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소설이라는 소개를 받고 미나토 가나에의 "백설공주 살인사건"을 읽게 되었습니다.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백설공주'라 불리는 누군가의 죽음과 그 범인을 찾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예상은 맞았습니다. 하지만 소설의 독특한 구성 방식 때문에 초반에는 몰입하기가 다소 어려웠습니다.
독특한 구성, 초반 몰입의 걸림돌?
소설 초반부는 가노 리사코라는 인물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문제는 이 전화 내용이 일방적인 독백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마치 제가 전화를 받는 당사자가 된 것처럼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몰입이 쉽지 않았습니다. 리사코와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 화자였다면 조금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일본인 화자라는 점 때문에 어느 정도 거리감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구성 방식은 신선하면서도 초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이 소설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사건의 개요와 용의자, 그리고 언론의 역할
소설은 한 화장품 회사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미키 노리코라는 직원이 시구레 계곡에서 흉기에 찔리고 불에 태워진 채 발견됩니다. 주요 용의자는 피해자의 직장 동료인 시로노 미키로 지목됩니다. 프리랜서 기자 아카호시 유지가 취재 내용을 SNS에 올리고 주간지에 기사를 게재하면서 사건은 순식간에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얻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저마다의 추리를 펼치고, 대부분 시로노 미키를 범인으로 확신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보세요, 아직 안 잤어? 자고 있었다고? 그럼 당장 일어나. 문자로 끝낼 얘기가 아니야. 물론 긴급, 중대 뉴스지. 너 아니? 나 오늘 난생처음으로 경찰서에 가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어. 교통 위반이냐고? 그런 시시한 일이 아니야. 그리고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니고. 시구레 계곡에서 일어난 사건 말이야. (9)
추리 소설의 틀을 벗어난 이야기
이 소설은 전통적인 추리 소설의 형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탐정이 등장하여 사건을 조사하고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중심이 되는 일반적인 추리 소설과는 달리, "백설공주 살인사건"은 기자가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따라서 독자는 능동적으로 범인을 추리하기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됩니다. 물론, 독자 나름대로의 추론은 가능하지만, 소설 자체가 추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습니다.
미나토 가나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미나토 가나에는 이 소설을 통해 언론에 의한 사회적 담론 형성의 문제점과 경험의 주관성에 대해 비판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언론이 특정 인물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는 순간,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그 인물이 범죄를 저지를 만한 동기나 성격이 있는지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됩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독자 역시 자연스럽게 시로노 미키가 범인일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됩니다. 물론 반론도 존재하지만, 대세를 거스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양한 시각, 왜곡된 진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도저히 범인을 추리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흥미로웠던 점은 시로노 미키라는 평범한 인물이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층적이고 복잡한 존재입니다. 가장 평범해 보이는 사람조차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 역시 사람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관점에 따라 대상에 대한 분석과 판단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로노 미키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 이상하다고 판단하는 사람, 심지어 사악한 면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까지, 각자의 관점에서 그녀를 이해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독자는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시로노 미키를 저주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해석하는 부분은 매우 독특했습니다. 그녀를 거의 마녀처럼 취급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일본 특유의 정서가 반영된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물론 개인의 믿음은 자유이지만, 살인 사건이라는 중대한 문제에 이러한 편견을 개입시키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되는 시로노 미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다음은 시로노 미키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입니다.
저는 제 과거를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괴롭힘을 당한 아이였을까요. 집념이 강하고 음흉한 여자였을까요. 제게 저주의 힘이 있었나요. 학창 시절에 아이들에게 미움을 받았나요. 친구라고 할 만한 존재가 있었나요. 자신의 기억으로 구성된 과거와 타인의 기억으로 구성된 과거. 과연 어느 쪽이 옳을까요. (206)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그렇다면 과연 미키 노리코를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요? 사실 이 소설에서 범인은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독자로서는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내용만으로는 범인을 알아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 모두 자신의 처지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야기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의 핵심은 한 사람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왜곡될 수 있고,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시로노 미키가 혼란스러워했던 이유는 자신이 이해하는 자신과 타인이 이해하는 자신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만약 주변의 모든 사람이 나를 A라고 생각하고, 나는 나를 B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나는 A일까요, B일까요? 우리는 과연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나를 A라고 이해한다면, 나는 결국 A가 되는 것일까요? 시로노 미키의 질문은 이러한 존재론적인 고민으로까지 확장됩니다. 그녀의 기억 역시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무작정 그녀의 편을 들 수도 없습니다.
범인을 알고 나서 다시 책을 읽어보면, 인터뷰 내용들이 다르게 해석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시로노 미키일까요? 아니면 그녀를 가장 확신에 차서 범인이라고 이야기했던 사람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인물일까요? 직접 읽어보시고 판단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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