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악마의 지혜와 충고_C. 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설왕은 2020. 1. 13. 09:30

C.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홍성사, 2000)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악마 선배가 신참 악마에게 보내는 편지를 모아서 책으로 엮어 낸 것입니다. 물론 악마의 편지를 직접 입수할 수는 없으니까 작가의 상상력으로 작성한 편지 모음입니다. 독특한 형식이지요. C.S. 루이스가 선임 악마에게 빙의해서 신참 악마에게 어떤 지령을 내릴 것인지 고민하고 쓴 책입니다. 이차대전 때 C.S. 루이스가 신문에 연재하여 인기를 끌었던 글을 모은 책입니다. 

 

 

특이한 관점으로 썼기 때문에 꽤 인기가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작가의 1961년판 서문이 부록에 담겨 있는데 그 글에 보면 이 책이 꽤 많이 팔렸던 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이 책을 읽을까요? 일단 독특한 관점이어서 흥미로울 것 같다는 느낌을 주고, 또 작가의 명성이 큰 이유겠지요. 저 같은 경우는 악마의 계략을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습니다. 우리의 상식과도 같은 생각이 때로는 악마의 계획일 수도 있고, 혹은 신의 뜻이라고 믿는 것들이 어쩌면 악마의 음모일 수도 있으니까요. 좀 더 단순하게 말하면, 우리가 좋은 생각이라고 여겼던 것이 사실은 나쁜 생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었습니다. 악마에게 빙의해서 글을 쓰다 보면 의외의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기대를 하면서 이 책을 집어 들었죠.

 

 

사실, 저는 이 책을 십수 년 전에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때도 C.S. 루이스의 글을 한참 읽고 있었는데 이 책은 집중이 잘 안 되었습니다. 그때 읽었던 번역본의 책 제목은 "마귀의 지령"이었는데요. 이번에 읽을 때와 비슷한 의도로 읽기 시작했는데 집중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새로운 번역본으로 읽었습니다. 제목도 원제와 같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였고 2000년에 홍성사에서 출간한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여전히 집중이 안 되더군요. 이유를 생각해봤습니다.

 

첫째, 악마에게 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헷갈려요. 보통은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나 주장을 글로 쓰는데요. 이 책은 반대입니다. 작가가 가진 생각의 반대로 쓴 책입니다. 그러니까 자꾸 헷갈립니다. 악마의 교묘한 계략을 다룬 것이라서 주장의 요점을 미묘하게 구분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습니다. 전체적인 주장은 기독교의 주장과 별로 다르지 않은데 아주 사소한 차이로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그런 주장을 전개합니다. 그렇지, 그렇지 하면서 읽다가 보면 뭔가 찜찜하고 이건 악마의 충고야라고 생각하며 읽다 보면 또 그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삶을바꾸는책 #삼바책 #설왕은TV #C.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편지

 

둘째, 편지의 주제를 파악하기 힘듭니다. 물론 읽으면 파악이 되는데 편지마다 주제를 적어 놓았으면 훨씬 읽기 편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찾아보니 예전에 읽었던 은성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주제를 적어 놨네요.) 보통의 책들은 대주제도 있고 소주제도 있습니다. 읽다가 이해가 잘 안 되면 해당 주제를 다시 읽거나 관련된 주제를 다시 읽을 수 있는데 이 책은 편지 형식이어서 그런지 주제가 없습니다. 읽기가 불편해요. 

 

셋째, C.S. 루이스가 살던 시대의 상황과 그의 지적 수준이나 관심과 지금 이 시대 우리나라의 상황과 보통 사람들의 지적 수준과도 많이 달라서 공감할 수 없는 것들도 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편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꼭 한 가지만 명심해 두거라. 기독교에 대해 방어를 하겠답시고 과학을 활용하려 들면 절대 안 된다는 사실 말이다. 과학은 결국 네 환자(환자는 이제 막 개종한 그리스도인을 의미함)를 부추겨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사색하게 만들고 말 게다. 현대 물리학자들 가운데 그런 애석한 사례가 많이 있었지." (19)

 

그 당시에 그러니까 1940년을 전후로 해서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 가진 상식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려 주는 대목입니다. 고전 물리학을 넘어서는 양자 물리학이 알려지고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 생각하고 토론하는 시대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물론 따위로는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악마의 충고를 쓰고 있는데요. 지금은 오히려 아니죠. 많은 사람들은 다시 유물론적 과학이 진짜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유명 물리학자들이 있어서 아마 그렇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직도 유물론은 성행하고 있고 오히려 20세기 초중반보다 더 유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티븐 호킹이나 리처드 도킨스 같은 학자들은 다 유물론자입니다. 

 

 

많은 사람이 읽는 책이고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인데 너무 나쁜 말만 했네요. 명성에 비해서 좀 아쉬운 점들이 많다는 것이고요. 역시 C.S. 루이스 답다고 생각되는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비유와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 보죠. 

 

 

 

"현재 우리의 가장 큰 협력자 중에 하나는 바로 교회다. 오해는 말도록... 네 환자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신축부지에 반쯤 짓다 만 듯 서 있는 싸구려 고딕 건물뿐이야. 그나마 안으로 들어가면, 동네 가게 주인이 아첨하는 표정으로 뜻도 모를 기도문이 적힌 반들반들한 소책자 한 권, 엉터리로 변조된 저질 종교시가 깨알처럼 박혀 있는 낡아빠진 소책자 한 권을 내밀며 떠들어대는 모습과 마주치기 십상이고. 또 자리를 찾아 앉은 뒤 주위를 둘러보면 이제껏 되도록 얼굴 마주치지 않고 살려고 애써 왔던 이웃들만 어쩌면 그렇게 골라서 앉아 있는지. 넌 그런 이웃들을 잘 이용해야 한다. 그럴 때 '그리스도의 몸' 따위의 표현들과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의 실제 얼굴 사이에서 환자를 오락가락 헷갈리게 만들라고."  (22)

 

허접한 공간에 혐오스러운 인간들이 모여 있는 교회를 잘 활용하라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다는 C.S. 루이스의 풍자입니다. 뼈를 때리는 풍자죠. 

 

저는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해답을 얻었습니다. 제가 품고 있던 질문 중에 하나가 악마들의 협력 체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악마가 하나가 아닌 여러 존재가 서로 협력한다면 그게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궁금했거든요. 분명 사랑의 관계를 통한 협력은 아닐 텐데요. 그렇다면 악마라고 할 수 없겠지요. 그런데 작가는 1961년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박쥐보다 관료들을 더 싫어한다... 밀턴은 '악마는 서로 지독하게 굳게 뭉친다'고 했다. 어떻게 굳게 뭉치는가? 우정으로 뭉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사랑할 능력이 남아 있는 존재는 악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상징은 이 점에서도 유용해 보였다. 나는 이 상징 덕분에 지상에 있는 지옥의 유사물로서, 두려움과 탐욕으로만 똘똘 뭉친 관료 사회를 그려낼 수 있었다. 겉으로는 통상적으로 서로 정중하게 대한다. 상관을 무례하게 대하는 것은 분명한 자살 행위이며, 동료를 무례하게 대하는 것은 방심한 틈을 타 그의 허를 찌를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전 조직체를 움직이는 원리는 '먹느냐 먹히느냐'이다." (196-97)

 

악마가 어떻게 서로 단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C.S. 루이스의 답변입니다. 아주 그럴듯한 설명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2019년 후반과 2020년 초반 대한민국의 어떤 조직이 생각났습니다. 왜들 그렇게 똘똘 뭉치는가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시 C.S.루이스!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