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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재발명된 공산주의를 꿈꾸며_슬라보예 지젝 "팬데믹 패닉"

설왕은 2023. 8. 12. 22:50

슬라보예 지젝/강우성 옮김 "팬데믹 패닉" (서울: 북하우스, 2020)

 

 

https://youtu.be/lKcX47kvgik

 

슬라보예 지젝은 참 할 말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지젝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 신학자들보다 성경의 내용을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는 점도 특이하고요. 이 책은 코로나19가 인간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그 의미를 파악하려는 책입니다. 사실 코로나19만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우리가 심각하고 인식하고 있는 기후 변화도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고 극적입니다. 지구가 인류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렇게 살면 조만간 다 죽는다"입니다. 코로나19가 주는 메시지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바이러스 덕분에 우리는 진정한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는 뉴에이지류 정신주의자들의 명상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진짜 싸움은 어떤 사회 형태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라는 신세계질서를 대체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질 터다. (152-153)

 

지젝이 이 책을 통해서 주장하는 바는 재발명된 공산주의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대체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세기에 시도된 공산주의 실험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같은 형태의 공산주의가 자유주의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을 수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시대가 변했으니까요. 지젝은 유물론자이고 공산주의를 참 좋아합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은 마르크스의 잘 알려진 슬로건, "누구나 능력에 따라 (일하고) 누구나 필요에 따라 (얻는다)"에 담겨 있는 그런 뜻의 공산주의와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 (14-15)

 

저도 공산주의라면 멈칫하게 되지만 가끔 마르크스의 말을 보면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위의 말도 마찬가지로 정말 이상적인 슬로건입니다. 누구나 능력에 따라 일할 수 있고 누구나 필요에 따라 얻을 수 있다면 좋은 세상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러려면 사람들에게 지나친 욕망이 있어야 할 텐데요. 그 욕망을 마음대로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겠지요. 사실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서는 어느 한 개인이 조심한다고 될 일은 아니고 전체 국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도 지젝은 공산주의에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중국이 코로나에 가장 잘 대처한 나라라고 평가합니다. 

 

현재 상태로만 보면 광범위하게 디지털화된 사회적 통제 시스템을 갖춘 중국이 이 처참한 감염병에 대처하는 데 가장 잘 준비된 국가였다. (95)

 

지젝이 공산주의가 팬데믹의 해결책이 될 거라고 주장하는데, 거부감과 의문이 동시에 듭니다. 인간의 자유를 극도로 억압했던 공산주의 정권이 팬데믹의 위기로부터 인류를 구원해내겠다고 선포하며 권력을 쥐려 한다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유를 팔아먹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반항할 것 같습니다. 공산주의가 저지른 만행을 생각할 때, 공산주의가 아무리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최적화된 정치 체제라고 하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요. 또한 의문도 듭니다. 공산주의는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만을 중요한 가치로 둘 것인가, 라는 의문이 여전합니다. 그것만으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100년 간 충분히 배웠을 것 같은데 말이죠.

 

공산주의, 또는 새로운 공산주의가 세상을 구원해 낼 것이라는 지젝의 주장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그가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 것 같습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연대도 느슨한 연대가 아닌 강력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지젝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일당독재를 통해 강력한 연대를 실현할 수 있는 체제입니다. 하지만 지젝이 말하는 연대는 그런 연대보다 더 강력한 연대를 의미합니다. 공산주의는 국가의 경계를 넘지 못하는데요. 21세기에 인류에게 닥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강력한 연대가 필요할 것입니다. 만약에 그것을 공산주의라고 부른다면 세계 공산주의와 같은 것으로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젝은 그 정도로 강력한 연대가 있어야만 인류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꿔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새로운 벽을 쌓고 격리를 강화하는 고립만으로는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을 것이다. 조건 없는 전면적 연대와 전 지구적으로 조율된 대응이 필요하며, 한때 공산주의라 불렸던 것의 새로운 형태가 요구된다. (76)

 

사실 지젝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 체제에 대해서 그 뿌리부터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근대국가는 16세기에 유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근대국가가 출현할 때 사람들에게 약속했던 것은 그들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정부에게 양도하고 국가는 폭력이라는 강제 수단을 합법적으로 보유하여 그것을 통해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국가가 폭력 수단을 가짐으로써 전쟁이 확대되기도 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국가는 대체로 그 약속을 지켰고 또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폭력이라는 수단이 괜찮아 보였죠. 그런데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망쳐 놓았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국가가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시민들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죠. 최첨단의 전투기를 수천 대 보유하고 있어도 핵폭탄과 항공모함을 가지고 있어도 바이러스로부터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낼 수 없습니다. 

 

국가를 책임진 사람들이 공황에 빠진 까닭은 자신들이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국민인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무능이 지금 발가벗겨져 있다. (148)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군사력 경쟁을 할 일이 아닙니다. 폭력으로 인간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면 무엇으로 가능할 수 있을까요? 정확하게 그 방법을 제시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한 번도 풀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문제이기 때문에 새로운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지젝은 그 해결책에 포함되어야 할 철학이 바로 "강력한 연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젝은 바이러스가 우리의 적도 아니고 신의 심판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고 감수해야 하는 것은 생명의 하부층위, 즉 죽지 않고, 어리석으리만치 반복하며, 유성생식을 하지 못하는 바이러스 생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하부층위는 항상 거기에 있어왔고, 어두운 그림자처럼 늘 우리와 함께 존재하면서 우리의 생존 자체에 위협을 가하고, 가장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터져버릴 것이다. 심지어 좀 더 일반적 차원에서 이 바이러스성 감염병은 우리에게 우리 삶의 궁극적 우연성과 무의미를 상기시켜주기도 한다. 아무리 웅대한 정신적 건축물을 우리 인류가 세운다 한들, 한갓 바이러스나 소행성 같은 망할 놈의 자연적 우연성에 의해 모조리 끝장날 수 있다. (70-71)

 

유물론자다운 주장입니다. 일부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의미한 바이러스의 변이와 번식에 대항하여 지젝은 국가 체제의 유의미한 변화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강력한 연대라는 혁명적 변화라는 유의미한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인류도 그리고 지젝도 무의미한 존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지젝도 무의미한 존재이고 인류도 무의미한 존재들이라면 우리의 생존을 위해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겠죠. 

 

지젝의 말대로 인류는 새로운 생존 방법을 찾아서 그것을 실현해야 할 순간에 이른 것 같습니다. 지젝은 그것을 재발명된 공산주의라고 부르고 있지만, 폭력을 멈추고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체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저는 공산주의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는 연대는 강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폭력성이 강한 체제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어렵네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슬라보예 지젝의 "팬데믹 패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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