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의 노트

[신학노트] 무에서 창조 (creatio ex nihilo)

설왕은 2019. 8. 19. 17:21

먼저 "무로부터의 창조", "유로부터의 창조"라는 말 자체에 대해 한 마디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로부터의'라는 조사는 일본말 표현에서 온 것입니다. 우리말로 할 때는 매우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실제로 발음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로부터의 창조", "유로부터의 창조"보다는 '무에서 창조', '유에서 창조'를 쓰는 것이 발음하기도 좋고 원래뜻에서 벗어나지도 않습니다.

 

무로부터의 창조의 반대는 유로부터의 창조입니다. 유로부터의 창조 개념에 대한 반발로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가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기존의 존재하는 물질로부터 창조되었다는 개념은 그리스 철학의 개념입니다. 플라톤은 세계가 선재하는 물질로부터 만들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악이나 죄는 질서의 부족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악이나 죄는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있어서 무엇인가가 결핍된 상태라는 개념입니다. 영지주의는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였습니다. 영지주의는 물질이 악하다고 주장했는데 물질은 혼돈의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질서를 부여받아야 하는 다루기 힘든 악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유로부터의 창조에 반대하여 4세기경에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를 확립하게 됩니다.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는 여러 가지로 생각될 수 있는 교리입니다. 존재와 비존재의 문제와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무로부터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것은 비존재로부터 존재가 창조되었다고 볼 수도 있으나 꼭 그런 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일단 무로부터의 창조는 존재와 비존재를 변증법적인 관계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존재의 반대가 비존재가 아니고 비존재의 반대가 존재가 아닙니다. 존재와 비존재를 변증법적인 관계로 이해하면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무로부터의 창조를 이해하면 비물질로부터 물질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로부터의 창조는 이런 설명을 거부합니다. 여기서 존재란 물질적인 요소가 빠져 있는 어떤 존재라는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무로부터의 창조는 이런 개념이 아닙니다. 그러면 일단 '무'라는 것이 어떤 존재이냐라는 질문부터 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제가 볼 때는 어떤 존재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비존재도 존재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존재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 유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로부터의 창조가 맞다면 무는 세상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에서 세상이 나왔기 때문이죠. 이것을 존재와 비존재로 설명하면 비존재는 존재를 포함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존재와 비존재 개념은 인간의 유한성을 생각할 때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요소입니다. 인간이 유한성을 인식하게 되는 이유는 인간은 존재에서 비존재로 가기 때문입니다. 비존재라는 개념을 고려하지 않고 인간의 유한성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그 비존재의 어떠한 형태이건 간에 인간은 인간이 알고 있는 존재의 영역에서 비존재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비존재의 영역이 또다른 존재의 영역이라면 그것은 새로운 존재로의 변형이나 전환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그러한 비존재라는 새로운 형태의 존재가 무엇인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는 비존재가 되거나 새로운 존재로 전환되는 것 모두 현재 상태의 존재의 유한성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되었든 간에 지금 상태의 존재는 끝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유한성을 의미하고요. 만약에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가 맞다면 인간은 무로 돌아간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무로부터 왔으니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무'라는 개념을 완전히 부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비존재라는 개념은 존재라는 개념의 부정입니다. 즉,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비존재라는 개념인데요. 그 개념 자체가 이미 부정적인 개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두 비존재를 향하게 되는데 그 비존재를 부정적인 개념으로 보는 것이 맞을까요? 그렇다면 그 부정적인 비존재에서 긍정적인 존재가 나오게 되었는데 이렇게 우리는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까요? 

 

기독교의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는 비존재의 개념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세상을 존재라고 보고 그리고 우리에게 파악되지 않는 세상을 비존재라고 구분하는 존재의 구분은 우리의 고정관념이 반영된 이해라고 볼 수 있죠. 

 

 

참고문헌

알리스터 맥그래스, 역사 속의 신학

폴 틸리히,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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