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한국단편소설] 그리움은 축복이다_박완서 "그리움을 위하여"

설왕은 2020. 2. 14. 09:00

요새 박완서 작가의 글을 틈틈이 읽고 있습니다. 처음 계기가 되었던 글은 "그 여자네 집"이었습니다. 김용택 시인의 시와 함께 암울한 시대 상황으로 인해 사랑을 이루지 못한 한 쌍의 남자와 여자 이야기가 잘 어우러져 처연한 사랑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그 여자네 집"에도 박완서 작가가 등장하는데 거기서는 등장해서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할 뿐 소설의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였습니다. 박완서의 기억력에 놀라면서 읽었죠. 물론 소설이니까 모든 것을 다 기억에 의존한 사실로 쓴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각색한 부분도 많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만 그래도 대체로 작가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한 것 같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당시에 보통 사람들이 겪었을 아픔과 혼란과 고통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 여자네 집"도 그렇고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도 그렇고 박완서 작가가 소설에 등장합니다. 그래서 직접 자신이 겪은 혹은 자신이 듣거나 본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형식이기 때문에 글이 모두 독자에게 신뢰감을 줍니다. 

 

박완서 새댁 시절 딸과 함께


오늘 읽은 "그리움을 위하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박완서 작가가 등장해서 사촌동생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박완서가 늘 이런 식으로 소설을 쓰는 것인지 다른 소설도 좀 더 읽어봐야겠지만 이렇게 소설을 쓰는 것을 매우 선호하는 것임에 분명합니다. 이 소설은 사촌동생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촌동생은 부지런하고 솜씨도 좋고 얼굴도 예뻤는데 열두 살이 많은 유부남과 연애를 해서 그 남자를 이혼시키고 결국 결혼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사촌동생의 경제적 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고 남편이 저세상으로 떠나자 사촌동생은 옥탑방 전셋집에서 혼자 살게 됩니다. 물론 경제 사정은 더 좋아질 리가 없었고요. 옥탑방은 여름에 너무 더워서 사촌동생은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촌동생이 남해의 작은 섬에서 민박집을 하고 있던 친구가 놀러 오라는 말에 더운 옥탑방을 벗어날 생각에 훌쩍 바캉스를 떠납니다. 사촌동생은 휴가를 갔다가 사랑에 빠지게 되죠. 일주일에 몇 번씩 와서 박완서의 살림을 도와주던 사촌동생은 그래서 섬으로 떠납니다. 참고로 사촌동생의 나이는 육십 대였고요. 살림 걱정 안 할 수 있도록 도와주던 동생, 쉴 새 없이 조잘대던 동생이 떠나니 박완서는 허전했나 봅니다. 그래서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불쑥 나옵니다. 박완서는 묘한 결정을 하죠. 사촌동생이 그립지만 그리움을 간직하기 위해서 동생이 살고 있는 섬에 가지 않고 싶다고 말하며 글은 끝납니다. 

 

 

그래서 제목이 "그리움을 위하여"입니다.

 

사촌동생이 재혼을 한 것이 잘 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각자의 기준에 따라서 판단하겠지만요. 일단 사촌동생이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해하니 좋은 일인 듯싶습니다. 이후에 일이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일단은 잘 된 일인 것 같아요. 사촌동생을 섬으로 떠나보낸 것은 사촌동생의 결정인 것 같지만 사실은 소설을 쓴 작가의 결정이죠. 사촌동생을 떠나보냅니다. 삼십여 년을 함께 한 남편이 죽고 나서 환갑이 지난 나이에 칠십이 넘은 할아버지와 재혼하겠다는 동생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박완서의 선택은 동생을 보내 주는 것이지요. 

 

나이 들어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고 핀잔을 줄 수도 있겠지만 박완서의 선택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육십 대의 할머니와 칠십 대의 할아버지의 결혼 생활을 무채색이 아닌 오색찬란한 색깔로 표현합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도 춥지 않은 남해의 섬, 노란 은행잎이 푸른 잔디 위로 지는 곳, 칠십에도 섹시한 어부가 방금 청정해역에서 낚아 올린 분홍빛 도미를 자랑스럽게 들고 요리 잘하는 어여쁜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풍경이 있는 섬, 그런 섬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에 그리움이 샘물처럼 고인다.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저는 남해의 섬에 살지는 않았지만 노란 은행잎이 푸른 잔디 위로 지는 곳에서 6년 정도 살았습니다. 그런데 푸른 잔디 위로 낙엽이 떨어지는데 한 번도 그것을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네요. 그것이 낯선 장면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저의 무딤을 박완서 작가의 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아, 그것은 보기 힘든 장면이었구나. 계절이 지나서 기온은 떨어지고 있지만 땅은 따뜻하다는 걸 의미했구나, 하고 깨달았죠. 일단 작은 고마움을 전하고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생각을 더 했는데요. 그리움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움을 해소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그리움을 남겨 두는 것이 좋을지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보고 싶으면 봐야 하는 것인데 보고 싶은데 안 보고 참고 있으면 더 좋은 점이 있을까요?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으면 뭐가 좋을까요? 생각해 보면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좀 독특합니다. 기쁨이나 슬픔은 점점 옅어지잖아요. 아무리 기쁜 일이 있어도 몇 시간씩 기쁨이 지속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정말 슬픈 일도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그리움은 아니네요. 누군가를 그리워하면 그리고 그 감정이 해소되지 않으면 그리움은 더해갑니다. 어쩌면 그리움이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메마르지 않은 감정 중에 하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쁨이나 슬픔은 메마를 수 있어도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한 번 생긴다면 그리고 그리움의 대상을 볼 수 없다면 그 감정은 점점 더 깊어집니다. 그리움을 놔두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네요. 감정이 살아있게 만드는 숨구멍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운 것, 그리운 순간, 그리운 사람이 있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네요. 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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