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책리뷰] 플라톤 『향연』

설왕은 2019. 4. 9. 21:48


플라톤의 『향연』은 제목을 잘못 번역한 것 같습니다. 제목이 너무 점잖은 느낌을 줍니다. 철학책이니까 점잖게 철학책 느낌을 주는 게 맞을 것 같지만, 플라톤은 딱딱한 철학책으로 이 책의 주제를 전달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제목이 심포지엄(Συμπόσιον) 이었겠지요. 원래 뜻은 술마시고 노는 파티입니다. 영어로는 원어의 음을 거의 그대로 살려서 symposium(심포지엄)이라고 번역했는데요. 심포지엄이라는 뜻은 어떤 논제에 대해서 여러 전문가가 자신들의 의견을 나누는 토론회입니다. 심포지엄이 플라톤 때문에 원래 뜻에서 벗어나 전문가들의 토론회라는 뜻을 가지게 되지 않았나 추정해 봅니다. (정확히 알아보지는 않았습니다.) 이 책 제목의 원래 뜻은 '술파티' 입니다. 플라톤의 '술파티'로 제목을 붙였다면 아마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친근감있게 읽혔을지도 모르겠네요. 


플라톤의 "술파티"에서는 어떤 주제가 다루어졌을까요? (술파티는 아가톤이 비극 대회 우승 기념으로 자신의 집에서 벌이게 되었습니다.)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신 에로스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이 자신들이 들은 얘기도 하고 자신의 견해도 밝히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플라톤의 선생님인 소크라테스입니다. 사실, 소크라테스의 견해가 가장 비중있게 다뤄지기는 하는데요. 소크라테스도 자신의 의견이 아닌 자신이 전에 만난 현인 디오티마로부터 배운 내용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논리를 따라가보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지요. 


소크라테스의 질문의 시작은 이것입니다. "에로스는 어떤 특정 대상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당연히 대답은 어떤 특정한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에로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이미 소유하고 있으면서 사랑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대상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욕구하고 사랑하는 것일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그 다음 부분이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요. 이 대답 자체에 결함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요점은 우리는 결핍되어 있는 것을 채우기 위한 갈망과 사랑을 실행한다는 것인데요. 예를 들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건강하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건강하고 싶은 자신의 갈망으로 인해서 건강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더라도 그 사람은 계속 건강하기를 소원할 수 있습니다. 즉 꼭 자신에게 결핍된 것만을 갈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 건강하고 싶은 것 이면에 더 깊은 의미가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질문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논리에 따르면 에로스가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것의 이유는 에로스에게 아름다움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혹은 에로스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계속 소유하기를 원하는 것이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에로스는 완전히 아름다운 존재로 칭송받을 수 없습니다. 에로스에게 아름다움이 결핍되어 있다면 에로스는 추한 존재일까요? 아닙니다. 에로스는 중간자입니다. 아름다움은 결핍되어 있지만 추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에로스의 출생에 관한 신화가 나옵니다. 에로스는 풍요의 신과 결핍의 신 사이에서 태어난 신으로 여기서도 중간자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그는 단 하루 동안에도, 어떤 때는 꽃처럼 피어올라 생생하게 살아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죽어 있기도 합니다." (121)


디오티마는 사랑이란 "좋은 것을 자기 자신 속에 영원히 간직하려는 행위"라고 정의합니다. (128) 그런데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좋은 것을 자기 자신 속에 영원히 간직할 수 있을까요? 디오티마는 말합니다. 


"소크라테스여! 모든 인간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임신을 하고 있어서 일정한 나이에 도달하면, 그들의 본성상 그 임신된 것을 생산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생산은 추함 속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고, 단지 아름다움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답니다." (128-129)


즉, 인간이 실현할 수 있는 불멸의 방법은 생산입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정신적인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잉태한 사람이 아름다운 것에 접근하면 기쁨으로 어린 아기를 출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아름다운 것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생산 혹은 출산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통해 인간은 불멸할 수 있기도 하고요. 인간의 불멸의 욕구로 인해서 인간은 사랑과 열정을 가지게 된다고 보는 것이 디오티마의 주장입니다. 아름다운 것과의 관계 속에서 탁월성을 낳고 그것을 돌보는 사람만이 신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는데요. 사랑보다 더 훌륭한 조력자를 만나기 힘들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주장입니다. 


옛날 책이라서 그런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논리적으로 꽤 잘 연결이 되는 편이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논리의 약한 연결 고리들을 좀더 보충하고 쉽게 현대적인 글로 구성한다면 훨씬 재밌을 것 같은 책입니다. 제목도 꽤 파격적이고요. "향연"에 나온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따르면 아름다운 시를 쓰려고 하는 욕구나 감동적인 노래를 만들려고 하는 욕구도 모두 불멸하고자 하는 인간의 바람의 표현일 수 있겠습니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고요. 육체적으로도로 인간은 사랑을 통해서 후손을 남길 수 있고 그것이 불멸의 방법이 될 수도 있겠지요. 물론 개인의 자기 정체성이 보존되지는 않겠지만, 고대의 철학자들은 개인을 완전히 독립된 존재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자식을 낳는 것도 불멸의 방법이 될 수도 있겠지요. 술파티에서 벌어진 사랑에 대한 토론의 결론은 이런 것이 될 수 있겠네요. 


"아름다운 것을 사랑합시다. 그리고 우리 영원히 삽시다.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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