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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_우리 잘 살고 있는 걸까?

설왕은 2023. 8. 18. 09:00

피츠제럴드가 쓴 "위대한 개츠비"는 제목에 들어간 위대한great이라는 단어 덕분인지 위대한 소설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나면 두 가지 의문이 들게 마련이다. 첫째는, 개츠비가 왜 위대하지?, 라는 질문이고, 둘째는 왜 "위대한 개츠비"가 위대한 소설이지?, 라는 질문이다. 첫 번째 질문도 대답하기 어렵고 두 번째 질문도 쉽지 않다. 보통 사람들이 읽기에는 둘 다 납득할 수 없다. 개츠비고 위대하지 않고 이 소설도 그리 위대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랬는지 1925년에 출판된 "위대한 개츠비"는 출판 당시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이전에 출판에 피츠제럴드의 작품은 모두 다 성공했는데 "위대한 개츠비"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독자들이 수긍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많은 사람이 "위대한 개츠비"는 불법으로 일확천금의 돈을 모든 졸부가 누명을 쓰고 총 맞아 죽는 이야기 정도라고 이해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개츠비가 위대하다고 동의할 수 없으니 제목도 잘못 지은 것이고 제목도 잘못 지은 이런 소설이 위대한 소설일 리가 없다는 것이 초반 분위기였으리라...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에 군인들에게 보급된 "위대한 개츠비"는 그들에게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되었고 새롭게 평가받았다. 지금은 "위대한 개츠비"는 당연히 위대한 소설로 분류된다. 뉴욕 랜덤하우스 편집위원회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영어 소설 2위가 바로 "위대한 개츠비"다. 1위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타임"이 선정한 현대 100대 영문 소설로도 선정되었고, 미국대학위원회 선정 SAT 추천 도서이며, "뉴스위크"가 뽑은 100대 명저 중에 하나이다. 이 정도면 "위대한 개츠비"의 위대함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거두어들이는 것이 맞다. 그런 의심의 눈초리를 계속 보냈다가는 좋은 책을 보는 안목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테니까. 일단 믿음을 가지고 읽어 봐야 하는 책이다. 

 

* 요약 ( 줄거리+인용)

F. 스콧 피츠제럴드/김욱동 옮김 (민음사-세계문학전집 75, 2003)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마디 해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다.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 않다는 걸 말이다.” (9)

 

 


나의 이름은 ‘닉 캐러웨이’다. 아버지의 조언 덕분에 나는 늘 사람들에게 관대한 자세로 대할 수 있었다. 우리 집안은 미국 중서부 도시의 삼 대에 걸친 부유한 집안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나는 전쟁 후에 고향에 돌아와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다. 중서부 지방은 세계의 중심지가 아닌 변두리가 되어 버린 느낌을 받은 나는 동부에 가서 증권업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시내에 집을 구하는 것이 일하는 데는 좋겠지만 시골을 막 떠나온 나는 통근할 수 있는 웨스트에그라는 시내 외곽 지역에 작은 집을 빌렸다. 웨스트에그의 맞은편에는 이스트에그라는 지역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상류 사회의 하얀 저택들이 즐비했다. 그곳에는 톰 뷰캐넌 부부가 살고 있었다. 톰은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였고 그의 부인 데이지는 나의 먼 친척 여동생뻘이었다. 톰은 대학 시절 꽤 훌륭했던 풋볼 선수였고 집안이 굉장히 부유했다. 데이지는 예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고 그녀의 음성에는 좀처럼 잊기 힘든 어떤 흥분이 깃들어 있어서 많은 남자의 사랑을 받았다. 


뷰캐넌 부부는 어울리는 한 쌍이었고 딸도 있었지만 톰에게는 애인이 있었고 이는 비밀이 아닌 화젯거리였다. 어느 일요일 오후에 톰은 자신의 애인을 소개해 주겠다며 뉴욕 근교에 있는 자동차 정비소로 나를 끌고 갔다. 정비소 주인은 생기가 없어 보이는 윌슨이라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내 머틀이 톰의 애인이었다. 나와 톰과 머틀은 머틀의 여동생이 사는 아파트에 가서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톰과 머틀이 서로 애인 관계라는 사실은 데이지도 알고 있었다. 


