이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20세기 초에 실존주의가 유행하면서 인간은 홀로 서기를 해야 한다는 그런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죠. 타인의 누군가..

신학자의 노트 2019.11.13

신학에서 성서의 역할

신학의 자료는 무엇보다도 성서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는 평생 한 책의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만큼 그는 성서를 사랑하고 성서를 더 알기 위해 노력하고 성서가 가르치는 바대로 살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신학의 자료가 오직 성서일까요? 다른 자료는 모두 배척해야 할까요? 성서가 최종적인 권위를 가진 것일까요? 성서가 말하는 것은 다른 의견을 제시할 것도 없이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요? 폴 틸리히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성서가 신학의 유일한 자료라는 주장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틸리히, 조직신학 I, 62-64) 1. '하나님의 말씀' 혹은 '계시의 행위'가 조직신학의 자료라는 전제로 판단한다면 '하나님의 말씀' 또는 '계시의 행위'에 성서에서 나타났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

신학자의 노트 2019.11.12

[신학노트] 대략적인 유대인의 역사

BC 17세기 경: 족장 시대 (아브라함, 야곱, 요셉) BC 13세기 경: 출애굽 (Exodus) BC 11세기 경: 이스라엘 왕국 건국 BC 930년 경: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단 BC 722년: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게 멸망당함 아시리아의 정책으로 사마리아 지방에 타민족이 이주하여 살게 되면서 수많은 혼혈이 태어남.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며 멸시하기 시작함. BC 597년 (??? ): 강제로 바빌론으로 이주, 강제이주는 여러 번 있었다고 함 BC 586년: 남유다가 신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함,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됨 BC 538-515년: 바빌론으로부터 1차 귀환, 성전 재건 BC 322년: 알렉산더에게 정복당함, , 그리스의 지배 BC 167-164년: ..

신학자의 노트 2019.10.22

[신학노트] 무에서 창조 (creatio ex nihilo)

먼저 "무로부터의 창조", "유로부터의 창조"라는 말 자체에 대해 한 마디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로부터의'라는 조사는 일본말 표현에서 온 것입니다. 우리말로 할 때는 매우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실제로 발음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로부터의 창조", "유로부터의 창조"보다는 '무에서 창조', '유에서 창조'를 쓰는 것이 발음하기도 좋고 원래뜻에서 벗어나지도 않습니다. 무로부터의 창조의 반대는 유로부터의 창조입니다. 유로부터의 창조 개념에 대한 반발로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가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기존의 존재하는 물질로부터 창조되었다는 개념은 그리스 철학의 개념입니다. 플라톤은 세계가 선재하는 물질로부터 만들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악이나 죄는 질서의 부족으로 이해되었습..

신학자의 노트 2019.08.19

[신학노트]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 6:33, 개정)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아마 기독교인이 가장 많이 듣는 성경 구절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인데요. 노래도 있습니다. 노래로 지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말씀이라는 뜻도 되겠지요. 그런데 많이들 오해되고 있는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일단, 궁금한 것은 두 가지일 수 있습니다. 첫째, 그의 나라, 둘째 그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지만, 이 글에서는 "그의 의"에 대해서만 다루겠습니다. "그의 의"가 헷갈리는 이유는 문맥상 '의'가 '뜻'으로 이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도 이 말씀을 듣거나 혹은 이 말씀으로 되어 있는 노래를 부를..

신학자의 노트 2019.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