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책리뷰] 카뮈 "시지프 신화"

설왕은 2019. 7. 24. 10:11

카뮈의 시지프 신화는 그 스스로의 철학과 문학에 여러 가지 단상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것입니다. 짧은 여러 개의 글이 모여 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책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아주 긴밀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주제의 통일성이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과 주인공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있고, 사회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한 그의 분석도 있습니다. 특별히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이슈는 자살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살과 사회 부조리 사이의 관계성이라고 할까요? 전체적으로 카뮈의 날카로운 분석과 독특한 견해가 아주 돋보이는 책입니다. 

 

특별히 맨 마지막 글인 시지프 신화는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지프는 신들로부터 형벌을 받았습니다. 산꼭대기까지 돌을 굴려 올리는 형벌을 받았는데 문제는 그 돌이 산꼭대기에 오르면 다시 굴러떨어져 내린다는 것이죠. 그리고 시지프는 다시 그 돌을 올려야 하는 정말 무의미하고 맥빠지고 허무한 노동의 형벌을 받았습니다. 대개 사람들이 생각하는 시지프 신화에 대한 생각은 이런 것이지만 카뮈는 다른 생각을 합니다. 카뮈는 시지프가 돌을 산꼭대기까지 올리고 그 돌이 다시 아래도 굴러 떨어졌을 때 그 돌을 향해 내려오는 순간에 주목합니다. 

 

"시지프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저 산꼭대기에서 되돌아 내려올 때, 그 잠시의 휴지의 순간이다. 그토록 돌덩이에 바싹 닿은 채로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은 이미 돌 그 자체다! 나는 이 사람이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 고뇌를 향해 다시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본다. 마치 호흡과도 같은 이 시간, 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 오는 이 시간은 바로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 (182)

 

카뮈는 부조리와 행복이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부조리가 있기 때문에 행복이 있고 행복이 있기 때문에 부조리의 감정이 태어난다는 것이죠.(184) 부조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부조리에 저항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저항하기도 하죠. 우리가 저항하는 이유는 더 나은 세상, 부조리가 해결되는 세상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정적인 상태보다는 더 나은 미래, 더 좋은 미래를 꿈꾸는 기대에서 나올 때가 많습니다. 마치 마음껏 쉴 수 있는 일요일보다 일요일을 꿈꿀 수 있는 금요일 오후에 사람들이 더 행복감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죠. 행복감을 느낄 때 인간이 발견하는 부조리에 대한 감정도 달라집니다. 카뮈는 그 순간에 인간은 부조를 자신들이 극복해야 할 운명으로 인식한다고 지적합니다. 

 

"시지프의 소리 없는 기쁨은 송두리째 여기에 있다.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인간 자신의 고통을 응시할 때 모든 우상은 침묵한다." (184)

 

시지프 신화의 마지막 단락은 압권입니다. 

 

"이제 나는 시지프를 산 아래에 남겨 둔다! 우리는 항상 그의 짐의 무게를 다시 발견한다. 그러나, 시지프는 신들을 부정하며 바위를 들어 올리는 고귀한 성실성을 가르친다. 그 역시 모든 것이 좋다고 판단한다. 이제부터는 주인이 따로 없는 이 우주가 그에게는 불모의 것으로도, 하찮은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이 돌의 입자 하나하나, 어둠 가운데 이 산의 광물적 광채 하나하나가 그것 자체만으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정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한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에 그려 보지 않으면 안 된다." (185)

 

카뮈는 바위를 밀어올리는 시지프의 고통스러운 얼굴에서 그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며 주체적인 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산정상에서 내려오는 그의 얼굴에서 옅은 미소를 발견합니다. 고통과 부조리를 외면하지 않고 그에 맞서서 자신의 운명을 완성하려는 그의 생각과 의식, 그리고 그의 실천을 통해 행복한 시지프를 그려 봅니다. 

 

사실 카뮈의 생각을 따라가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카뮈는 희망으로 인한 행복을 말하지 않습니다. 시지프의 형벌이 고통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그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죠. 카뮈의 말대로 시지프는 고통을 응시합니다. 그의 고통스러운 삶을 받아들이면서 그는 그것을 긍정합니다. 그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고통 자체를 음미하죠. 마조히즘적 요소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인간이 스스로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고통을 피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고통을 피함으로써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자발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도 생각해봐야지요. 명분 없이 생각 없이 당하는 고통을 견딜 이유는 없을 것 같으니까요. 

 

시지프의 얼굴에서 미소를 읽는 카뮈. 그에 대해 더 알고 싶네요. 

320x100