이웃집에는 여름 내내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집의 주인은 제이 개츠비라는 사람이었고 그 집에는 날마다 호화로운 파티가 열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파티에 초대받지 않고 그냥 참석했지만 나는 정식으로 초대를 받았다. 파티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주인을 찾으려고 했지만 사람들은 주인의 동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나는 개츠비를 만났다. 나는 그가 개츠비인줄 몰랐다가 알게 되어서 당황하자 개츠비는 자신이 주인 노릇을 제대로 못했다고 말하며 나를 보고 웃었다. 

 

그는 사려 깊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사려 이상을 담은 미소를 지었다. 영원히 변치 않을 듯한 확신을 내비치는, 평생 가도 네댓 번밖에는 만날 수 없는 미소였다. 잠시 동안 영원한 세계를 대면한—또는 대면한 듯한—미소였고, 또한 당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으며 당신에게 온 정신을 쏟겠다고 맹세하는 듯한 미소였다. 당신이 이해받고 싶은 만큼 당신을 이해하고 있고, 당신이 스스로를 믿는 만큼 당신을 믿고 있으며, 당신이 전달하고 싶어 하는 최대한 호의적인 인상을 분명히 전달받았다고 말해 주는 미소였다. 바로 그 순간 그 미소는 사라졌다. (73)

 


사람들은 개츠비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바가 별로 없었다. 옥스퍼드 대학교 출신이라는 말이 있었고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었다. 개츠비를 알고 난 이후로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에 대해 더 알아낸 사실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개츠비가 나에게 자기 인생 얘기를 꺼냈다. 개츠비는 자신이 중서부 부잣집 출신이라고 말하며 옥스퍼드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족의 모두 죽는 바람에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았다고 했다. 


나는 나중에 조던 베이커로부터 개츠비와 데이지 사이에 있었던 일을 들었다. 개츠비는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전쟁에 장교로 참전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데이지와 사랑에 빠졌다. 데이지는 해외로 가는 개츠비를 전송하려고 뉴욕에 가려고 했다가 어머니에게 들켜 제지당했고 그 이후에는 군인과 사귀지 않았다. 세계대전에 휴전에 들어가자 사교계에 데뷔한 데이지는 톰 뷰캐넌과 결혼하기로 했다. 그런데 결혼식 피로연이 열리기 삼십 분 전에 데이지는 한 손에 편지를 들고 다른 한 속에는 백포도주 병을 쥐고 곤드레만드레 취해 있었다. 데이지는 자신이 마음이 변했다고 말해 달라고 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결국 하녀들이 와서 찬물을 채운 욕조 속에 데이지를 집어넣고 진정시킨 후에 결혼식을 제대로 마칠 수 있었다. 


나는 조던을 통해 개츠비의 부탁을 전해 들었다. 차를 마시러 오라고 데이지를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초대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개츠비와 데이지가 우연히 만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데이지에게 전화를 걸어서 톰을 놔두고 혼자서 차를 마시러 오라고 했다. 약속한 날은 비가 퍼부었다. 11시가 되지 비옷을 입은 사람이 잔디 깎는 기계를 들고 우리 집을 방문했다. 개츠비가 보낸 사람이었다. 2시쯤 개츠비의 저택에서 수많은 화분이 와서 우리 집을 온실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한 시간 뒤 흰 플란넬 양복에 은색 셔츠와 금색 넥타이를 한 개츠비가 서둘러 들어왔다. 시간에 맞추어 데이지가 도착했고 개츠비는 매우 긴장한 것 같았지만 이내 두 사람은 재회의 기쁨을 느꼈고 개츠비는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곧바로 개츠비는 나와 데이지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데이지는 개츠비의 저택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그는 와이셔츠 더미를 끄집어내어 하나씩 우리 앞에 던졌는데, 엷은 리넨 셔츠, 두꺼운 실크 셔츠, 고급 플라넬 셔츠가 떨어질 때마다 개켰던 자국이 펴지며 가지각색으로 테이블 위를 덮었다. 우리가 감탄하는 동안 그는 셔츠를 더 많이 가져왔고, 부드럽고 값비싼 셔츠 더미는 점점 더 높이 올라갔다. 산호빛과 능금빛 초록색, 보랏빛과 옅은 오렌지색의 줄무늬 셔츠, 소용돌이무늬와 바둑판무늬 셔츠들에는 인디언 블루 색으로 그의 이름의 머리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갑자기 데이지가 소리를 내며 셔츠에 머리를 파묻고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나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 훌쩍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겹겹이 쌓인 셔츠 더미 속에 묻혀버렸다. “슬퍼져요. 난 지금껏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를 본 적이 없거든요.” (133)

 


