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인간은 그냥 악한가?_윌리엄 골딩 "파리대왕"

설왕은 2020. 1. 23. 10:08

윌리엄 골딩은 영국의 소설가로 1940~1945년에 영국군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합니다. 그리고 1954년에 소설 파리대왕이 나왔습니다. 이 정도 사실만 가지고도 파리대왕이 대충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측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이 소설을 읽었는데요. 그때 읽은 책들 중 별로 기억에 남는 책이 없는데 이 책은 기억이 납니다. 기억에 남은 이유는 내용이 꽤나 충격적이었고 배경 설정이 매우 독특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었던 이유는 골딩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것과 제목 자체가 자극을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목이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약간 혐오스러운 느낌도 주지만 제목에 다소 유머가 섞여 있는 듯하기도 했습니다. 

 

 

소설의 상황 설정 자체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비행기가 무인도에 불시착했고 다행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어른들은 모두 죽고 청소년 또래의 아이들만 살아남습니다. 어른이 없고 규율이 없고 나라가 없는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질문에 골딩은 이 소설을 통해서 답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살아남은 거고요. 세계대전을 몸소 경험하고 인간 안에 숨겨져 있는 악을 본 윌리엄 골딩의 서술은 당연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힘으로 제압하고 혹 설령 죽이더라도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 없는 세상이 오면 인간의 폭력성이 더 드러날 것이라는 작가의 생각이 소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아이들은 폭력을 쓰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 규율이나 법적 제재가 없는 세상이 되자 그들은 그들의 본성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인간 본성은 무엇인가 그리고 사회는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가, 라는 질문에 작가는 대답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인간은 악하고 세상은 힘의 논리에 의해서 돌아간다 정도일 것 같습니다. 세계대전 이후에 나온 소설로 최대한 세상을 현실적으로 반영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작가의 의견에 대충은 동의합니다. 아직도 세상은 힘의 논리에 의해서 돌아갑니다. 특별히 국제사회는 더 그렇습니다. 국가 안에서는 힘을 견제하는 장치들이 존재하지만 국제 사회에서는 그런 것이 거의 없죠. 유엔이 있지만 유엔이 미국보다 힘이 세지는 않습니다. 결국 미국 마음대로 국제 사회는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은 악하다는 전제에는 할 말이 좀 있습니다. 인간에게 악한 면이 있기는 있습니다.

 

 

소설에서 인간의 악함이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잠깐 살펴보면요. 소년들은 무인도에 불시착했기 때문에 구조를 받아야 한다는 큰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불을 피워서 자신들의 위치를 어떻게든 알려야 한다는 목표 의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목표를 잊어버리고 사냥의 즐거움에 빠져 버리기도 합니다. 사냥도 처음에는 살기 위해서 식량을 위해서 시작했겠지만 그들은 사냥을 통해 동물을 죽이는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거기에 빠져 버려서 그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조차도 내팽개쳐 버리기도 합니다. 골딩은 이를 통해서 인간의 본성적 악이 대의명분이나 궁극적 목표까지도 모두 삼켜버리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인간은 그렇게까지 악하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인간에게는 분명 악한 본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살기 위한 생존 본성일 수도 있고요. 아니면 정말 악마가 있어서 인간을 조종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원인은 어찌 되었든 간에 인간에게는 악한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악이 더 강한가, 아니면 선이 더 강한가라고 물어본다면 이것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악이 더 강한데 인간이 선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법이 있고 그 법을 어기면 처벌을 받기 때문이라고 짐작해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법이 없으면 세상은 온통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류의 소설과 영화는 많죠. 법과 처벌이 없어지는 세상에 폭력이 난무할 것이라는 그런 이야기는 많습니다. 아마 파리대왕이 그 시조격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악, 혹은 폭력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에 대한 의지나 바람을 완전히 다 잡아먹을 정도로 인간이 그 정도로 악하다면 인간은 법과 제도를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불편한 것입니다. 인간이 완전히 악하다면 법과 제도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제어하게 되고 그러면 악을 통해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쾌락도 포기해야 하는 것이죠. 인간이 진짜 철저하게 악하다면 악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까지도 가지고 놀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 "세븐"에서 범인이 그런 모습을 보여 줍니다. 순수한 악을 완성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치죠. 인간과 사회에는 악이 있지만 그 정도는 아닙니다.

 

영화 "세븐"의 주인공 브래드 피트

 

법이 없으면 인간은 악해지는가, 라고 묻는다면 저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하겠습니다. 그러는 사람도 있겠지만 안 그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면 선을 행하는 사람들의 선은 모두 위선이 되겠지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악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법과 제도로 그것을 제어해야 한다는 주장한다면 저는 백 퍼센트 동의합니다. 그러나 법과 제도, 처벌이 없을 때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은 그냥 악하다는 주장에는 반대합니다. 

 

파리대왕은 인간 본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소설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작가가 인간의 본성을 고발하는 소설이기도 하고요. 요새는 파리대왕과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가 많이 나와서 파리대왕이 매우 자극적인 내용을 다룬 것인데도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 번 상상해 보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내가 만약 무인도에 불시착해서 몇 명의 사람들과 살아가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상상을 해 보면 나는 어떤 본성이 강한지 스스로 자기 자신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니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은 소설임에는 분명합니다. 1963년과 1990년 두 번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작가는 인간은 그냥 악하다라는 전제로 소설을 전개하고 있는데 저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파리대왕보다 더 자극적인 글과 영상이 널려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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