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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찰스 다윈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_아직도 다윈에게는 배울 것이 많다

설왕은 2022. 12. 30. 11:39

다윈의 "종의 기원"은 1859년에 나온 책이다. "종의 기원"은 인류의 역사를 바꾼 책이다. 다윈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비슷한 책을 냈을 것 같기는 한데 19세기에 인류가 얻는 가장 큰 지식은 진화론이 아닐까 싶다. 그 정도로 "종의 기원"은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책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인간이 하등의 유인원에서 진화되었다는 주장을 직접 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는 대단히 조심스럽게 글을 썼다. 물론 "종의 기원"은 인간이 인간이 아닌 하등 동물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이미 간접적으로 주장했다. 인간이 하등 동물에서 진화되었다는 주장은 "종의 기원"이 발표된 지 12년 후에 출판된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1871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주 정확하게 주장하고 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출판사에서 나온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은 다윈이 출판한 같은 제목의 책에서 6.7%만 발췌해서 엮은 책이다. 6.7%만 발췌했지만 책은 180쪽 정도 되고 한 쪽당 내용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용이 아주 적은 것도 아니다. 만약 6.7%가 아니라 100%가 되는 책이었다면 과연 읽을 엄두를 내었을까 싶기도 하다. 일부분만 발췌해서 얇게 만들었기 찬찬히 읽어볼 수 있었다. "종의 기원"도 다 읽어보고 싶기는 한데 너무 내용이 많아서 일부분만 골라서 읽고는 했는데 아예 책을 이렇게 만들어 주니 전체 내용을 대략 훑어보는 효과를 내는 것 같다. 신기하게 발췌된 책이지만 대충 다 연결이 된다. 다윈은 인간이 하등 동물에서 진화되었다고 명시적으로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선천적인 편견은 물론이고 우리의 조상이 반신반인에서 유래했다고 생각하는 오만불손함이 우리에게 숨어 있기 때문이다. (14-15)

 

다윈은 인간이 반신반인에서 왔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불손함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생각에 꼭 그렇지많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다윈은 인간 종이 하등 동물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한다. 그리고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일종의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 같다. "종의 기원"에서는 매우 조심스러웠지만 연구를 거듭하면서 확신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질타하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 책은 인간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준다. 재미있는 정보도 있고 유익한 정보도 있다. 예를 들어 다윈은 인간의 다리 길이는 변이가 가장 심한 부분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재밌는 주장이다. 인간과 유인원의 발성기관은 매우 유사한데 인간은 분절 언어를 발음할 수 있도록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했다. 그 말은 유인원도 말을 할 수 있지만 인간이 훨씬 더 복잡한 말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말이라는 것은 뜻을 가진 소리인데 동물들도 여러 가지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동물들을 관찰한 학자들은 유인원이 간단한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 내기도 했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침팬지가 말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인원이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말의 수준은 인간의 말과 비할 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푸셰의 주장을 소개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푸셰는 고등동물일수록 본능보다는 지능에 따른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오히려 본능이 뛰어난 생물이 지능도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곤충 중에서도 본능이 매우 뛰어난 곤충이 지능이 높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척추동물 계열에서 어류나 양서류처럼 지능이 낮은 동물은 복잡한 본능을 갖고 있지 않다. 포유류 중에서도 비비처럼 본능이 뛰어난 동물은 지능이 높다. (26)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대단히 일리가 있는 주장으로 보인다. 인간에게도 정말 다양한 본능이 존재하지 않은가? 

 

다윈은 미개인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아마 여기저기 오지를 탐험하면서 만났던 미개인들에 대한 경험에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본다. 미개인들이 도덕성이 낮은 이유에 대해서 다윈은 그들이 생각을 조절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39) 나는 최근에 "아바타: 물의 길"을 봤는데 숲종족인 설리네 가족이 물종족 사이에 머물기 위해서 그들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부족 간의 충돌이 일어나는 장면인데 다윈이 말하는 미개인의 특징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바타 "물의 길"

