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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수유너머N, 사랑 고전으로 생각하다

설왕은 2019. 3. 8. 22:16

"사랑 고전으로 생각하다"는 제목처럼 고전을 통해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는 책입니다. 수유너머 N에서 다섯 명의 저자의 글을 한 권으로 묶어 낸 책입니다. 


차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진정 사랑해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 /플라톤 "뤼시스"/ 박준영

2. 너를 사랑하는 것이 왜 나를 사랑하는 것이 될까?/ 스탕달 "적과 흑"/ 박남희

3. 사랑은 왜 증오와 함께 할까?/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오영진

4. 개인을 넘어서는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이광수 "무정"/ 황지영

5. 사랑도 배워야 할까?/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정우준


차례를 봐도 알겠지만 1장은 철학자의 글, 2, 3, 4장은 소설, 5장은 정신분석학자의 글을 통해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분석한 글입니다. 사랑의 관점에서 바라본 다섯 권의 책에 대한 독서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전을 통해 사랑에 대해 숙고해 본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사랑은 최근에 생긴 것이 아니죠.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났을 때부터 사랑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을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확실한 대답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과학 기술의 영역에서는 분명히 발전한 것이 맞습니다. 또한 민주주의의 역사도 발전했죠. 그러나, 사랑의 역사는 발전했는지 의문입니다. 사람들은 옛날에 비해서 지금 더 사랑을 잘 알고 사랑을 잘 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글쎄요.


저는 다섯 개의 글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글은 세 번째 "폭풍의 언덕"에 관련된 글이었습니다. 두 번째 글도 스탕달의 적과 흑도 생각해 볼만한 주제였습니다. 이상형을 찾고 이상형을 사랑하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요. 일리가 있는 지적입니다. 반면에 나머지 세 글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글은 철학자의 생각 놀이, 말 놀이 측면이 강해서 논리 자체도 복잡하고 그리 공감이 가지 않았고요. 네 번째 이광수의 무정은 일제 강점기라는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서 소설의 결말이 너무 계몽적으로 흘러가는 바람에 그에 대한 분석 역시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습니다. 다섯 번째 사랑의 기술은 설명이 원래 책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사랑의 기술을 다시 읽어 보고 독서평을 썼는데요. "사랑의 기술"은 단순한 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어려운 책도 아닙니다. 여기 나온 설명이 원저보다 쉽지가 않네요.  



두 번째 글을 읽고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다시 읽어 보고 싶었습니다. 고전을 읽게 되는 시점이 보통 청소년 시기나 대학교 때죠. 저도 정말 오래 전에 이 책을 읽어서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읽어야 하니까 읽은 것이지 재미로 읽거나 훌륭한 작품이라고 스스로 평가하고 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사랑을 경험하고 보니 소설을 읽을 때 느낌이 예전과는 전혀 다르기도 합니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증오와 뒤엉켜서 나타납니다. 실제로 사랑이 그런 것 같습니다. 온화하고 점잖고 따뜻한 모습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그런 사랑을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불과 같이 뜨겁고 위험해서 사랑하는 자신과 사랑받는 사람을 집어삼킬 정도의 파괴력을 발휘하기도 하죠. 뜨거운 사랑은 좋은 것이지만, 동시에 위험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언제 사랑이 증오로, 혹은 증오가 사랑으로 바뀌는 것일까요?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요? 조절할 수 없다면 그 변화 시점을 미리 알 수 없을까요? 증오도 사랑이라면 증오를 증오할 필요가 있을까요? 언제 꼭 시간을 내서 "폭풍의 언덕"을 찬찬히 읽어 보고 싶습니다. 


저는 사랑의 기술에 나온 에리히 프롬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사랑도 기술이라서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배워야 합니다. 사랑을 배우지 않으면 제대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랑할 수 있는 선천적인 능력이 별로 없습니다. 마치 언어를 배우듯 사랑을 배워야 하는데요. "사랑 고전으로 생각하다"도 분명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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