개츠비와 데이지는 자주 만났고 좋은 감정을 나누게 되었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되찾고 싶었다. 그가 그녀에게 바라는 것은 톰에게 “난 결코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개츠비는 그 말을 시작으로 톰과 데이지가 함께 했던 3년 간의 결혼 기간을 지워버리고 5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 데이지와 다시 결혼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개츠비는 정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푹푹 찌는 더운 여름날, 나와 개츠비, 그리고 조던은 초대를 받아 데이지의 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 자리에는 톰도 함께 있었다. 데이지가 톰과 머틀의 관계를 알고 있듯이 톰도 개츠비와 데이지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데이지는 오후에 다 같이 시내에 나가자고 제안했다. 사람들은 데이지의 제안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개츠비에게 애정을 드러내는 데이지의 말을 들은 톰은 같이 나가자고 화를 내며 사람들을 다그쳤다. 나는 데이지가 말을 할 때 조심성이 없다고 느꼈다. 

 

“데이지는 목소리에 조심성이 없어요.” 내가 말했다. “그 애의 목소리에는 뭔가 가득…….”
나는 머뭇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어요.” 갑자기 그가 말했다.
바로 그것이었다.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었다. 데이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서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그 끝없는 매력, 그 딸랑거리는 소리, 그 심벌즈 같은 노랫소리…… 하얀 궁전 저 높은 곳에 임금님의 따님이, 그 황금의 아가씨가……. (171)


우리는 톰의 차와 개츠비의 차에 나눠 타고 뉴욕 시내로 나갔다. 나와 톰과 조던은 개츠비의 차에 탔고 개츠비는 데이지와 톰의 차에 탔다. 우리는 플라자 호텔의 특실용 응접실을 빌렸다. 방은 컸지만 답답했고 오후 4시가 되었지만 여전히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곳에서 톰과 개츠비의 신경전이 계속되었다. 톰은 개츠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가족에게 어떤 분란을 일으키려고 하는지 물었다. 데이지는 톰을 말렸다. 하지만 톰은 데이지가 개츠비와 바람이 났다고 말하며 계속 개츠비에게 따지고 들었다. 

 

“개츠비 씨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고 싶군.”
“당신 부인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아요.” 개츠비가 말했다. “당신을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고요. 나를 사랑하고 있을 뿐.”
“미쳤군그래!” 톰이 자기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잔뜩 흥분해서 개츠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었단 말입니다. 알아듣겠소?” 그가 소리쳤다. “내가 가난했던 탓에 기다리다 지쳐서 그녀는 당신과 결혼한 것뿐이오. 그건 아주 큰 실수였지만 그녀는 마음속으로 나 말고는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던 거요!” (185)

 

피츠제럴드와 젤더


개츠비는 톰에게 이미 오 년 전부터 자신은 데이지와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말했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톰을 사랑한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톰은 개츠비의 말을 부인했다. 톰은 데이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도 데이지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톰은 가끔 바보짓을 하더라도 항상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데이지는 구역질 난다고 말하며 경멸이 가득 찬 목소리로 방 안을 채웠다.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요구했다. 한 번도 톰을 사랑한 적이 없다고 말하면 아팠던 그녀의 과거는 영원히 씻겨져 나갈 것이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데이지는 톰을 사랑한다고 느끼지 않았지만 개츠비의 요구에는 주춤거렸다. 개츠비의 강요에 이끌려 데이지는 내키지 않는 말투로 “그를 사랑한 적 없어요”라고 말했다. 톰은 데이지의 말을 반박하며 구체적인 순간을 언급하며 따졌다. 데이지는 개츠비를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아, 당신은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아요!” 그녀는 개츠비에게 소리쳤다. “지금 난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과거는 어쩔 수 없잖아요.” 그녀는 절망적으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저 사람을 한 번쯤은 사랑했단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도 사랑했어요.” (188)


