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단편소설

[세계단편소설] 빅토르 위고 "가난한 사람들"_당신은 당신다워야 한다

설왕은 2020. 12. 15. 11:30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은 말할 것도 없이 명작입니다. 안 읽어본 사람은 많아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도 완역본을 읽어보지는 못했고 축약된 책만 읽었습니다. 그리고 몇 해 전에 완역본의 일부분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장 발장이 은 숟가락과 은그릇을 훔친 후에 일어났던 사건을 읽고 감탄을 했습니다. 대부분이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장 발장의 절도 행각은 신부님에 의해 용서를 받습니다. 그러고 나서 장 발장이 그날 바로 또 저지른 행동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만 저는 그 사건을 읽으면서 소름 끼치는 반전이라고 생각하면서 빅토르 위고의 천재성을 인정하게 되었죠. 빅토르 위고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고 동시에 과감한 극적 전개를 펼칠 수 있는 훌륭한 작가입니다. 

 

빅토르 위고 (1802-1885, 프랑스)

 

1802년에 태어난 빅토르 위고는 대표적인 낭만주의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18세기의 계몽주의 대한 반동으로 18세기 말부터 낭만주의적 경향이 나타났는데 시기적으로 낭만주의의 영향이 한참 커지는 시점에 교육을 받아서 그것이 일종의 축복이었을 것 같습니다. 낭만주의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는지는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시기적으로는 낭만주의가 계몽주의를 밀어내던가 혹은 계몽주의의 단점을 충분히 보완할 것 같은 분위기였을 시대임에는 분명합니다. 다행이죠. 물론 작가라면 이성적인 관점에서만 작품을 쓰지는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작가가 시대나 상황과는 상관없이 독야청청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주변의 분위기에 따라서 작가의 작품 세계도 영향을 받는 것이 정상이지요. 사랑받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시대나 상황을 충실히 반영해야 했을 텐데, 낭만주의가 무르익었을 당시에 빅토르 위고가 활동했다는 것은 인간의 감정 세계를 충분히 표현하는 작품을 쓰는 것이 그에게도 유리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행입니다. 

 

"레 미제라블"이 비참한 사람들, 혹은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데요. "가난한 사람들"도 비슷한 느낌의 제목입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몇 쪽 되지 않는 단편소설입니다. 그래도 빅토르 위고의 정신이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 줄거리

어부의 아내인 자니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남편이 너무 걱정되어서 밖에 나가 봅니다. 그런데 이웃에 살고 있는 병든 과부 시몬이 생각나서 그 집에 방문합니다.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어서 돌아서려고 하는데 바람에 휘청거리다가 문에 부딪쳐서 문이 열리고 시몬의 집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런데 시몬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고요. 시몬의 아기 둘이 엄마 옷을 덮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자니는 급하게 무엇인가를 들고 그 집을 나옵니다. 다음날 아침에 자니의 남편이 돌아오고 시몬의 임종과 살아남은 두 아기의 소식을 알립니다. 남편이 시몬의 아기들을 데리고 오자고 말하자 자니는 침대에 눕혀 놓은 시몬의 두 아이를 보여 줍니다. 


작품은 시작부터 불길한 기운을 온통 뿜어냅니다. "폭풍우가 사정없이 몰아치는 어두운 밤이었다. 자니는 꺼져 가는 난로 옆에서 넝마 조각을 잇대어 헐어 빠진 돛을 깁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계속 어둡고 칙칙하고 불안하지만 자니의 집안과 거기서 자고 있는 다섯 명의 아이들을 클로즈업해서 표현할 때는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밖은 여전히 춥고 어두웠으며 몸서리쳐지는 폭풍우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가난한 어부의 오막살이는 더없이 포근하고 아늑했다. 방바닥은 비록 흙바닥이기 했지만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병에 시달리다가 혼자 숨을 거둔 과부 시몬의 이야기도 참으로 끔찍했지만 그 모습에 크게 놀라는 것 같지 않은 자니의 반응이 그 당시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힘겹게 그들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시몬의 죽음이 안타깝고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그 순간 시몬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시몬 자신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이고 아이들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고 자니는 시몬의 죽음을 애도할 만한 여유도 기운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여기서 시몬을 위해 눈물을 흘려줍니다. 

 

"밖에서는 비바람이 점점 더 거칠게 몰아치고 있었다. 천장을 타고 내리던 빗물 한 방울이 죽은 여인의 얼굴에 툭 떨어져 뺨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것은 마치 근심과 걱정을 남긴 채 죽어야 했던 어머니의 한스러운 눈물처럼 보였다."

 

빅토르 위고는 소설가이면서 시인이기도 했고, 처음 그가 데뷔를 한 것은 그가 쓴 시가 콩쿠르에 당선되면서였다고 하는데요. 저는 위의 문장이 시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무도 울어 주지 않는 시몬의 죽음을 위해 작가가 직접 등장해 눈물을 흘리는 듯한 효과를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몬의 뺨에 빗물이 흘러내리는 장면이 그려지면서 슬픔과 위로가 동시에 전달되었습니다.

 

자니의 남편이 들어오는 장면을 묘사한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갑자기 문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문이 열리면서 축축하고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방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이와 함께 키가 크고 햇볕에 그을린 건장한 어부가 갈기갈기 찢어진 그물을 질질 끌며 오막살이 안으로 들어왔다."

 

소리가 들리고, 그다음에는 바람이 들어오고, 그다음에 어부가 눈에 들어오는 이 표현이 기대와 반가움을 점점 고조시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어부의 아내인 자니가 느꼈을 반가움이 짐작이 되더라고요. 소리와 바람과 건장한 어부의 모습, 모두가 희망의 메시지 같았습니다. 

 

빅토르 위고가 소설 속에서 암시적인 표현을 통해 극적인 효과를 높이는 시도를 했지만 결말은 예측이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결말이 우리가 예측한 대로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도 먹고살기 힘든 가난한 집에서 이웃의 아이 두 명을 데리고 오는 것은 평범한 일은 아닙니다. 대책 없는 사고를 치는 것과 같죠. 그러니까 자니도 계속 불안해하고 남편도 그 이야기를 듣고 "목덜미를 손으로 벅벅 긁으며" 그러니 어쩌지,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빅토르 위고가 전달하고자 하는 뜻은 명료합니다. 앞날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데려와야죠, 어린 생명들을 살려야죠. 

 

 

남편은 말합니다. 

 

"여보, 빨리 가라니까. 왜, 당신 싫어? 아이들을 데려오는 게 내키지 않는단 말이야? 정말 당신답지 않군!"

 

요새 나오는 글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한 목적을 가진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작가는 글을 통해 자신의 세상을 만들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소개함으로써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작품이 가진 사회적인 책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특이함만을 가지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고 하는 작품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빅토르 위고처럼 책임감 있는 작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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