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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다나베 세이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_우린 죽은 거야

설왕은 2022. 7. 29. 17:53

다나베 세이코가 쓴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는 같은 이름의 영화 때문에 잘 알려진 책이다. 그 전에도 다나베 세이코는 유명한 작가였다고 한다. 나는 몰랐지만... 하긴 일본 작가 중에 아는 작가가 거의 없는 것 같다. 1928년에 태어난 다나베 세이코는 많은 작품을 썼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유명한 문학상도 많이 받았고 후배 작가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작가로 일본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작가의 수상 경력이 화려해서 이 책을 읽어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영화를 보고 원작은 어떨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내가 영화를 보고 원작을 찾아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너무 강렬했다. 처음에는 영화에 원작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냥 참 대단한 영화구나, 라고 생각했다. 영화로서 예술적 가치가 어떠한지는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이고, 나는 주로 중심 생각을 보는데 그 생각이 매우 독특하고 멋있었고 잘 작동할 것 같았다. 만약 조제와 같은 성품을 가지고만 있다면 그래서 조제를 따라 할 수만 있다면 어떤 시련이 찾아와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싶을 정도였는데 이 영화는 감독의 생각이 아니라 다나베 세이코의 생각에 많이 기대고 있는 영화였다. 다나베 세이코도 조제를 혼자 만들어 낸 것은 아니고 프랑수와즈 사강의 "한 달 후 일 년 후"라는 책을 통해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사강도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받았을 테고... 여하튼 그래서 읽어 보고 싶었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는 20대 중반의 조제라는 아가씨의 이야기이다. 뇌성마비로 인해서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조제는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그런데 츠네오라는 두 살 연하의 대학생을 알게 되고 츠네오는 조제와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지는 것인지 연민인 것인지 좀 헷갈리기도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한다. 아마도 영화 때문에 연민 쪽이 더 가까운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기는 하는데 소설에서는 연민은 별로 느낄 수 없었다. 할머니와 살던 조제는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혼자 살게 된다. 츠네오가 찾아오고 조제는 츠네오를 붙잡는다. 갑작스러운 충동으로 인해 조제와 입을 맞추고 함께 잔 츠네오는 조제와 함께 산다. 둘이 정식으로 결혼한 것은 아니지만 부부라고 생각하고 서로 돕고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둘이 같이 살면서 호랑이도 보러 가고 수족관에 가서 물고기도 본다. 그래서 제목에 호랑이와 물고기가 들어갔다. 

 

소설을 보고 다소 의외였는데, 이유는 영화와는 달리 해피엔딩이라는 점. 둘이 같이 산다. 적어도 소설 속에서는 헤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의 관계가 굳건해서 절대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같이 살면서도 정식으로 결혼하지도 않았고 결혼할 생각도 없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언제라도 끝날 수 있다는 것을 다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의 반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츠네오는 그 후로도 조제와 같이 살고 있다.두 사람은 서로 부부라고 생각하지만, 호적 신고도 하지 않았고,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고, 피로연도 하지 않았고, 츠네오의 가족 친지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종이 상자 속에 담긴 할머니의 유골도 여전히 그대로다.
조제는 이대로가 좋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을 들여 간을 잘 맞춘 음식을 츠네오에게 먹이고, 천천히 세탁을 해서 츠네오에게 늘 깨끗한 옷을 입힌다. 아껴 모은 돈으로 일 년에 한 번 여행도 떠난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영화의 감동이 깨질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영화 속에서 조제는 덤덤하게 이별을 하고 혼자만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한 자세로 자신의 삶을 이어간다. 그 캐릭터의 멋짐에 감동을 받아서 책도 읽은 것이었는데 소설에서 조제와 츠네오는 아직 잘 살고 있다. 뭐지?

 

같은 제목의 영화와 소설에서 조제는 완전히 다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 나는 영화 속 조제에게 매력을 느껴서 책을 읽었는데 잘 들여다보니 소설 속 조제도 꽤나 매력이 있다. 어느 쪽이 더 매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선택하기 어렵다.

 

조제는 동물원과 수족관을 좋아한다. 츠네오와 조제가 바닷가에 있는 수족관에 놀러 갔을 때 조제는 깊은 행복감에 잠긴다. 너무 행복해서 죽을 때까지 수족관 안을 돌아다닐 것처럼 계속 머물렀다. 결국 츠네오에게 핀잔을 듣고 숙소로 돌아갔지만 조제는 여전히 수족관의 환상 속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깊은 밤에 조제는 눈을 뜨고, 커튼을 열어젖혔다.달빛이 방안 가득 쏟아져 들어왔고, 마치 해저 동굴의 수족관 같았다.
조제도 츠네오도 물고기가 되었다.
죽음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죽은 거야.'

 

영화 속 조제의 대사와는 정반대이다.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영화 속 대사)

 

영화 속 조제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랑은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다시 고독해지고...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설 속 조제는 변화를 거부한다. 우리는 죽은 거야, 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극도의 행복감을 느낄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극도의 행복감의 상태에 머물고 싶은 욕망이다. 극도의 행복감은 언젠가는 사그라들기 마련인데 그것을 멈추는 방법은 '죽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조제의 말은 죽고 싶을 정도로 행복해서 그래서 자기네들은 지금 이 상태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고 주문을 외고 있는 것이다.

 

물고기 같은 츠네오와 조제의 모습에, 조제는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츠네오가 언제 조제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지만, 곁에 있는 한 행복하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제는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을 늘 죽음과 같은 말로 여긴다.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 그 자체다. 
'우리는 물고기야. 죽어버린 거야.'

 

 

조제는 고민하지 않는다. 이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지 걱정하지 않는다. 그 순간에 행복을 느끼면 그만이다. 어떻게 츠네오와 계속 같이 살 수 있을지 츠네오의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정식으로 결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는다. 하긴, 그것이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인가. 조제는 죽고 싶을 정도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그걸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만약 츠네오와 헤어지게 되더라도 큰 상관은 없다. 왜냐하면 조제는 이미 츠네오와 함께 행복하게 죽어버렸으니 말이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 소설집이다. 이 책은 아홉 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 하나가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다. 다른 소설도 느낌이 비슷하다. 다나베 세이코의 소설은 마치 '스냅사진' 같다. 여행지에 가서 사진을 찍으면 우리는 행복한 모습을 담게 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당황스러운 일이 생기더라도 여행에는 즐거움이 없을 수 없다. 사진을 찍는 순간 우리는 즐거움의 표정을 만든다. 그래서 나중에 사진을 보면 항상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순간순간에 즐거움을 담는 것이 바로 스냅사진인데 다나베 세이코의 소설이 마치 그런 것 같다. 주로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순간에 충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불륜도 많은데 불안하지 않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순간에만 충실하다. 아마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조제는 소설 속에서도 영화 속에서도 참 매력 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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