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C.S.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설왕은 2019. 4. 11. 00:05

 

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엄성옥 역 (서울: 은성출판사, 1991)

 

 

 

<순전한 기독교>는 C.S. 루이스의 라디오 방송 내용을 다시 편집하여 단행본으로 출간한 책입니다. 이 책은 70년 전 영국에서 나온 책(1952년 발행)입니다. 원제는 Mere Christianity로 '순전한 기독교'보다는 '단순한 기독교'가 더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기독교의 교리나 내용의 순수하고 완전함을 변증하는 책이 아니라 기독교의 기본 내용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머리말에 보면 루이스의 저작 의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본서에서 내가 현존하는 교회들의 신조들을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순전한 기독교를 제시한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서 회중교회나 희랍정교회나 그 밖의 다른 교파를 대신하여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비유해서 말하자면 하나의 응접실과 같은 것으로서 그곳에 여러 개의 문들이 있어 그 문을 열면 각기 다른 방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과 같다. 내가 하려는 일은 사람들을 그 응접실로 인도하는 것이다." (11-12)

 

기독교 안에 어떤 특정한 교파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기독교의 기본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루이스의 저작 동기입니다. 교파를 선택하는 것을 방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비유한다면 그 전에 응접실에서 기본적인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책의 구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1권 우주의 의미에 대한 옳고 그른 단서

제2권 기독교인은 무엇을 믿는가

제3권 기독교인의 행위

제4권 삼위일체의 교리

 

이 책은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고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루이스가 책의 중간중간에 앞에서 언급한 바를 다시 되짚어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의 내용을 알아야 뒤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라디오의 방송 내용이기 때문에 각 부분의 내용이 모두 비슷한 분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금 더 다루어야 할 내용이 있다면 똑같은 주제로 한 번 더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책으로 출간할 생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고 방송 내용이기 때문에 두서 없이 서술된 부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루이스의 책은 재치가 번득이는 내용이 여기저기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 루이스는 제 4권 삼위일체의 교리에서 신학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요. 왜 그리스도인이 신학적 내용을 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학은 지도와 같다. 만일 당신이 기독교의 교리들을 배우고 생각하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내 친구가 사막에서 얻은 경험보다 실질적이지도 못하고 흥미롭지도 못할 것이다. 교리는 하나님이 아니다. 교리는 일종의 지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지도는 실제로 하나님과 교제한 수백 명의 사람들의 경험을 기초로 하여 작성한 것이다... 두번째로 , 당신이 조금이라고 더 멀리 가기를 원하다면, 반드시 지도를 사용해야 한다... 또한 지도만 바라볼 뿐 바다에 가지 않는 사람은 어느 곳에도 도착할 수 없다. 또 지도가 없이 바다에 나가는 것은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 (199)

 

우리나라 교회 안에서 신학은 금지된 학문입니다. 신학은 목회자가 하는 것이고 교인들은 단지 목회자의 신학을 따르기만 해왔습니다. 예배도 많고 성경 공부도 많지만 신학은 금지되었습니다. 결국, 기독교 교회가 교인들을 작은 인식의 틀 안에 가둬 버리고 하나님이라고 하는 우주보다도 더 큰 가능성을 세상에서 가장 엄격하고 꽉 막힌 전제군주로 만들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를 제한하고 제거해 버렸습니다. C. S. 루이스가 여기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신학의 부재입니다. 신학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멀리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에게 신학이 필요하다는 루이스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신학을 한다는 것은 단지 성경 내용을 더 많이 알고 기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또한, 신학자들의 연구 내용을 정리하고 배우는 것도 신학을 하는 근본적 자세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신학을 한다는 것, 학문을 한다는 것은 질문을 하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루이스는 정말 신학을 합니다. 루이스는 삼위일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것의 실제적인 중요성을 주목하라. 사람들은 “하나님은 사랑입니다.”라는 기독교의 진술을 반복해서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은 사랑입니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최소한 두 개의 위격(Person)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는 것에 주목하지 않는 듯하다. 사랑이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어떤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단 하나의 위격(person)이라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하나님은 사랑이 아니었을 것이다. (222-223)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일반적인 신학서적에서 이런 식의 설명을 찾을 수 없습니다. 루이스는 독특하면서도 일리가 있는 자신만의 의견을 가지면서 동시의 그의 주장은 기독교의 정통 교리에 어긋나지도 않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신학이라고 할 수 있죠. 여기서 잠깐, 번역에 대해서 언급해야겠습니다. 위의 부분에서 "사랑이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어떤 것이다."는 원래 번역본에는 "사랑이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품는 감정이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은성출판사에 나온 번역본대로 인용할 수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루이스는 이 책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문을 찾아 보았습니다. 만약 루이스가 감정이라고 썼다면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는 자신의 주장에 위배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루이스는 감정(feeling 이나 emotion)이라고 쓰지 않고 어떤 것(something)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에는 제대로 나와 있는지 모르겠으나 은성출판사의 번역은 문제가 좀 있어 보입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내용뿐만이 아니라 다른 부분에 있어서도 루이스의 설명에는 사람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적절한 비유를 하기도 하고 문학적인 표현을 하기도 하고 확신에 찬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의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 싶다면 꼭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네요. 참고로 이 책에서 루이스가 말하는 기독교의 독특성은 기독교는 예수를 믿고 사랑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는 단순한 윤리적인 가르침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루이스는 우리가 예수를 믿고 사랑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상상해서 이렇게 전달합니다. 

 

말하자면 삼위 하나님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불평하며 배반하는 인간을 보시면서 '이것은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우리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자.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었으므로, 이것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같다. 이것이 성령 안에 있는 그리스도와 같다고 생각하자.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그렇다고 간주하자. 흉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연습하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을 마치 작은 그리스도인듯이 바라보신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작은 그리스도로 변화시키려고 당신 곁에 서 계신다. (244-45) 

 

저라면 이 책의 제목을 순전한 기독교보다는 "그냥 기독교"라고 붙이겠습니다. 순전하다는 말 자체에 벌써 너무 중립적이지 못한 느낌을 주거든요. 루이스의 의도는 그저 솔직 담백하게 기독교에서 무엇을 믿는 것인지 그리고 기독교가 일반적인 윤리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일리가 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좀 어렵긴 하지만 새신자에게 기독교를 소개하는 책으로 함께 공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누구든 혼자 읽기에는 좀 힘든 책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꽤 오래전 책이라 시간적인 거리감이 있고 영국 사람이 영어로 쓴 거라 번역되면서 생기는 오류도 있고 문화적인 차이도 있어서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류의 책이 현대적인 언어와 한국적인 내용으로 나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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