톰과 개츠비 사이에 거친 말이 오고 가며 데이지는 공포에 질렸다. 분위기는 더욱더 험악해져서 개츠비가 말을 하면 할수록 데이지는 점점 더 움츠러들었고 결국 개츠비도 자신이 원하는 말을 들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포기했다. 데이지가 톰에게 집에 가자고 애원했다. 톰은 데이지에게 개츠비의 차를 타고 두 사람이 먼저 떠나라고 아량을 베풀 듯 말했다. 톰은 개츠비의 주제넘은 애정 행각이 끝났기 때문에 데이지를 괴롭히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개츠비와 데이지가 차를 몰고 떠났고 조금 지나서 윌슨의 자동차 정비소 앞에서 머틀이 뺑소니 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신문에서 ‘죽음의 자동차’라고 이름 붙인 그 차는 머틀을 친 이후에 비틀비틀하더니 잠시 후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아무도 머틀이 어떤 차에 의해서 치였고 운전자가 누구였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단지 어떤 목격자에 의해 그 차가 노란색이라는 사실만을 알 수 있었다. 밤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가던 나와 톰과 조던은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뺑소니 차가 개츠비의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톰의 집에서 웨스트에그로 돌아가려고 택시가 오기로 한쪽으로 걸어가던 나는 개츠비를 만났다. 그리고 머틀을 친 것은 개츠비가 아니라 데이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개츠비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는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은 것 같았고 데이지의 반응만을 신경쓰고 있었다. 개츠비는 경찰에게 자신이 사고를 냈다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날이 되어 나는 개츠비에게 가서 잠시 이곳을 떠나 있으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개츠비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데이지가 어떻게 할 생각인지 알기 전에는 떠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 개츠비는 젊은 시절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데이지 얘기를 더 하고 싶어 했다.  

 

그녀는 그가 난생처음으로 알게 된 ‘멋진’ 여자였다. 그는 숨겨진 다양한 능력을 발휘해 상류층 사람들과 만나긴 했지만 그들과의 사이에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철조망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는 그녀가 몹시도 탐났다. 처음에는 캠프 테일러의 다른 장교들과 같이 그녀의 집에 놀러 갔지만 나중에는 혼자서 찾아갔다. 그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집에 들어가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 집에서 숨 막힐 정도로 격한 기분을 느낀 것은 바로 데이지가 그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그 집은 훈련소의 텐트가 그에게 예사로운 것처럼 그렇게 예사로운 것이었다. 그 집 주위에는 농익은 신비스러움이 있었다. 위층에는 어떤 침실보다 아름답고 시원한 침실이 있을 것만 같았고, 복도마다 대단하고 즐거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았으며, 라벤더 속에 소중하게 보관해 놓은 곰팡내 나는 로맨스 말고 금년에 출시된 최신형의 번쩍거리는 자동차 냄새를 풍기는 신선하고 생기 넘치는 로맨스가 있을 것만 같았고, 시들지 않는 꽃들이 춤을 추고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많은 남자들이 이미 데이지를 사랑했다는 사실 또한 그의 가슴을 더욱 설레게 했다. 그럴수록 그의 눈에는 그녀의 가치가 더 크게 보였던 것이다. 그는 그 남자들의 존재가 아직도 떨리는 감정의 그림자와 메아리로 그 집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209)

 


개츠비가 데이지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는 그녀에게 빠져 있었다. 개츠비가 외국으로 떠나기 전날 오후에 그는 데이지를 오랫동안 안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시간 마음속 깊은 곳까지 서로 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개츠비는 군대에서 꽤 성공한 편이었지만, 데이지는 개츠비를 기다리기보다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남자들과 데이트를 즐겼다. 하지만 데이지도 어떤 결심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톰 뷰캐넌이 나타나자 그 결심은 구체성을 띠게 되었다. 개츠비가 군대에 간 사이 데이지는 톰과 결혼했고 제대한 이후에 데이지가 살고 있는 동네에 찾아와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데이지는 신혼여행을 떠나 있는 중이었다. 나는 개츠비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시내에 나가기 위해 떠났다. 개츠비는 계속 데이지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악수를 나누고 울타리에 다다르기 직전에 나는 그에게 돌아섰다.

 

“그 인간들은 썩어빠진 족속이오.” 나는 잔디밭 너머로 소리쳤다. “당신 한 사람이 그들을 모두 합쳐놓은 것만큼이나 훌륭합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때 그 말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하는 행동에 찬성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그에게 한 유일한 칭찬이었다. 처음에 그는 점잖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중에는 활짝 밝아진 얼굴로 그동안 줄곧 그 범행을 공모해 오기라도 한 것처럼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217)

 


