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책리뷰]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설왕은 2019. 7. 12. 18:28


좁은 문으로 유명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입니다. 한 페이지 분량의 자신의 생각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습니다. 젊은이에게 주는 격언집 형식입니다. 어떤 부분은 그냥 일기 같기도 하고요. 지드는 나타나엘이라는 젊은이를 부르면서 말을 겁니다. 전체적으로 통일된 주제 같은 것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다지 그런 통일성이나 일관된 주제 같은 것은 없습니다. 아마, 지금 이런 책이 나왔다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책으로 묶어냈나 싶은 그런 형식의 책입니다. 



이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은 책의 서문에 나온 첫 번째 문장과 나가는 글의 처음 부분입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이 작은 책에 씌어 있는 그 어느 내용보다도 그대 스스로가 모든 것에 깊은 관심과 흥미를 가지도록 가르쳐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9)


"나타나엘이여! 이제는 나의 이 책을 서슴없이 던져 버려라. 그리하여 너 자신을 해방시켜라. 나를 떠나라. 나에게서 미련 없이 떠나가라. 이제는 네가 귀찮고 거추장스럽기까지 하다." (199)


지드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이나 고난의 의미를 잘 몰랐다고 하는데요. 물론 어렸을 때는 그랬겠지만 크면서 점점 깨닫는 바가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는 타고난 반항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꼭 반항심 때문에 이런 식으로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 같고요. 전체적으로 지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구의 충고나 지혜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지 말고 자유롭게 살고, 네가 살아가는 일상 속의 모든 일에 관심을 가져라' 정도가 되겠네요. 저의 인생관과 비슷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구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재미없고요. 지드는 이런 식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마치 하루가 그 곳에서 종말을 고하듯 저녁을 바라보아라. 그리고 만물이 거기서 탄생하듯이 아침을 바라보아라." (35)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을 산 어느 누구도 불행하지 않았다. 그 삶이 고단하고 고통스러웠다고 하더라도, 하루 종일 자신의 임무를 마친 해에게 고마운 하루였고 파란 빛깔로 사람들을 지켜보았던 하늘에게도 살아 있는 초록색 식물들도 우리 삶이 축복의 삶임을 말해 주고 있다. 그저 우리의 삶이 단 하루만이더라도 삶은 축복이다.'


이 책의 거의 모든 페이지에는 교훈, 충고, 지혜가 들어 있는데요. 저는 그런 글보다 다음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흙으로 그려진 마을의 작은 거리들, 낮에는 장미빛, 저녁에는 보라빛, 대낮에는 인기척이 없어도 어스름이 내리는 저녁이 되면 활기를 띠게 되리라. 그러면 불밝은 카페에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모여들고, 마지막 수업을 끝낸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느라고 걸음을 빨리 한다. 


언제부터인가 노인들은 광장 한구석 돌담에 기대어 이야기를 나누고, 이미 햇살은 기울어진지 오래이다. 베일을 벗고 꽃차림으로 테라스 위에 나타난 여인들은 장황하게 서로의 시름을 이야기할 것이다." (119)


이 내용이 좋았던 이유는 작가의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잰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그려지고, 카페에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노인들의 엷지만 넉넉한 미소가 느껴지는 것 같고, 여인들의 걱정은 절망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희망일 것 같습니다. 사람 사는 모습인데 그 모습이 정겹게 느껴지네요. 


지드의 사상과 철학은 아주 일관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바는 자유, 욕망, 열정과 같은 것입니다. 가장 직접적으로 쓰여진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아! 나는 오늘날까지 너무도 조심스럽게 살아왔다. 새로운 법칙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법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 


오오, 해방이여! 오오, 자유여! 나의 욕망이 다다를 수 있는 한계까지 나는 가리라." (139)


욕망의 한계까지 가겠다는 표현은 좀 지나친 면이 있습니다. 위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은데요. 열심히 살려고 해도 잘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기운이 빠지고 그러죠. 그런 순간에는 책도 글도 눈에 잘 안 들어 옵니다. 그럴 때 읽으면 도움이 될 만한 짧은 글들이 이 책 안에 많이 있습니다. 거대한 목표를 향해 달려 가다가 지쳐 있다면 그래서 나 같은 존재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내 일상은 너무 평범하다고 느껴진다면 앙드레 지드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