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의 노트

[신학노트] 거룩한 하나님과 거룩하지 않은 인간

설왕은 2019. 8. 11. 23:03

거룩이라는 개념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개념 중에 하나입니다. 거룩하다라는 말을 사람들은 도덕적인 고결성 정도로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거룩한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이런 이해에 따르면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을 사는 사람이 거룩한 삶을 산다고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함이라는 것은 도덕적으로 완전한 삶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이 가지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 도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다시금 직면해야 합니다. 도덕적인 삶, 윤리적인 삶이 무엇인지 우리는 다시금 정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도덕이라는 것도 정의하기 힘든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의 기준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게 되는 경우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아무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해야 하고 거룩해야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다면 사실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신 앞에서 누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거룩의 기본적인 의미는 도덕적인 완벽함이 아니라 구별됨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라는 말은 하나님은 인간과는 구별되는 존재라고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인간과 구별될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피조물과도 구별되는 존재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완전히 구별되는 존재라면 우리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사실, 이것이 거룩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이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완전히 구별되는 존재라면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틸리히는 하나님의 거룩성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틸리히의 말입니다. 

 

"하나님의 접근할 수 없는 성경, 즉 문자적인 의미에서 신과 관계를 가질 수 없는 관계 불가능성은 '거룩'이란 단어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왜냐하면 신적인 너는 나를 포함하고 있고 내가 나에게 가까이 있는 것보다 나에게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볼 때, 우리가 그의 실존이나 비실존이 논의될 수 있는 어떤 대상에 대해서 말하듯이 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신의 거룩에 대한 모독이다." (틸리히, 조직신학 2, 191.)

 

틸리히는 하나님의 거룩성이 인간과의 관계 불가능성을 의미한다고 했고, 하나님은 이미 인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저는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과 항상 관계 맺음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인간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인간과 신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신과 다르고 구별이 가능합니다. 인간은 신을 완전하게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신이 인간을 완전하게 포함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신은 인간과 구별되는 존재라는 말은 신이 인간을 완전히 흡수할 수도 없고 인간이 신을 완전히 소유할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신의 그런 속성이 바로 다른 존재와 다른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물건에 대해서는 소유가 가능합니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예로 들어 볼까요. 우리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손가락에 끼고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내가 가는 곳에 다이아 반지도 함께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소유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하게 소유한다면 하나님을 모시고 어디든 갈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소유되는 분이 아닙니다. 우상을 만들면 우리는 그 우상을 소유하고 어디든 그 우상을 데리고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안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인간과의 관계 불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가 필요함을 나타내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소유될 수 없는 세상의 어떤 존재와도 다른 구별된 존재로서 우리는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인은 우리 존재와 비슷한 존재입니다.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고 어느 정도 소유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원할 때 타인을 조정하거나 혹은 원하는 곳에 데리고 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타인도 완전한 소유는 불가능하죠. 우리는 타인을 완전히 나 자신 안에 흡수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타인도 나의 일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경우는 이런 경향성을 극대화시킨 지점에서 이해하면 됩니다. 즉, 하나님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다시 말해서 거룩한 존재로 지속적인 관계맺음을 요구하는 분입니다. 제가 볼 때 이것이 바로 거룩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거룩은 관계의 불가능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의 필수성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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