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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 (1966)

설왕은 2019. 3. 27. 21:10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는 에리히 프롬(1900-1980)이 1966년에 출간한 책입니다. 26세까지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던 프롬은 평생 성경과 탈무드를 즐겨 읽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프롬의 구약성서 읽기’라고 부제를 붙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프롬이 말하는 구약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주된 내용입니다.


구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서문

2. 하나님에 대하여

3. 인간관

4. 역사관

5. 죄와 회개와 관하여

6. 길

7. 시편

8. 맺는 말

9. 보론—시편 제 22편과 예수의 수난


프롬의 견해에 의하면, 신처럼 된다는 말은 인간이 자유롭고 자주적인 인간이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자유롭고 자주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신이 필요할까요? 아닙니다. 역설적으로 인간이 신처럼 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는 신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과 인간의 관계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되기 쉬운데 그렇다면 인간은 자유롭지도 않고 자주적으로 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신이 없다고 인간은 자유롭고 자주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신이 없는 인간은 우상 숭배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프롬은 십계명 중 전반부 네 개 계명의 요점을 ‘우상 숭배 금지’로 요약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요구가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명령이라고 해석합니다. 십계명을 통해서 인간은 우상 숭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프롬은 주장합니다. 이런 면에서 신이 필요한 것이죠. 프롬은 인간이 신이 되기 위해서는 신이 필요한데 결국 신처럼 되기 위해서는 다시 신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인간 역사의 발전 과정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구약성서를 바라보는 프롬의 관점도 이와 똑같습니다. 다음은 구약성서에 대한 프롬의 주장입니다.


“그 중심주제는 혈연과 지연으로 이어진 근친상간적 유대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고 또 우상숭배, 노예제도, 권력 따위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며 개인과 국가와 온 인류에게 자유를 누리게 하는 데 있다.” (14)


프롬은 하나님의 개념이 인간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는데, 아담의 질투 많은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모세의 이름 없는 하나님, 그리고 마이모니데스(1135-1204)의 신학을 통해 인간은 신을 무엇무엇이 아니라는 것만으로 알 수 있다는 ‘부정신학’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부정신학은 곧 신학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45) 프롬에게는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은 곧 우상숭배의 부정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상숭배는 폐쇄된 체계이고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은 열린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것은 죽어 있는 것의 반대이듯이 인간이 살아 있는 열린 체계를 가지기 위해서는 닫힌 체계를 부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프롬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인용합니다.


“내가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과 생사고락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요,

내가 보고 듣고

먹고 마신다는 것은

모든 동물과도 다름이 없다.

그래도 내가 내노라 하는 것은

뚜렷이 구별되는 나의 나됨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나됨은 오직 나에게 속한 것이다.

이 세상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다.

천사나 하나님이나 그밖에

어떤 다른 인간에 속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와 하나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를 제외하고는.” (73)


프롬의 신론과 인간론은 유사합니다. 프롬이 강조하는 단어는 자유와 자주입니다. 그가 정의하는 자주는 “탯줄을 끊어 버리고 홀로 선 자아에 자신의 실존을 내맡길 수 있는 능력”입니다.(87)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인간이 과연 철저하게 홀로 설 수 있을 것인가에 의문을 품습니다. 그래서 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것들을 끊어 버리고 타인에게 굴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결국 궁극적으로 인간은 신을 배제하는 지점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프롬은 주장합니다. 신이 인간에게 배제당해도 신은 괜찮을까요? 프롬에 의하면, 신은 인간에게 정복당할 때 오히려 행복해 한다고 합니다.


"인간이 자립적일 수 있고, 하나님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 즉 하나님이 인간에 의해 패배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도리어 기쁘게 만들었다. <탈무드> 역시 같은 의미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정복당할 때 불행할 수밖에 없으나 거룩한 분은 정복당할 때 도리어 행복해 한다'(Pesahim 119a)고 했다." (91)


제가 볼 때 4장부터 7장까지는 사족입니다. 책의 중심 내용과는 크게 관련이 없거나 앞의 내용의 반복입니다. 특별히 4장 역사관은 제일 길지만 안타깝게도 눈에 띄는 부분이 없습니다. 구약성서의 내용을 다시 언급하고 있고, 신약 이후 시대의 거짓 메시아의 등장에 대해서도 장황하게 나열하는데 별로 영양가가 없습니다. 그리고 왜 마지막을 7장 시편으로 끝냈는지 납득이 잘 안 됩니다. 8장 ‘맺는 말’은 번역이 이상한 것인지 프롬이 원래 이렇게 애매하게 썼는지 말이 이상합니다. 8장에서 프롬은 신 죽음의 신학에 대해서 논합니다. 프롬은 신이라는 개념이 표현하는 최고 가치가 죽은 것인지, 신 경험이 죽은 것인지 구분합니다.  프롬은 적어도 후자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죽은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프롬의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는 위험한 책입니다.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극심한 반대에 부딪칠 수도 있는 책입니다. 휴머니즘을 옹호하고 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지지자 역할을 할 것입니다. 특별히 구약성서 혹은 유대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개념이 정말 무엇인지에 대해 전문가적인 자세로 핵심을 파헤칩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기존의 해석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결국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에 도달하는 이 책은 유신론을 부정하는 견해로 보이거나 혹은 신 죽음의 신학을 담은 책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단순히 그런 책 중 하나로 판단이 된다면 이 책은 배척을 당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처럼 프롬의 의도는 인간이 신을 배제함으로써 신이 되는 역설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의 구성은 다소 산만하지만 프롬의 논리는 훌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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