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단편소설

[세계단편소설] 토마스 만 "묘지로 가는 길"_말이 터졌다

설왕은 2022. 6. 29. 09:00

토마스 만(1875~1955)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입니다. 독일 북부 뤼베크에서 태어난 토마스 만은 20세기 최고의 독일 작가로 추앙받는 사람입니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라는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두 권으로 나누어져 나와 있는데 읽어 보진 못했습니다. 

 

"묘지로 가는 길"은 주인공인 피프삼이 가족들이 묻혀 있는 묘지로 가는 길에 생긴 일을 서술한 작품입니다. 사실 아무 일 없이 갈 수도 있었는데 피프삼은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한 청년에게 시비를 겁니다. 이 길은 자전거를 탈 수 없는 길이라고 고발하겠다고 하죠. 그러나 청년은 대충 무시하고 지나갑니다. 그러자 피프삼은 뒤따라가서 안장을 잡습니다. 청년은 피프삼의 가슴을 주먹으로 가격한 후에 가버립니다. 피프삼은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욕을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입니다. 사람들이 모인 상태에서 피프삼은 계속 소리를 지르면서 욕을 합니다. 결국 정신을 잃은 피프삼은 구급 마차에 실려 갑니다. 이렇게 소설은 끝나죠. 

 

아무 일도 없을 수 있었는데 일을 만든 사람은 피프삼이었습니다. 그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 그 이유가 소설의 전반부에 나와 있습니다. 피프삼의 아내는 반년 전에 셋째 아이를 낳다가 죽었고 그의 두 아이도 잇따라 죽었고 피프삼은 직장에서 해고까지 당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술을 마시고 자살 시도까지 했습니다. 토마스 만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내가 자신의 결백함을 말해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불행에 빠지면 자기 자신을 학대하기 쉽다. 또한, 자기 학대와 타락 사이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둘은 맞붙어 서로 손을 잡고 있는데, 결국에는 놀라운 결말을 초래한다. 이 사내의 경우가 바로 그 예다. 

 

 

 

피프삼은 화풀이 상대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 주요한 상대는 자기 자신이었고요. 그래서 자기 자신을 학대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벌 주기 위해서 자기 자신이 싦어서 계속 술을 마신다...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검은 상복을 입고 가족이 죽어서 묻혀 있는 묘지로 가는 길에 피프삼은 근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듯한 청년을 만나는데 그에게도 화풀이를 하고 싶었던 것이겠죠. 근심이 없는 사람이라서 오히려 더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부조화를 느꼈을 테죠. 피프삼은 이유 없이 불행하게 삶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이유 없이 행복한 사람을 보고 배알이 꼬였던 것이겠죠. 그래서 시비를 겁니다. 처음에는 그저 점잖고 묵직한 어조로 청년의 자전거 번호를 읽습니다. 그다음부터 점입가경이 됩니다. 화가 터지는데 결국은 말로 터집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 화를 자신이 감당할 수 없어서 실신합니다. 

 

이 소설은 토마스 만이 별일도 아닌 것 가지고 미친 듯이 화를 내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쓴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사람이 있거든요. 정말 사소한 일에 불 같이 화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럴까 하고 의문이 들 정도로 폭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토마스 만은 그런 사람이 괜히 그런 것이 아니라 나름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이 소설을 통해서 변명을 해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피프삼의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이상하다고만 생각하지 않고 다독여 주었을 것입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흥미롭게 생각했던 것은 피프삼의 거침없는 '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피프삼처럼 말을 쏟아내지는 않습니다. 특별히 피프삼은 대화 상대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물론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 심지어 개까지도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주변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피프삼은 말을 쏟아냅니다. 참다참다못해서 화가 터질 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말이 터지는 사람도 많습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무조건 문제가 됩니다만, 이렇게 말로 화를 터뜨리는 경우에는 큰 해를 입힐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미 자전거를 탄 청년은 피프삼이 화를 내며 하는 말을 들을 수 없었고요. 피프삼이 꾹꾹 담아두었던 세상에 대한 불만과 그가 당한 비극에 대한 항의를 욕설과 함께 거침없이 쏟아냈는데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그가 가진 자기 혐오증이 좀 누그러졌을지 궁금하네요. 그는 여러 번 자살 시도도 했는데 이 날 터진 말로 인해서 그런 나쁜 마음도 누그러졌을까요?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