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책리뷰]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

설왕은 2019. 7. 9. 23:37


처음에는 이 책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읽었을 때도 잘 파악이 안 되었습니다. 세 번째 읽으니 이해가 좀 되더군요. 칼 바르트가 왜 이 책이 아니었다면 로마서 강해의 초고를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읽었을 때 이해를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잘 몰랐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죄와 벌'을 읽어본 적은 있으나, 탁월하고 세밀한 심리묘사는 10대 청소년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었습니다. 너무 세세한 심리묘사로 인해 지루함을 느꼈으니까요. 하나의 살인 사건을 가지고 이렇게 두꺼운 책을 썼다는 것이 경이로웠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토록 복잡한 것임을 잘 알지 못했던 어린 나이에 너무 심오한 작품을 읽어서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저는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그의 다른 작품을 읽을 생각도 접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죄와 벌'로 끝났던 저의 도스토옙스키 탐험의 미천한 경험으로 인해 칼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 탄생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이 책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세 번 정도 읽으니 도스토옙스키를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이 책에 서술된 그의 작품의 내용이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이 책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도도 확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놀랐던 점은 도스토옙스키의 인간 탐구 능력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들여다 보며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능력이 정말 놀랍습니다. 그의 소설 속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모두 복합적인 성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단순한 정답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저자 투르나이젠에 따르면 도스토옙스키는 인간 안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투르나이젠이 사용하고 있는 특이한 단어 중에 하나가 '소실점'입니다. 소실점은 원근법을 사용하는 그림에서 원근을 만들어내는 시점을 의미합니다. 그 시점은 그림 안에는 존재할 수 없는 점입니다. 그 시점은 도스토옙스키는 하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답은 인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밖에 있고 그 답은 바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죠. 그의 신에 대한 생각입니다. 


투르나이젠는 도스토옙스키의 인간에 대한 이와 같은 이해가 그의 모든 소설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삶의 근원이 이 세상에 있지 않고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알지 못하다가 고통과 고난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58)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뿌리이며 이 세상 모든 것의 근거가 되는 밑바탕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든 것의 해체이며 고통이며 불안이다. 모든 세속적인 것을 향해 다가서는 탈속적인 것이다." (77)


자유와 믿음과 같은 인간의 위대한 가치들도 바로 이같은 구조 속에서 이해되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매우 섬뜩한 디자인으로 제작이 되어 있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검정과 흰색의 무채색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마치 세상에 아직 색깔 있는 책이 나와 있지 않은 것처럼 색을 완전히 빼고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이라는 제목도 무시무시합니다. 그리고 책의 뒷면에는 이렇게 나와 있죠. "울어라! 위안을 찾지 말고. 죄인, 광인, 백치만이 볼 수 있는 빛, 절망이라는 구원에 관하여." 도스토옙스키가 제시하는 부활의 순간에 대하여 이 책이 온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 세상 밖에 있는 인간 세상의 소실점에 도달할 수 있는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요? 첫 번째 절망적인 사실은 인간은 그 소실점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 능력 밖의 일입니다. 인간은 그 간극을 건널 수 없습니다. 단지 신만이 가능한 일이죠. 두 번째 절망적인 사실은 그렇게 신이 찾아오는 사람은 절망 속에 빠진 어두움에 갇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 광인, 백치만이 그 빛을 볼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어렵네요. 신을 찾기 위해서 지옥으로 가야 하는 걸까요? 지금 지옥에 있는 것 같다면 빠져 나올 생각하지 말고 울고 있어야 할까요? 부활하기 위해서 먼저 죽어야 하는 걸까요? 


저는 바르트의 신학을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알고 있는데요. 이 책이 정확하게 그 구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투르나이젠의 "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은 바르트에 관심 있는 분과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의 해설이 필요한 분에게는 필독서가 될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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