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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1930)

설왕은 2019. 5. 11. 18:41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이 쓴 행복의 정복(Conquest of Happiness)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제목이 정말 러셀다운 면이 있습니다. 허세가 조금 낀 자신감이 묻어 납니다. 저자 서문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이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상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독자들에게 내놓은 비결은 직접 경험을 통해 확인한 것들이며, 이 비결대로 행동할 때마다 나는 더욱 행복해졌다.  


지난 세기 최고의 지성인 중의 한 사람인 러셀이 자신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쓴 "행복의 정복"은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특별히 러셀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쓴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전체 17개의 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17개의 글은 크게 두 개의 큰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1부는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이고 2부는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각각의 글은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심심할 때마다 하나씩 읽어도 좋고 제목을 보고 관심있는 것부터 읽어도 좋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행복론'이 아닙니다. 러셀이 행복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논리적으로 구성한 책이 아니라 행복을 주제로 쓴 여러 개의 글을 한 책에 묶어낸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내용을 살펴 보면 인간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 혹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뚜렷한 명제가 될만한 문장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먼저, 러셀은 자신이 삶을 즐기고 행복하게 된 비결은 자신에 대한 집착을 줄인 데에 있다고 말합니다. (17-18) 이러한 비결은 이 책 전반에 걸쳐서 나타난 전제입니다. 행복하려면 자신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관심을 외부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자신을 완전히 잊을 정도로 망각하라는 말은 물론 아닙니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멈춰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러셀은 고독의 철학을 반대합니다. 이 부분은 아마 지금 세대에도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르네상스 이후로 확산되고 발전해온 개인주의는 행복의 영역에서도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독해도 괜찮고 혼자여도 괜찮다는 생각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데 러셀은 이런 견해에 대하여 이미 100년 전에 반대했고 저도 러셀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철학들은 모두 그릇된 것이다. 그것들은 그릇된 윤리학일 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이 가진 보다 우월한 부분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부정확하다. 인간은 협력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협력에 필요한 우정을 만들어내는데, 물론 이 본능적인 장치가 완벽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사랑은 협력을 이끌어내는 최초의 감정 형식이자, 가장 보편적인 감정 형식이다. 따라서 강렬한 사랑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고선은 사랑을 주고받는 인간의 감정과 상관없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에 찬성할 수 없을 것이다. (45)


러셀이 여러 가지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하지만, 사실 그가 말하는 행복의 조건은 '주변에 대한 관심'입니다. 주변에 좀더 관심을 가질 때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개인의 취미 생활과는 다른 것입니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자신만의 취미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죠. 하지만 러셀의 의견은 다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일시적인 열광이나 취미는 근본적인 행복의 원천이 아니라 현실 도피의 수단에 불과하다. 현실 도피의 수단이라고 한 것은 이겨내기 힘든 고통이 다가오는 순간을 잊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다. 근본적인 행복은 무엇보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따뜻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168)


어떻게 보면 러셀이 말한 행복을 정복하는 방법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류가 오랜 시간을 거쳐서 발견한 방법이고 사실은 되게 뻔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새는 인류의 오래된 지혜나 전문가의 권위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의 모든 주장이 다 각기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각기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물론, 어느 누구의 의견도 무시되어서는 안 되지만 어떤 말들은 머릿속에 넣고 두고두고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러셀의 "행복의 정복"에 나온 '행복할 수 있는 방법'도 그런 류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러셀의 말대로 상식이 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러셀의 결언을 들어보죠.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한 성원임을 자각하고, 우주가 베푸는 아름다운 광경과 기쁨을 누린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뒤를 이어 태어나는 사람들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할 때도 괴로워하지 않는다. 마음속 깊은 곳의 본능을 좇아서 강물처럼 흘러가는 삶에 충분히 몸을 맡길 때, 우리는 가장 큰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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