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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단편소설] 안톤 체호프 "우수"_소시오패스들의 세상

설왕은 2021. 12. 24. 18:01

"우수"는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안톤 체호프가 쓴 단편소설입니다. 왜 굳이 제목을 우수라고 했을까요? 슬픔이라고 해도 될 것을. 이 소설은 요나라는 마부가 아들을 잃고 난 후에 자신의 슬픈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서 나중에 말에게 그 슬픔을 토로한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온 사람들은 참 이상합니다. 요나의 아들이 죽었다고 하는데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하긴 요나도 좀 이상하기는 합니다. 마차를 타는 손님은 자신이 모르는 사람인데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고 말을 하니까요. 생판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나에게 자기 아들이 죽었다고 말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얘기를 들어주자니 모르는 사람 이야기이고 안 들어주자니 그것도 별로일 것 같습니다. 여하튼 이 소설에 나온 사람들은 다들 요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이 없습니다. 그나마 첫 번째 손님이 "왜 죽었지?" 하고 물었지만 실제로 그 이유를 듣고 싶어서 물어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자동반사 같은 것이었죠. 두 번째 손님은 "사람은 다 죽게 마련이야"라고 말했고 세 번째로 말을 걸려고 시도했던 젊은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체호프는 19세기 후반 사람인데, 그 당시에도 소시오패스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소시오패스가 이슈가 될 때도 있어서 공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큰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데 그 당시에는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지금보다 공감 능력이 더 좋았을지 아니면 더 나빴을지 할 수만 있다면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연구일 것 같습니다. 만약 이 소설에 나온 장면들이 그 당시의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였다면 지금보다 소시오패스가 더 많았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무시무시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까지 사람에게 관심이 없을 수 있다니요. 아무리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아들이 죽었다면 잠깐 동안만이라도 함께 슬퍼해 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요나는 매우 말을 하고 싶어 합니다. 

 

젊은이가 물을 마시고 싶었던 것처럼 그는 말을 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 아들이 죽은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그는 아직 누구에게도 아들의 말을 마음껏 하지 못했다. 말하려면 모든 걸 털어놓아야 한다. 어떻게 별에 걸렸고, 어떤 고통을 겪었으며, 죽기 전에는 뭐라고 말했는지, 또 죽을 때는 어떠했는지, 이 모든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장례식 광경과 죽은 아들의 옷을 찾으러 병원에 갔을 때의 일까지 말해야 한다.  

 

 

요나는 이렇게 말을 하고 싶어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받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말을 찾아가서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사람이 참 이상하죠? 말을 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올 리는 만무하고요. 슬픈 이야기를 꺼내면 다시 또 슬퍼질 것 같은데도 사람들은 슬픈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 합니다. 요나는 모르는 사람에게라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도 아주 자세하게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같습니다.  그만큼 그가 가지고 있는 슬픔을 담고 있기가 괴로웠던 것이겠지요.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슬픔은 옅어지거나 견딜 수 있는 힘이 더 생기기도 합니다. 

 

체호프가 과장해서 쓴 소설이겠지요? 만약 정말 이 소설에 나온 사람들과 같은 이들과 산다면 그것 자체가 슬픈 일일 것 같습니다. 아들이 죽어서 슬픈 것보다 그 슬픔을 나눌 수 없는 세상이 더 슬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체호프가 그런 의미로 제목을 '우수'로 정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이 내 슬픔을 누구에게 하소연하리...."

 

슬픔을 하소연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 정말 슬픈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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