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책]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_진화론에 대한 정확한 설명

설왕은 2023. 1. 6. 16:52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다윈 이후"는 다윈의 이론을 제대로 설명한 책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여러 사건들을 진화론의 관점에서 해석한 에세이를 담고 있다. 굴드는 이 책에 있는 온갖 이질적인 에세이들은 다윈의 생물관을 탐색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11) 이 책에 나온 여러 글은 1974년부터 1977년까지 "이러한 생물관"이라는 제목으로 <자연사> Natural History Magazine에 연재한 칼럼을 모아 놓은 것이다. 오래전 글이어서 재미없을 것 같지만 굴드는 어려운 이론을 재밌게 하는 재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글재주는 믿어도 괜찮다. 

 

굴드는 이 책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다윈의 진화론은 심각하게 오해되어 왔다. 특별히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론이라고 굴드는 지적한다. 굴드는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을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설명한다. 

 

1. 생물들은 서로 다르고, 이러한 변이는 (적어도 일부는) 자손들에게 유전된다.
2. 생물들은 살아남을 수 있는 수보다 더 많은 자손을 낳는다.
3. 평균적으로 환경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가장 강하게 변화한 자손이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릴 수 있다. 따라서 환경이 선호하는 변이가 자연선택을 통해서 각 개체군에 축적된다. (8)

 

다윈의 진화론이 이렇게 단순한 이론이지만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이 이론이 가지고 있는 철학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굴드는 주장한다. 다윈의 이론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연의 역사에 대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진보에 대한 믿음을 버려야 하는데, 그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진보에 대한 믿음을 반박하는 이론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믿음을 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굴드는 오랫동안 다윈의 이론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덕분에 이렇게 두꺼운 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굴드의 글은 기본에 아주 충실한 글이다.

 

1744년 스위스의 생물학자 알브레히트 폰 할러는, 난자 또는 정자 안에 담긴 채로 미리 형태를 갖추고 있는 이른바 전성의 축소형 개체로부터 배가 자라난다는 이론을 설명하는 데 진화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라틴어 evolovere가 '펼치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할러가 용어를 아주 신중하게 골랐음을 알 수 있다. 사실 그 자그마한 축소형 개체들은 배의 발생 과정을 거치면서 처음의 비좁은 공간에서부터 펼쳐져서 그 크기를 점차 키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42-43)

 

 

굴드는 다윈의 진화론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진화라는 단어가 어떤 어원을 가지고 있고 누가 처음 사용했는지 밝히고 있다. 아주 기본적인 내용인데 우리는 이런 내용이 필요하다. 사실 다윈의 진화론은 다윈 스스로도 장황하고 모호하게 설명해서 정확한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다. 1859년이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다윈이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서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이후로도 진화론에 대하여 상당히 감정적인 주장과 반박이 이어지면서 진화론의 핵심 주장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었다. 굴드는 진화론에 대한 전문가이다. 진화론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철학적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짚어내고 있다. 따라서 진화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굴드의 책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특별히 이 책은 잡지에 연재된 칼럼들을 모아 놓은 것이기 때문에 쉽고 흥미로운 글로 이루어져 있다. 

 

다윈은 경계하는 의미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생물의 구조를 표현할 때 절대로 '고등'이나 '하등'이라는 말을 하지 않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가령 아메바가 인간 못지않게 자기 환경에 훌륭히 적응할 수 있다면 우리 자신을 가리켜서 고등 생물이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44)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진화론의 아버지는, 생물의 변화는 생물과 주위 환경 사이에서 적응성이 증가되는 방향으로 인도되는 것이지 구조적인 복잡성이나 이질성의 증가에 의해 규정되는 추상적인 진보의 이념은 아니라고 인식해서, 절대로 고등이니 하등이니 하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열심히 주장하고 있었다. (46)

 

다윈주의의 본질은 자연 선택이 적자를 창조한다는 주장에 담겨 있다. (57)

 

다윈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업적을 남겼다. 그는 진화가 실제로 일어났음을 과학계에 확신시켰고, 그 메커니즘으로 자연선택 이론을 제시했다.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진화를 진보와 동일시했으므로 다윈의 첫 번째 주장이 동시대인들의 구미에 훨씬 잘 맞았다는 사실을 나는 기꺼이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다윈은 자신의 생전에 두 번째 주장을 인정받는 데에는 실패했다. 자연선택 이론은 1940년대에 와서야 승리를 거뒀다. (58)

 

 

인용한 부분이 모두 진화론을 잘 설명하고 있는 문장들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생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등한 생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종은 그 시대에 살아남기에 적합한 종이었을 뿐 원시적이거나 하등한 생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다윈의 주장을 굴드가 잘 설명하고 있다. 굴드는 자연선택 이론이 인정을 받은 것은 1940년대에 와서야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그만큼 다윈의 이론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론이다. 굴드는 6억 년 전에 있었던 캄브리아 시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6억 년 전에 다양한 다세포 생물이 발생했는데 그 당시의 화석을 보면 지금의 생물 분류로 넣을 수 없는 다양한 생물이 관찰된다. 이런 관점에서도 굴드는 생물의 진화 방향이 하등에서 고등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재밌는 에세이가 많이 있다. 제목만 보고 마음에 드는 글을 골라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5장 "인간과 다른 유인원 친척"에서 유인원이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보다 최근에 들어서는 언어 사용과 개념화를 중심으로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그것들이야말로 인간과 침팬지의 잠재적인 차이를 입증하는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다. 침팬지에게 말을 가르치려던 초기의 실험들은 분명한 실패로 끝났고 단지 몇 마디의 끙끙거림과 한 마디쯤 되는 보잘것없는 어휘를 익히게 하는 데에 그쳤다. 일부 학자들은 그러한 현상이 뇌 구조의 결함을 반영한다고 결론 내렸지만, 이는 지나치게 단순하고 신중하지 못한 설명으로 보인다. (67)

 

 

침팬지가 인간이 하는 말과 비슷한 언어 구사 능력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그리고 침팬지에게 말을 가르치려고 했던 과학자들의 시도에도 박수를 보낸다. 이들에게는 고정관념이라는 것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재밌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 그래도 가장 가치 있는 부분은 1부 다윈주의이다. 40쪽 정도의 분량이지만 다윈의 진화론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