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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버트런드 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1956)

설왕은 2019. 3. 15. 21:56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20세기 대표적인 지성인 중 한 명입니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에 아주 명료하게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아마 이렇게까지 기독교에 반감을 가진 지성인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든든한 아군의 등장이었죠. 하지만,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매우 상대하기 힘들면서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적군의 출현이었을 것입니다. 이 책은 15개의 에세이를 묶어서 책으로 펴낸 것입니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그중에 하나의 에세이로 1927년 3월 6일, 전국 비종교인협회의 런던 남부지부 후원으로 강연한 내용입니다. 이 서평에서 저는 이 책의 첫 번째 글인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만을 다루겠습니다. 

 

 

러셀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종교를 매우 해로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러셀은 종교가 해로운 이유는 첫째 믿음의 성질 자체 때문이고, 둘째 해로운 신조들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러셀이 말하는 믿음이란 충분한 증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것에 대해 확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믿음의 성질 때문에, 반대 진영의 논리나 반증에 대해 눈을 감아버리고, 뿐만 아니라 그 반대쪽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기 때문에 해로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특정 신조들 예를 들어 산아 제한을 금지하는 가톨릭이나 소를 신성한 동물로 숭배하는 힌두교의 신조들도 해로운 것이라고 지적하죠. 러셀은 종교 대신에 정신의 자유를 목표로 열린 가슴과 열린 정신을 갖자고 주장합니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지금도 많은 비기독교인과 기독교인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비기독교인은 자신이 기독교를 믿을 수 없는 이유를 세련되게 정리하고 싶어서 읽는 경우가 많을 테고, 기독교인은 왜 기독교가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읽기도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으로 러셀의 주장에 어떤 식으로 대답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해 보고 싶어서 읽었습니다. 

 

러셀은 종교의 기반은 두려움이라고 주장합니다. 

 

"종교의 일차적이고도 주요한 기반은 두려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분이 온갖 곤경이나 반목에 처했을 때 여러분 편이 되어줄 큰 형님이 있다고 느끼고 싶은 갈망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그 모든 것의 기초다." (40)

 

러셀은 이제 세상에 과학도 많이 발전하고 했으니 그런 두려움을 버리라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도움 얻을 생각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힘으로 이 세상을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보자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발로 서서 공명정대하게 세상을 바라보고자 한다. 세상의 선한 구석, 악한 구석, 아름다운 것들과 추한 것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되 두려워하지는 말자. 세상에서 오는 공포감에 비굴하게 굴복하고 말 것이 아니라 지성으로 세상을 정복하자... 그러면 우리의 지성이 창조할 미래가 죽은 과거를 훨씬 능가하게 될 것임을 우리는 믿는다." (41) 

 

위의 마지막 문장이 이 에세이의 결언입니다. 아마 강연이 끝났을 때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지 않았을까요? 지성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이 강연의 마지막은 매우 감성적이고 우리의 도전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말들로 가득합니다. 감성에 호소하는 마지막 부분과 달리 이 에세이의 앞부분과 중간 부분은 논리적인 주장으로 잘 짜여 있습니다. 

 

러셀은 자신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기독교인에 대해서 정의도 내립니다. 러셀은 기독교인은 하나님과 영생을 꼭 믿어야 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정의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 증명에 대해서 간략하게 다룹니다. 제1 원인론, 자연 법칙론, 목적론, 도덕론, 불의 치유론 등을 다룹니다. 신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앞에 언급한 내용이 신 존재 증명의 방법들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이론에는 허점이 있게 마련이고요. 예를 들어 제1 원인론은 모든 것에는 존재의 원인이 있고 그것을 따려 들어가 보면 결국 존재의 1 원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다라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의 문제점은 그렇다면 하나님의 존재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부딪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격이나 그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러셀은 재기 발랄하게 비판합니다. 예를 들어 러셀은 "심판받지 않으려거든 심판하지 말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언급하며 '그럼, 판사는 예수 믿으면 안 되겠네.'라고 지적합니다. 이런 비판은 좀 가볍습니다. 그리고 러셀은 예수가 자신의 재림에 대해서 예언한 부분에 대해서는 틀렸다고 언급하고, 예수가 지옥을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도덕적인 중대한 결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여러 가지 도덕적 규율을 강요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부분은 저도 동감합니다. 특별히 교회가 강요하는 것 중에 하나가 "예배 출석"인데요. 이것은 도덕적인 규율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것 같기도 한 애매한 종교적 의무입니다. 러셀이 볼 때 이런 것은 불필요한 고통인 것이죠. 

 

이 글의 마지막 두 페이지에서 러셀은 종교의 기반과 우리의 할 일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 부분은 공감이 가는 구석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앞부분은 러셀의 명성에 비하면 글의 힘이 좀 약합니다. 정말 기독교의 모자란 부분, 약점을 후벼 파고 싶다면 니체의 안티크리스트를 읽으시면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니체는 기독교를 제대로 알고 있는 내부자로서 기독교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 줍니다. 하지만, 러셀의 비판은 피상적이고 가볍습니다. 기독교를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하긴 러셀이 기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서 잘 모를 수밖에 없겠죠. 믿음에 대해서도 너무 일차원적인 접근을 하는데요. 틸리히가 믿음에 대해 설명한 글을 읽어 봤다면 이 에세이를 수정했을 것도 같습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이 책이 나올 때쯤에 "믿음의 역동성"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러셀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신은 신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성이 최고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종교가 두려움에 기반하는 것도 일면 사실이지만 동시에 우리는 두려움을 떨쳐 내기 위해서 종교를 믿기도 하죠. 러셀의 인간에 대한 이해 역시 그리 세심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 글은 나쁜 글은 아닙니다. 하지만 러셀의 명성에 걸맞은 훌륭한 글은 아닙니다. 

 

 

수정합니다. (2019년 5월 11일 수정)

위의 내용이 틀린 부분이 있네요. 러셀이 스스로를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교회를 다녔네요. 그의 책 "행복의 정복"을 읽어보니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선천적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나는 '세상에 지친 이 몸에 죄로 된 짐을 지고'라는 찬송가를 가장 좋아했다. 내 나이 다섯 살 때... (행복의 정복, 17)

 

그러니까, 다섯 살 때는 교회를 다녔는데 그때 이미 세상의 고단함을 느끼고 있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언제 교회를 떠났는지 모르겠지만, 기독교인이었던 적이 있었네요. 

 

지금 읽어 보니 위의 서평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이것도 수정합니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 대한 저의 평가는 'Good'입니다. 단지 러셀의 명성에는 좀 모자란다는 것이죠. 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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