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한국단편소설] 불타오르네 소나타_김동인 「광염소나타」

설왕은 2020. 2. 11. 10:52

 

「광염소나타」는 김동인(1900-1951)이 1930년에 중외일보에 발표한 단편 소설입니다. 저는 김동인의 작품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요. 첫 번째 이유는 "감자" 때문이었습니다. "감자"는 좋은 소설이지요. 하지만 시대 상황이 너무 우울하고 암울한 시대 상황으로 인해 생존하기 위한 선택을 하고 또 그 선택이 자신에게 결국 더 나쁜 결과를 가지고 오는 이런 식의 악순환을 무기력하게 쳐다봐야 하는 것이 싫어서 그의 작품을 피했습니다.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시대상을 반영하는 소설을 쓴다면 결국 "감자" 같은 소설을 또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김동인의 소설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광염소나타」라는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광염이라는 수식어가 너무 낯설고 기괴하게 들렸습니다. 광염이라는 단어를 듣고 좋은 상상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그것은 또한 "감자"나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와도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기도 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김동인

 

그런데 왜 이 소설을 읽어 보았냐면요. 광염이라는 단어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빛과 소금'을 '광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빛 광'에 '소금 염'을 써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요. 혹은 소금과 빛의 순서로 해서 염광이라고 말하기도 한답니다. 저는 이 단어를 듣고 또 왜 굳이 이것을 중국글자말로 바꿔서 염광 혹은 광염이라고 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빛과 소금이라고 해도 될 텐데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너무 별로여서요. 그런데 이 말을 듣고 「광염소나타」가 떠올랐습니다. 「광염소나타」는 '빛과 소금 소나타'라는 뜻을 수도 있을까? 이런 단순한 호기심으로 소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을 두 쪽 정도 읽으니 「광염소나타」에서 광염(狂炎)은 빛과 소금이 아니라 "미친 듯이 타오르는 불길"이라는 뜻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BTS의 "불타오르네"와 비슷한 제목이었습니다. 아마 우리말로 하면 "불타오르네 소나타"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광염소나타」의 시대 상황도 그리 좋지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 상황이 드러나 있지는 않고, 이야기를 전해 주는 주인공 K씨나 천재 피아니스트 백성수를 힘과 권력으로 괴롭히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가난이 문제입니다. 가난으로 인해서 주인공 백성수는 여러 가지 비참한 상황을 겪게 됩니다. 아무리 잘 사는 사회라도 가난한 사람은 있게 마련이니까 굳이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 상황을 탓할 필요는 없어서 읽는 데 많이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줄거리는 간단하고 일어나는 사건도 그리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백성수라는 인물이 매우 엽기적인 인물로 나옵니다. 광염소나타를 작곡한 사람은 바로 백성수인데요. 한 마디로 천재 음악가입니다. 그의 아버지도 천재 음악가였으나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고 맙니다. 가난한 가족이 있고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 혼자서 아들을 키웠다면 그 가족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는 뻔히 보입니다. 그래도 백성수의 어머니는 아들을 올바르게 키우려고 노력했고 어머니의 노력 덕분에 백성수는 그 안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광포한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청년으로 잘 자랍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병에 걸려 죽는 과정에서 백성수는 범죄를 저질러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 천추의 한을 품습니다. 결국 자신의 딱한 사정을 야멸차게 무시했던 이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해 그 집을 불태웁니다. 그 집이 불타오르는 것을 보자 백성수 안에 잠자고 있던 광포한 천재 예술성이 발현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날 밤 백성수는 "광염소나타"를 작곡해서 연주해 냅니다.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음악평론가 K 씨는 백성수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가 작곡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데요. 문제가 있었습니다. 백성수는 불을 질러야 작곡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시체를 훼손하고 사람을 죽이는 행동을 해야 작곡을 할 수 있는 지경에 이릅니다. 결국 백성수는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음악평론가 K 씨가 그 이야기를 사회 교화자에게 전달하며 질문을 합니다. 탁월한 예술 작품을 위해서 악행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사회 교화자는 교화자의 입장에서 대답을 하지요. 하지만 K 씨는 이렇게 말하며 소설은 끝이 납니다. 

 

"사실 말이지 백성수의 그새의 예술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의 문화를 영구히 빛낼 보물입니다. 우리 문화의 기념탑입니다. 방화? 살인? 변변치 않은 집개, 변변치 않은 사람개는 그의 예술 하나가 산출되는 데 희생하라면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천 년에 한 번, 만 년에 한 번 날지 못 날지 모르는 큰 천재를, 몇 개의 변변치 않은 범죄를 구실로 이 세상에서 없이하여 버린다 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 아닐까요. 적어도 우리 예술가에게는 그렇게 생각됩니다." 

 

음악평론가 K씨가 제일 존경하는 베토벤

 

작가의 질문에 대답을 하여야 하나, 싶을 정도로 뜨거운 화두를 하나 던져 주는 소설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제일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단순하게 대답할 수도 있겠고요.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남을 수 있는 작품, 또 그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심지어는 어떤 영혼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줄 수도 있는 작품을 창조해 내고 싶은 사람의 관점에서는 충분히 K 씨처럼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논술 문제도 아니고 굳이 답변을 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K 씨의 입장도 꽤 설득력이 있다는 정도는 생각하고 넘어가야 하는 소설입니다. 결국 한 사람이 삶의 가치, 세상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K 씨의 질문은 그만두고, 제가 이 소설에서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K 씨가 "광염소나타"를 들으면서 그 느낌을 적은 문장이었습니다. 

 

"좀 급속도로 시작된 빈곤, 거기 연하여 주림, 꺼져 가는 불꽃과 같은 목숨, 그러한 것을 지나서 한참 연속되는 완서조의 압축된 감정, 갑자기 튀어져 나오는 광포, 거기 연한 쾌미 홍소, 이리하여 주화조로 탄주는 끝이 났습니다. 더구나 그 속에 나타나 있는 압축된 감정이며 주림 또는 맹렬한 불길 등이 사람의 마음에 주는 그 처참함이며 광포성은 나로 하여금 아직 '문명'이라 하는 것의 은택에 목욕하여 보지 못한 야인을 연상케 하였습니다."

 

 

제가 이 문장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정말 음악에 이런 것들이 있나'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김동인 작가는 이런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글을 썼겠죠? '왜 나는 그런 것들을 느끼지 못할까?'라는 질문과 함께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음악을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이지요. 만약 음악을 들으면서 K 씨가 묘사하는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백성수를 옹호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어렴풋하게 짐작해 봅니다. 

 

저는 백성수를 정신병원에 가두어야 하는지 아니면 계속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싶지 않습니다. 결국 이 소설을 읽으며 제가 느꼈던 것은 이런 것이었죠.

 

세상에 내가 모르는 좋은 것들이 많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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