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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디트리히 본회퍼『신도의 공동생활』

설왕은 2019. 3. 15. 15:39


디트리히 본회퍼 『신도의 공동생활』 문익환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8)


본회퍼(1906-1945) 목사님은 나이 마흔도 채 되기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었지만 히틀러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미국유학생활을 접고 독일로 다시 귀국했습니다. 결국 반나치운동을 통해 히틀러 정권에 맞서 싸우다가 나치 정권이 무너지기 며칠 전 게쉬타포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짧은 활동 시기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글과 그가 행동으로 보여준 그리스도인의 삶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책 "신도의 공동생활"은 고 문익환 목사님께서 번역하신 책입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에 자신의 삶을 헌신하시다가 여러 차례 투옥되기도 하셨습니다. 불꽃 같이 살다간 두 사람을 통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은 읽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본회퍼와 문익환 목사님의 관심 사항이 겹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신도의 공동 생활"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것도 혼자가 아닌 타인과 함께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차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공동 생활

  2. 남과 함께 사는 하루

  3. 홀로 있는 날

  4. 섬김

  5. 죄의 고백과 성만찬


1장 "공동 생활"에서는 신도의 공동 생활의 구체적인 원리를 밝히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회퍼가 제시하는 원리는 간단합니다. 


"보라, 형제끼리 한마음으로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좋고 즐거운고!" 이것이 말씀 아래서 함께 사는 생활을 찬양하는 성서의 말씀입니다. '한마음으로'라는 말을 바로 해석하면, "형제들이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고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48)


사실, 이 원리는 너무 단순해서 본회퍼가 과연 얼마나 사람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봤는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그리스도인들끼리 모이는 교회에서 우리는 많은 실망과 배신감을 느낍니다. 예배만 드리고 집에 가는 교인들이 점점 늘어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죠. 그러나 본회퍼는 형제에게 환멸을 느낄 때가 오히려 기회라고 말합니다. 그는 "모든 꿈이 안개처럼 사라질 때에 그리스도인의 사귐은 동터 오게 됩니다"(34)라고 주장합니다. 본회퍼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그들을 증오하게 될 때가 바로 자신의 사랑이 실패하게 되는 때를 의미합니다. 그때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고 사랑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스도인의 형제애는 우리가 실현해야 하는 이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룩하신 현실로서 우리는 그 현실을 받을 수 있을 따름입니다." (37)



신도의 공동 생활,  즉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삶은 우리에게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본회퍼는 주장합니다. 나중에 이루어질 수도 있는 이상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충분히 받을 수 있는 현실이라고 말이죠. 


2장 "남과 함께 사는 하루"에서 본회퍼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타인과 함께 신앙 생활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지침을 내려줍니다. 구체적인 실천 사항들에 대해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함께 성경을 번갈아 가면서 읽으라든지, 함께 새노래로 찬양을 하라든지, 혹은 마침 기도는 기도문으로 하지 말고 개인의 자발적인 기도로 하라든지와 같은 구체적인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시편에 대해서도 설명해 준 부분이 제게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시편이 개인 기도가 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편 기자의 고난과 아픔의 상황이 우리와 거리가 있기 때문인데요. 본회펴는 시편 기도는 그리스도의 기도라고 생각하고 함께 읽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4장 "섬김"과 5장 "죄의 고백과 성만찬"은 신도의 공동 생활에 필요한 부분입니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말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두려움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이 같은 바른 깨달음은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하는 살인자 가인의 말과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입니다. 이것은 남의 자유를 존중하는 듯 갸륵하게 보이기는 해도 '나는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요구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134-35)


간섭과 책임 사이에서 섬김을 실천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3장 "홀로 있는 날"은 "신도의 공동 생활"이라는 책의 전체 주제와 상관이 없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본회퍼는 홀로 있는 날의 목적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홀로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고독과 침묵을 통해 성경 명상, 기도, 대도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본회퍼는 홀로 있는 날의 목적은 '사귐'이라고 단언합니다. 


홀로 있을 수 없는 사람은 사귐 앞에서 마음의 고삐를 잡으라.

사귐 안에 서 있지 않는 사람은 고독 앞에서 마음의 고삐를 잡으라. (98-99)


홀로 있을 수 없는 사람은 누군가를 사귈 생각을 하지 말고 누군가와 사귈 생각이 없는 사람은 고독의 시간을 갖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반적인 태도와는 다릅니다. 우리는 보통 홀로 있기 싫어서 누군가를 사귑니다. 혹은 타인과의 관계가 부담스럽고 힘들어서 혼자 있고 싶어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본회퍼는 홀로 있을 수 없으면 사귀지 말고 사귈 생각이 없다면 홀로 있으려고 노력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원리는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회퍼는 홀로 있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침묵'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침묵이란 단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아래서 고요한 것'을 의미합니다. 


본회퍼는 간단히 넘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그가 알고 있던 또한 믿고 있던 예수 그리스도를 글로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그의 행동으로 그리스도인을 보여 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짧은 생애 동안에 "신도의 공동 생활"이라는 책을 남겼다는 사실은 의미가 큽니다. '우리가 어떻게 타인과 함께 신앙 생활을 할 것인가?'의 주제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인 명상과 묵상 시간까지도 성도의 교제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본회퍼는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점점 더 강해지는 현대 사회에 본회퍼가 주장하고 있는 이러한 삶의 형태는 재조명되고 적어도 교회 공동체에 의해서만이라도 강력하게 추구되어야 할 삶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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