미개인들이 도덕성이 낮은 주요 요인은 첫째, 그들이 갖고 있는 공감이 자기 부족에만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일개 부족의 안위만 생각하므로 자애와 같은 여러 덕목을 갖출 만큼 사고력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미개인은 절제와 순결성의 결여로 야기되는 복합적인 죄악을 느끼지 못한다. 셋째는 자제력의 부족이다. 자제력이 오랜 시간에 걸친 습성을 통해서 강화되지 못했으므로 유전이나 교육, 종교도 큰 영향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39)

 

숲의 종족이든 물의 종족이든 상당히 배타적인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바타가 생각하는 인류의 미래란 인류의 과거에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류의 과거는 자연 친화적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자연은 그들에게는 숭배의 대상이 될 정도로 그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영화] 아바타: 물의 길과 관련한 블로그"를 다시 올리는 것으로 하고.

 

이 책을 통해서 얻게 된 가장 큰 유익은 '성 선택'이라는 용어이다. 그리고 이 이론을 다윈이 발표했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 '성 선택'은 다윈 이후의 진화론자들이 만든 이론이 아니라 진화론의 원저자가 자연선택을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이론으로 제시한 것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발표하고 난 이후 12년 동안 자신의 이론이 가진 단점을 보완할 만한 이론을 찾았다. 그것이 바로 성 선택 이론이다. 자연선택 이론에 따르면 절대로 설명할 수 없는 진화의 방향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론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거추장스러운 뿔이 난 수사슴의 경우에 뿔은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육식 동물을 피해 달아날 때나 그들의 눈을 피해 숨을 때도 뿔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수사슴의 뿔은 점점 더 발달했을까? 그것은 바로 수사슴이 암사슴을 차지하기 위해서 수사슴끼리 경쟁을 벌일 때 뿔이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짝 고르기 과정에 필요한 진화의 방향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식의 설명을 처음 듣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것 역시 자연선택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슴의 뿔이나 화려한 색깔을 가진 조류의 진화가 자연선택에 이루어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성 선택'이나 '짝 고르기 진화'라는 말을 쓰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성 선택은 유기체의 주체적 선택에 의한 진화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아직도 다윈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윈의 책을 읽는 이유는 그만큼 인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균형을 갖춘 시각으로 글을 쓰려고 하는 과학자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가 쓴 글을 보면 독자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자가 가진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토착지의 미개인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혈관에 비천한 생물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크게 수치심을 느끼진 않을 것이다. 나 스스로도 적을 괴롭히며 즐거워하고 엄청난 희생물을 바치고 양심의 가책도 없이 유아를 살해하고, 아내를 노예처럼 취급하고 예절이라고는 전혀 없으며 천박한 미신에 사로잡힌 미개인에게서 내가 유래했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보다는 주인의 목숨을 구하려고 무서운 적에게 당당히 맞선 영웅적인 작은 원숭이, 산에서 내려와서 사나운 개에게서 자신의 어린 동료를 구해 주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사라진 늙은 개코원숭이에게서 내가 유래했기를 바란다. 

인간은 자신이 생물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서 있다는 자부심을, 자기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니지만, 버려야 할 것이다.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낮은 곳에서 출발해 지금의 높은 자리에 올라왔다고 여길 때, 먼 미래에는 지금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137-138)

 

독자가 가질 걱정은 하등 동물에서 인간이 유래되었다면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갉아먹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인간이 한낱 동물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인간을 본능에 따라 사는 동물 같은 존재로 격하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방식이 옳은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지만 이런 식의 설득이 일리가 있기는 하다. 즉, 아무리 인간이라고 해도 인간답지 않은 인간이 있고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존엄성을 가지고 있는 생물이 있지 않나 하고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답지 않는 인간에게 유래된 것이 좋은가 아니면 도덕성을 가지고 있는 듯한 생물에서 유래된 것이 좋은가라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래, 하고 질문하고 있다. 좀 더 좋게 해석해주면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이라는 조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생각과 도덕성을 가지는 것이 인간이 더 인간다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다윈에 따르면, 생각과 도덕성은 꼭 인간만이 가진 것은 아니다. 질문은 이런 것이다.

 

"생각과 도덕성이 없는 미개인의 후손이 될래, 아니면 생각과 도덕성이 있는 동물의 후손이 될래?"

 

 

다윈의 대답은 후자이다.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 되게 만드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직도 다윈에게는 배울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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