오후에 개츠비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풀장으로 갔다. 그리고 총소리가 들렸지만 그 총소리를 심각하게 들은 사람은 없었다. 나는 기차역에서 개츠비의 집으로 곧장 차를 몰았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층계를 올라가자 그 집에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수영장에는 개츠비를 태운 매트리스가 불규칙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매트리스 아래에는 붉은 동그라미가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잔디밭에는 윌슨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개츠비를 발견한 지 삼십 분 뒤 나는 본능적으로 데이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톰과 데이지는 이미 짐을 꾸려가지고 나갔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나는 개츠비의 죽음을 알렸고 그와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그의 장례식에 찾아와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개츠비의 아버지만이 그의 죽음을 지키기 위해 왔다. 개츠비의 아버지는 내게 개츠비의 어렸을 적 계획표와 결심을 보여 주었다. 장례식이 거행되었지만 여전히 개츠비를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동부의 도시가 내가 살던 곳보다 더 우월한 곳이었음을 깨달았을 때조차도 뭔가 뒤틀린 구석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개츠비가 죽은 뒤 동부에 대한 그런 느낌은 더욱 끊임없이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그래서 나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10월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톰을 만났다. 나는 그날 오후 윌슨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톰에게 물었다. 톰은 윌슨에게 그 자동차의 주인이 누구인지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고 했다. 

 

나는 그를 용서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었지만 그는 자기가 한 일이 완벽하게 정당한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는 대로였다. 톰과 데이지, 그들은 경솔한 인간들이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부숴버리고 난 뒤 돈이나 엄청난 무관심 또는 자기들을 묶어주는 것이 무엇이든 그 뒤로 물러나서는 자기들이 만들어낸 쓰레기를 다른 사람들이 치우도록 하는 족속이었다……. (252-253)


나는 그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갑자기 어린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에 악수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리석은 일이 될 것 같았다. 내가 떠날 때 개츠비의 집은 여전히 비어 있었고 그 집의 잔디도 길게 자랐다. 해변에 길게 늘어선 별장들은 대부분 문이 닫혀 있었고 불빛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운 곳이 되었다. 달이 높이 떠오르면서 집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는 옛날 네덜란드 선원들의 눈에 비친 이 옛 섬의 모습이 어땠을지 깨닫게 되었다. 이 섬은 “신세계의 싱그러운 초록빛 가슴이었던 것이다.”(254) 

 

나는 그곳에 앉아 그 오랜 미지의 세계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개츠비가 부두 끝에 있는 데이지의 초록색 불빛을 처음 찾아냈을 때 느꼈을 경이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이 푸른 잔디밭을 향해 머나먼 길을 달려왔고, 그의 꿈은 너무 가까이 있어 금방이라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으리라. 그 꿈이 이미 그의 뒤쪽에, 공화국의 어두운 벌판이 밤 아래 두루마리처럼 펼쳐져 있는 도시 저쪽의 광막하고 어두운 곳에 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문제 될 것은 없다.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맑게 갠 아침에는…….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255)

 

 

* 피츠제럴드의 삶

소설은 대체로 작가의 삶을 기반으로 두고 있다.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지만, 아무 이야기나 막 지어낼 수는 없으니 작가는 보통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인물을 만들어 낸다. 물론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듣고 그들을 관찰해서 인물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는 피츠제럴드의 삶을 닮아 있는 소설이다.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개츠비라는 인물의 모델은 작가 자신일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피츠제럴드는 1896년에 미네소타 주에서 태어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19세기와 20세기 초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미네소타 주 출신이라면 시골 출신이라고 보면 된다. 미네소타 주에 있는 큰 도시라고 해봐야 아마 별 볼 일 없는 곳일 가능성이 높다. 뉴욕도 아니고 LA나 시카고와 같은 대도시 출신이 아니라면 그리고 미네소타 주처럼 미국 대륙의 중앙의 위쪽에 위치한 추운 곳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기득권 계층이라 상류층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 피츠제럴드가 대학은 프린스턴으로 갔다. 뉴저지에 있는 프린스턴 대학교는 뉴욕시와 꽤 가깝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과 가까운 것인데 그렇다면 당연히 졸업 후에 서울에 취직하기 쉽다. 그래서 피츠제럴드는 졸업하고 광고 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직장인이 돈을 벌아봐야 그리 많이 벌지는 못한다.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서 연인이었던 젤더에게 파혼을 당했다. 불확실한 미래는 점잖은 표현이고 그냥 돈을 많이 못 벌어서 파혼당했던 것이다. 젤더는 돈이 많은 상류층 사람이었다. 자신이 왜 파혼당했는지 확실히 알고 있던 피츠제럴드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소설을 썼다. "낙원의 이쪽"이라는 작품이었는데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파혼당했던 젤더에게 다시 청혼하고 결혼에 성공했다. 돈 때문에 파혼당하고 돈 덕분에 다시 결혼에 성공했으니, 그들의 생활은 어땠을지 안 봐도 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단히 호화로운 생활을 했던 그들은 그 때문에 늘 돈이 부족했다. 젤더는 신경쇠약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고 피츠제럴드는 연이은 작품 실패와 젤더와의 관계로 인해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그러다가 피츠제럴드는 1940년에 "마지막 거물"을 집필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겨우 마흔네 살의 나이에 하늘나라로 갔다.  

