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나

반증주의란 무엇인가?_칼 포퍼

설왕은 2021. 5. 4. 09:59

증거가 많으면 진리다?

20세기 초반에 칼 포퍼(1902-1994)는 반증주의라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포퍼는 반증주의를 통해서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려고 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반증주의는 반증을 할 수 있어야 과학이라는 것입니다. 반증주의는 검증주의, 또는 실증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보통 어떤 이론은 그것의 증거가 있으면 그 증거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증거가 많을수록 그 이론의 신뢰도가 더 높아진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리고 이렇게 경험을 통한 사례를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을 과학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포퍼는 이것에 대해 반대합니다. 아무리 증거가 많아도 명제나 이론을 믿을만하다고 판단하지 못할 수도 있고 이런 것을 과학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귀납 추론에는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이 "철학의 문제들"이라는 책에서 귀납 추론의 오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제일성(일정한 반복)에 근거하여 이렇게 만들어진 모든 엉성한 예기들은 잘못된 길로 인도하기 쉽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병아리에게 매일 먹이를 주는 사람은 궁극에 가서는 그 병아리의 목을 비틀게 된다." (철학의 문제들, 102)

 

 

병아리는 주인이 들어올 때마다 먹이를 얻기 때문에 그를 반가워할 수 있지만 결국 어느 날에는 그 주인에 의해 목이 비틀려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인데요. 이와 같이 경험이 반복되고 증거 사례가 많다고 하더라도 어떤 이론이 반드시 진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근거에 의하면 과학 이론은 근본적으로 보편성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례를 다 검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증거 사례가 많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례를 다 검사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과학 이론은 근본적으로 뒤집힐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모호한 이론일수록 증거 사례를 모으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동쪽에서 귀인을 만날 것이다"라는 문장을 보죠. 매우 모호한 문장입니다. 방향의 관점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동쪽에서 만나거나 혹은 서쪽에서 만납니다. 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우 모호한 표현이라서 어떤 사람을 귀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한정 짓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동쪽에서 귀인을 만난다는 표현은 실증 사례를 발견하기 매우 좋은 문장이죠. 이론이나 문장이 애매모호하면 그에 대한 증거 사례를 모으기 쉬운데 그렇다고 그 이론이나 문장이 가치가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포퍼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주장하면서 빛이 태양 근처를 지날 때 태양의 중력장으로 인해 그 경로가 휘어질 것이라고 예측했고 만약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자신의 이론은 틀린 것이라고 말을 했는데 아인슈타인의 이런 태도에 의해서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포퍼는 이렇게 반증할 수 있는 사례를 내세울 수 있어야 그것을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포퍼는 과학 이론은 신기한 예측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마르크시즘과 정신분석에 대한 비판

포퍼의 반증주의는 마르크시즘과 정신분석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사회학과 심리학 이론을 과학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포퍼는 '아니요'라는 답변을 주고 있는 것이죠. 마르크시즘과 정신분석을 과학적인 이론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귀납법을 통해 경험적 근거로 이론을 만드는 과학처럼 마르크시즘과 정신분석도 수없이 많은 증거 사례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모두 그들의 이론을 과학 이론처럼 제시했습니다. 포퍼는 이론에 대한 증거 사례가 많다고 그 이론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어떤 이론이 그 이론을 지지하는 사례를 찾는 것이 매우 쉬울 수 있는지 분석합니다. 

 

마르크스(1818-1883)와 프로이트(1856-1939)가 한참 활동하던 당시를 생각해보면 이들이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그들의 이론을 발전시켰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17세기부터 속도를 내던 과학의 발전은 멈출지 모른 채 계속 가속되었습니다.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세계관은 기계론적 세계관입니다. 세상은 기계처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계처럼 돌아간다고 믿었죠. 19세기 다윈의 진화론이 좀 묘한데요. 진화론은 기계론적 세계관을 가속화시키면서 동시에 일종의 균열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 것인 1859년입니다. 다윈의 진화론도 역시 기계론적 이론입니다. 당연히 마르크스나 프로이트도 비슷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연만 기계 같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분인 개개인 인간도 그리고 인간 사회도 기계처럼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포퍼는 마르크시즘과 정신분석의 문제는 사건 발생을 예측하지 않으면서 과거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설명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신기하게도 마르크시즘과 정신분석은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 뭐든지 설명이 가능하고 이들의 이론에 반박하는 이론은 뭐든지 공격이 가능합니다.

 

제임스 래디먼의 설명

제임스 래디먼은 "과학철학의 이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19세기에 영국은 노동자의 안전과 복지를 확보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었는데 이는 지배계급이 노동자 계급의 안녕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마르크스의 이론에 위배되는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시즘은 지배계급의 이러한 행동이 임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지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정신분석의 경우는 서로 상반된 사건에 대해서도 같은 근거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를 죽이려고 물에 빠뜨리는 사람의 행동과 어린아이의 생명을 구하려고 물속에 뛰어들어가는 사람의 행동을 같은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은 열등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알프레드 아들러(1870-1937)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모두 열등감을 그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첫 번째 경우는 열등감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한 행동으로 설명하고 두 번째 경우는 열등감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지만 자신이 어린아이의 생명을 구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포퍼는 정신분석이 말하는 사건 발생의 원인은 너무 일반적이어서 특정한 행동과 항상 양립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소련이 무너졌기 때문에 마르크시즘을 신봉하는 사람은 거의 사라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신분석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는 여전합니다. 인간의 행동에 대해 설명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 설명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뉴턴의 중력 이론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같은 과학 이론은 아닙니다. 포퍼는 검증된 과학 이론, 포퍼 식으로 말하면 반증 가능한 과학 이론은 신기한 예측이 가능하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정신분석을 통해서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똑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완전히 반대의 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반증주의란? (간단히)

포퍼는 반증주의를 통해서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구분하려고 합니다. 반증이 될 수 있는 사례를 내세우고 그 반증이 가능하다면 이론을 철회할 수 있어야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과학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이론에 대해서 반증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이론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과학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참고서적

버트런드 러셀 "철학의 문제들"

제임스 래디먼 "과학철학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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