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나

[철학하나] 플라톤의 동굴 비유_국가론 제 7권 "선의 이데아와 이상국가"

설왕은 2022. 7. 6. 18:20

플라톤의 철학 이론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동굴 비유이다. 아마 플라톤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동굴 비유'를 한 번쯤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는 "국가론"의 제7권에 나온다. 국가론은 열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 일곱 번째에서 동굴 비유가 등장한다. 국가론의 제7권은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시작한다. 

 

어떻게 하면 선의 이데아에 이를 수 있는가? 선의 이데아가 무엇인지 설명한 소크라테스는, 연이어 그것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동굴의 비유는 사람이 인지하는 세계란 진짜 세계가 아니라 진짜 세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비유로 주장하는 이론이다. 동굴의 비유를 철저하게 따지고 들면 문제로 삼을 만한 것이 많다. 플라톤의 이론이 보통 다 이런 식인데 정교함이 좀 떨어진다. 동굴의 비유가 유명하고 이해가 잘 되는 비유이기는 하나 정교하게 제안된 이론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플라톤이 전달하고자 하는 요점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세계는 진짜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진짜 세계는 동굴 밖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짜 세상, 달리 말하면 이데아의 세상이 '있다'는 주장이다. 

 

국가론에 나온 동굴의 비유를 그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만일 인간이 다음과 같은 지하동굴에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세. 동굴 안쪽에 죄수들이 앉아 있는데 그들의 사지와 목은 어렸을 때부터 묶여 있네. 그러므로 꼼짝도 못하고 안쪽의 벽면만 바라볼 수밖에 없지. 그들 뒤쪽의 동굴 입구에는 횃불이 타오르고 있고 이 횃불과 죄수들 사이에는 담장 비슷한 것이 세워져 있네. 담장 비슷하다는 것은, 담장이긴 하지만 그 생김새가 인형극을 할 수 있는 공연 무대의 휘장과도 같다는 뜻이지. 공연하는 사람이 관객들에게 이 휘장 위로 인형들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은 구조를 지녔다고 상상하면 되네. (198-199)

 

 

 

그렇다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그림자밖에 없다. 그러나 그림자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움직이기도 하고 소리를 내기도 한다. 물론 그림자 자체가 움직이고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고 소리를 내는 것은 실제로는 따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림자 밖에 볼 수 없는 사람은 그림자가 그 실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족쇄가 풀린다면 어떻게 될까? 족쇄가 풀린 사람은 그림자도 볼 수 있고 실물도 볼 수 있고 횃불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림자가 실재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실물을 본다고 하더라도 그림자와 실물 중 어느 것이 실재인지 혼란스러워 할 수 있다. 족쇄가 풀려서 동굴 안을 둘러볼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변화이지만 사실 진짜 세계는 동굴 안이 아니라 동굴 밖이다. 그것은 바로 이데아의 세계이다. 

 

인식되는 영역에서 보게 되는 선의 이데아는 고심해야 겨우 볼 수 있는 것인데 이는 모든 아름다움의 원인이네. 또한 눈에 보이는 영역에서 빛과 이 빛의 주인을 낳는가 하면, 지적 영역에서도 그 자신이 주인이 되어 진리와 지성을 공급하는 것이지. 무릇 이성적으로 행동하려는 자라면 이 이데아를 보아야 할 것이네. (202)

 

 

플라톤의 동굴 비유는 좀 억지스럽다. 왜 인간을 족쇄가 채워진 채 동굴 안에 갇힌 존재로 묘사했을까? 플라톤은 인간의 육체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이데아의 세계를 극단적인 이상향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부작용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단점이나 모순 또는 부조리에 주목해서 현실 세계의 열등함을 강조하게 된다. 세상은 좋은 것으로 판단해야 할까, 나쁜 것으로 판단해야 할까? 세상이 대체로 좋은 곳이고 사소한 단점이 존재한다면 옥에 티가 있는 정도일 것이다. 플라톤은 아마 세상이 옥에 티가 좀 묻어 있는 것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것을 실제로 세상이 부족한 부분이 많은 곳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플라톤이 티에 집중해서 그럴 수도 있다. 플라톤이 '티'에 집중하는 이유는 플라톤은 완전한 '옥'을 꿈꾸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순이나 한계를 묘사할 수 있는 많은 비유가 가능한데 플라톤이 동굴 비유를 제시한 이유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굴에 갇혀 있는 사람이 있고 동굴 밖의 세상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동굴 밖의 세상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임무가 있다. 그것은 바로 동굴에 갇혀 있는 사람을 동굴 밖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도자의 역할이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가 국가론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국가 지도자는 동굴 밖의 세상을 아는 사람이고 그 지도자의 역할은 사람들을 동굴 밖으로 이끄는 것이라는 주장을 동굴 비유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보통의 다른 지배자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줄 수 있어야 하네. 그래야만 부유한 자가 국가를 지배할 수 있고 기강을 바로 세울 수 있네. 부유한 자란 재물이 많은 자가 아니라 덕과 지혜가 풍부한 자를 의미하지.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국가를 지배하게 되면 그들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혈안이 돼 있어 국가의 기강은 무너지고 정치는 실종될 걸세. 그렇게 되면 그들 자신은 물론 나라도 망하겠지. (205-206)

 

 

이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지도자는 정치적 야심에 초연한 철학자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플라톤은 주장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동굴에서 이끌어 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플라톤은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교육을 통해 이데아의 세상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떤 교육을 해야 사람들이 이데아의 세상을 눈치챌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수학이다. 

 

이를테면, 하나 둘 셋 하는 것이지. 수학의 세계가 그것이네. 수학은 모든 학문과 기술의 공통된 언어라고 할 수 있지. (207)

 

무릇 통치자들이라면 수학을 배우도록 해서 이성적 활동을 도모해야지. 수학은 참으로 유용한 학문이네. 장사꾼의 심정으로 익히기보다는 철학자의 정신으로 숭상해야 해. 추상적인 수를 논하게 되면 사물의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네. (210)

 

 

국가 지도자가 수학을 잘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수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독특하다. 나는 동굴 비유에서 여기까지 끌고 나가서 수학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나 정치인은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철학자나 정치인이나 모두 수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스스로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플라톤은 국가지도자는 수학을 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학문으로 무엇이 있을까? 플라톤은 기하학을 두 번째로, 천문학을 세 번째 과목으로 지정한다. 네 번째는 추리 능력을 기르기 위한 변증론이다.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그렇다면 이런 교육을 어떻게 실행해야 하고 몇 살 때에 실시해야 할까? 플라톤은 교육은 억지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교육을 강제해 노예적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지. 억지로 시켜서는 안 되네. 어릴 때의 학습은 오락처럼 이루어져야 하며, 그래야만 타고난 소질을 파악해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으니까 말이네. (217)

 

그리고 이런 교육은 스무 살쯤이 좋다고 말한다. 플라톤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교육을 너무 빨리 끝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스무 살쯤에 교육을 마친다. 대학을 가도 대충은 20대 초반이면 교육이 끝이 난다. 그런데 플라톤은 이때에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서른 살쯤에 시험을 보고 그에 따른 명예를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플라톤은 교육에 있어서 한 가지 경계해야 할 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바로 변증술을 너무 빨리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위험한 장난감과 같은 것이어서 어린 사람이 그것을 배우면 이것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논리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받고 실무 경험을 쌓아서 쉰 살 정도 되어야 국가 통치자가 될 수 있다고 플라톤은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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