 

* 청교도가 세운 나라, 미국 그리고 1차 세계대전

미국은 청교도가 세운 나라다. 청교도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돈에 관심이 많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청교도는 물질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 어쩌면 그들은 매우 현실적인 신앙인이었던 것 같다. 사는 데 물질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청교도는 물질적인 부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믿었다. 반대로 가난은 하나님의 저주라고 믿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신앙심이 깊으면 물질적 축복이 따라온다고 믿었는데 어쩌면 신앙심보다는 신앙심의 결과인 물질적인 축복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막스 베버는 청교도 윤리가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청교도에게 물질은 단순히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이 아닌 하나님 축복의 증거였다. 그래서 청교도는 근면하고 정직하고 성실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20세기 초반에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미국도 참전을 하면서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거나 부상과 장애를 당한 사람들도 생겼다. 자기 자신이 그런 일을 겪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웃이나 아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겪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사람의 생명이 바람에 꺼지는 촛불처럼 어느 한순간에 훅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되던 시기였다. 동시 전쟁 특수로 인해서 미국에는 엄청난 호황이 일어났다. 생명의 위협과 더불어서 막대한 자본이 생기게 되면서 사람들은 타락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 마구 불어난 돈으로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쾌락을 누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의 1920년대를 재즈의 시대라고 불렀다. 재즈는 즉흥적인 연주를 의미하는데, 마치 재즈처럼 삶을 즉흥적으로 즐겨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돈과 쾌락 이외에 중요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피츠제럴드는 1920년대를 "그것은 기적의 시대였고, 예술의 시대였고, 과도의 시대였으며, 풍자의 시대였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 그래서 개츠비는 왜 위대했나?

개츠비는 그다지 위대했던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선한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면 모를까, 밀주업자로서 큰돈을 번 개츠비를 위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의 사랑은 어떠한가? 그는 이미 남의 아내가 되어버린 데이지를 끝까지 사랑한다.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었나? 이미 남의 아내가 되어버린 여자라면 아무리 첫사랑이었다고 할지라도 깨끗하게 포기하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그리고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 데이지에게 톰을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다고 고백하라고 간청한다. 데이지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니까. 순진하다고 해야 할까, 정직하다고 해야 할까? 데이지도 그렇고 톰도 그렇고 그들은 그냥 돈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귀찮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싫어하고 있는 돈을 가지고 몸뚱이의 쾌락을 누리며 살아가면 그만인 인간들이었다. 개츠비도 그리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톰이나 데이지보다는 나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닉이 개츠비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당신 한 사람이 그들을 모두 합쳐놓은 것만큼이나 훌륭합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개츠비는 위대하다고 하기 어렵지만 그 당시 미국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짐작해 본다면 개츠비는 꽤나 정신을 차리고 살았던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도 있다. 적어도 물질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개츠비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가 돈을 번 것은 단순히 물질을 소중하게 여겨서가 아니었다. 그가 돈을 번 이유는 하나였는데 바로 데이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였다. 비싸고 아름다운 셔츠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속물이 데이지의 환심을 사는 것이 좋은 일이었는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는 것은 나중 일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개츠비는 돈을 목표로 살지는 않았다. 완전 속물이 데이지의 환심을 사고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돈을 벌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그래도 개츠비가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낫지 않았을까? 결국 그의 사랑이 그를 파멸로 이끌었지만 개츠비 뒤에 숨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게 될 톰과 데이지의 삶보다는 그의 삶이 덜 부끄럽지 않을까? 

 

* 우리 잘 살고 있는 걸까?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서 피츠제럴드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책의 제목을 지을 때 다음과 같은 제목들을 가지고 고민했다고 한다. "재의 골짜기와 백만장자들", "웨스트에그의 트리말키오", "웨스트에그로 가는 길", "황금 모자를 쓴 개츠비", "푸른색과 붉은색 그리고 흰색" 마지막 제목에 열거된 색깔은 미국의 국기를 이루고 있는 색이다. 아마도 피츠제럴드는 미국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런 말이지 않을까? 

 

"우리 진짜 돈 많이 벌었고 부유하게 살고 있어요. 그런데요, 우리 정말 잘 살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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