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리고시

[시]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내 눈을 못 보게 하여도" (1901)_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설왕은 2023. 2. 9. 09:00

내 눈을 못 보게 하여도

 

내 눈을 못 보게 하여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어요
내 귀를 막아도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요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어요
입이 없어도 당신을 부를 수 있어요
팔을 부러뜨려도 당신을 붙잡을 것이니
마치 손으로 하듯 심장으로 할 거예요
심장을 멈추게 하면 뇌가 고동칠 것이고
당신이 나의 뇌에 불을 놓으면
당신을 내 피에 담아 흐르게 할 거예요.

 

사랑을 어떻게 멈추게 할 수 있을까? 그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면 아무것도 그것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멈출 수 있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말자. 그대가 나에게 해를 가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대를 사랑할 것이니. 그대가 나를 파괴해도 내 피에 그대를 담을 것이니. 그대가 나를 파괴하더라도 내 사랑을 파괴할 수는 없다. 사랑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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